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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은 결코 노무현의 왼쪽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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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국현은 결코 노무현의 왼쪽에 있지 않다"

[인터뷰] 노회찬이 '창당 동업자' 권영길에게

인터뷰하는 그의 뒤편에 놓인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15일 권영길 후보가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로 확정 발표된 직후, 권 후보와 노회찬, 심상정 의원 세 사람이 운동화 한 켤레씩을 들고 두 팔을 번쩍 치켜든 장면이다.

농담 삼아 저 운동화를 몇 번이나 신어봤냐고 물어봤다. "사이즈가 작아 보좌관에게 줬다"는 썰렁한 답이 돌아왔다. 경선 패배의 후유증이 없을 리 만무했다. 캠프에서 뛰었던 참모들의 낙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권영길 후보가 경선 경쟁자들의 분발 없이 탄탄대로를 낙관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노회찬 의원이 한 달 만에 운동화 끈을 다시 묶었다.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는 경선 이후 가진 첫 번째 인터뷰다. 내주부터는 본격적인 언론 접촉을 예정해뒀다.
▲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프레시안

"권 후보, 최선을 다해달라"

"한마디로 전략과 기획의 실패다. 책임은 내게 있다." 노 의원은 1등으로 시작해 꼴찌로 마감한 경선 패인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네거티브 공세나 조직투표, 묻지마 투표 등 부정적 현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선 과정에서 권 후보에게 '그만 하시라, 이제 내가 하겠다'고 몰아붙인 점에 대해선 "권 후보가 선출되고 나니 그 말이 미안한 감도 있다"며 앙금을 털었다. 최근에는 권 후보와 따로 만나 두 시간 만에 소주 네 병을 비웠다고 한다.

대신 그는 권 후보에게 "당을 함께 만든 창업 동지로서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도 무거운 짐을 다시 지게 된 점이 애틋하지만 민노당의 대선후보로서 최대한 역할을 잘 해서 좋은 성과를 얻는데 앞장서주길 부탁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민노당의 초대 당 대표로 시작해 주요 직책을 가장 많이 맡았던 분으로서 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변화와 혁신은 노회찬, 심상정의 구호로 그쳐선 안 된다"고 했다.

선대위원장으로서 본인의 역할은? "당이 필요로 하는 역할에 따라 가리지 않고 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상정이나 노회찬이나 당의 정치적 크기를 두텁게 해서 호소력을 늘리고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는 게 역할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노당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낯설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식상한, 모순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며 "식상한 부분은 민노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하는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 대선 도전인 권영길 후보의 핸디캡으로 지적되는 '식상함'에 대해선 "그 책임이 후보에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감쌌다. "정책과 선대위의 활동방식, 심지어 선대위원장의 역할까지 모두 포괄되는 문제"라고 변화와 분발을 다짐했다.

"문국현, 솔직히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쓴소리를 아끼지는 않았다. 경선 후 한 달 간 "잔치가 끝난 뒤의 분위기처럼 다들 나자빠져 있는 상황이었다"며 "내부의 행정적 문제도 서툴게 풀면서 시간만 가고 잡음만 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또한 "민노당의 정파는 당을 발전시키는 선도부대로서의 역할보다 당 내의 마피아처럼 보여지는 측면이 많다"면서 "정파질서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후에도 변화와 혁신이 없으면 내년 당직 선거나 총선 비례대표 선출에서 과거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한편 노 의원은 민노당에 현실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에 대해선 "중요한 건 그 사람의 기본 철학이다. 철학과 사상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소위 범여권의 적극적 개혁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물론 범여권과 달리 문 후보가 참신한 대목이 있고 민노당과 차이가 없어 보이는 부분도 있다"며 "하지만 정치세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보면 문국현은 결코 노무현의 왼쪽에 있지 않다"고 규정했다.

노 의원은 그러나 "민노당을 지지하다 떠난 사람 중에 절반 이상이 문국현 지지성향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며 "솔직히 우리로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주어진 조건 속에서 제대로 된 차별화, 왜 민노당이 참진보인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10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가진 노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당이 필요로 하면 무엇이든 한다"

프레시안 : 어제 선대위원장단과 권영길 후보가 만난 것으로 안다. 어떤 얘기를 나눴나?

노회찬 : 밥 먹으면서 한 얘기니까 하나씩 정리해서 매듭지은 것은 아니다. 잘 해보자는 분위기에서 만난 것이다.

프레시안 : 선대위원장을 노동, 농민, 빈민조직 몫까지 확대해 6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아는데.

노회찬 : 선대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는 것은 정치적 행위다. 확대는 기본이다. 다만 선대위원장 확대는 지금도 말끔히 정리되지는 않았다. 공동선대위에 들어오려면 각 조직이 일정한 의결절차를 거쳐야 하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효과 면에서 순차적으로 늘려가는 게 좋다고 본다. 1차는 당내로 하는 게 맞다. 물론 특정 대중조직의 강력한 요구가 있다면 잘 조정해서 원만하게 가는 게 필요하다. 선거가 두 달 남았는데 이런 것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면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

프레시안 : 14일 임시 당대회에서는 노회찬-심상정-문성현 선대위원장 체제로 가고 추후 늘려가는 방식인가?

노회찬 : 좀 애매하긴 하다. 당 대회 전까지 그 조직들이 내부절차를 밟으면 그 전에 결합하고 길어지면 차후에 결합하는 정도로 정리했다.

프레시안 : 민노당 선대위에서 위원장의 위상과 역할은 뭔가?

노회찬 : 형식적으로야 최고 지도부의 일원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치열한 경선과정을 거친 뒤 경쟁 세력들도 선출된 후보를 중심으로 힘을 모은다는 정치적 상징 의미가 크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는 당이 필요로 하는 역할에 따라 가리지 않고 해나갈 생각이다.

프레시안 : 통상 선대위원장이라면 선대위의 전략적 기조나 방향을 잡고 사령탑으로 기능하는 것인데 서포터처럼 보인다. 자리와 역할이 어긋나는 느낌도 든다.

노회찬 : 선대위원장은 정치적, 상징적 대표체이지 실무를 총괄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후보를 대리하기도 하고 후보를 빛내기 위한 보완적, 정치적 역할이 더 크다. 심상정이나 노회찬이나 당의 정치적 크기를 두텁게 해서 호소력을 늘리고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는 게 역할의 핵심이다. 중요한 고비가 있으면 후보와 선대위원장들이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
▲ ⓒ프레시안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선 안 돼"

프레시안 : 민노당이 세 번째 맞는 대선이다. 시대환경이 변했고 민노당에 대한 기대수준도 변했다. 앞선 두차례 대선과 비교해 가장 달라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노회찬 : 민노당이 향후 더욱 발전한다고 해도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은 지난 두 번의 선거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 있다. 민노당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낯설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식상한, 모순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은 더 친근하고 내용을 잘 전달해서 지지를 끌어내는 게 필요하고, 식상한 부분은 민노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하는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선거전이란 어떻게 하면 득표를 최대화, 최적화 하느냐인데 민노당이 향후 두달 간 집중해야 할 전략적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보나?

노회찬 : 단순한 문제제기 집단이 아니라 집권 가능한 세력으로서의 신뢰성과 국정운영 비전을 전격적으로 보여주는 문제가 우선이다. 둘째는 서민의 정당이라고 하지만 서민문제와 관련해 해결방안이나 방향과 방법, 능력을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주특기가 없는 당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국민의 100%를 대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90%는 확실하게 대변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90%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구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지 우리는 뼈아프게 생각하고 접근방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어제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이 나왔지만 민노당은 비판 이상의 대안을 내놓지 못한 한 인상이다. 범여권이야 경선 중이니 겨를이 없다 쳐도 이미 한 달 전에 경선을 끝낸 민노당의 대응법이 그렇다면 그 속에서 집권비전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나?

노회찬 : 일자리 문제나 교육문제, 경제 성장의 문제에 대해 확실히 다른 당과 차별화가 되는 내용을 우리가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내용을 다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도 정비가 덜 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교육 정책에 관해선 경선 후보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견해가 달랐던 부분이 있다. 민노당이 원인과 처방을 싹 정리해 제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국민의 관심사가 큰 민생현안에 대해선 시급히 정리해서 전략적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

프레시안 : 한 달 동안 경선 효과도 못 챙겼다. 권 후보의 지지율 변화가 없다. 지금의 정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회찬 : 안타까운 상황이다. 지난 7월 최고위원 의원단 연석회의에서 제안한 게 있다. 9월 15일 후보가 선출되면 바로 추석이고 그때는 이명박 후보와 우리 후보만 있는 상황이니 그 한 달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지지율을 높이고 후보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경선 선본이 준비하기 어려우니 당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선된 다음날부터 당에서 안을 갖고 끌어갔어야 했다. 그러나 잔치가 끝난 뒤의 분위기처럼 다들 나자빠져 있는 상황이 됐다. 내부의 행정적 문제도 서툴게 풀면서 시간만 가고 잡음만 난 게 아닌가 싶다. 안타까운 한 달이었다.

선대위도 쉽게 푸는 방법이 있었다. 경선 다음날부터 후보 세우고 경선후보 두 명 붙여서 우리는 다른 당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보를 보여줬어야 했다. 14일 선대본이 발족하는데 더 이상 허비하는 시간은 없어야 한다.

프레시안 : 완료된 선대위 구성에 현미경을 들이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향후 70일을 운영하는데 있어 당의 역량을 총괄하고 집중시킬 수 있는 선대위냐에 대해선 의구심이 있다.

노회찬 : 경선 후유증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차가 앞으로 빨리 안가니까 그런 것이 눈에 띄는 것이지 앞으로 가면 아무 문제 아니다. 그것 때문에 사보타지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사람에 따라 심정적 뒤끝은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전투다. 뛰어가며 밥을 먹고 걸어가며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다. 선거의 핵심들이 어떻게 후보 중심으로 세우고 치고 나가느냐다. 잘 치고 나가면 나머지는 잘 해결된다. 그게 지체되면 뿌연 먼지가 더 보인다.

프레시안 : 그건 선대위 지도력의 문제인데.

노회찬 : 그렇다. 일단은 치고 나가야 한다. 거기서 성과가 나오면 다들 모이게끔 돼 있다.

프레시안 : 지지율 정체의 원인 가운데는 권 의원이 대선 3수가 주는 식상함이 있는 것 같다. 선출된 만큼 이제 어떻게 보완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할 것 같다.

노회찬 : 그 책임이 후보에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식상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민노당의 현주소다. 그걸 어떻게 극복해낼 것이냐인데 정책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정책과 선대위 활동방식, 심지어 선대위원장의 역할까지 모두 포괄되는 문제다.

국민들은 기대가 있다. 각 세력이 서로 권력의지를 밝히고 집권비전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축제판을 기다린다. 시끌벅적한 축제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대체로 안 그렇지 않나. 범여권이 저 지경이고 민노당도 자기 색깔을 갖고 민노당다운 방식으로 축제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부족하다. 민노당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극복하는 새로운 활동방식, 정치제안 등이 켜켜이 싸여가야 한다.

지지율은 마그마처럼 땅 밑에 흐르고 있다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꺼지기도 한다. 민노당은 일정한 방향으로 가야한다. 지지율 안 오른다고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게 제일 위험하다. 60일면 충분하다. 이제부터 모든 사람들이 무대를 본다. 지금부터의 하루는 평소 한 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프레시안 : 활동방식을 말하니 떠오르는 게 100민중대회다. 너무 식상한 활동방식 아닌가?

노회찬 : 현실을 반영한 조율이 될 것이다. 다만 100만 민중대회는 대국민 메시지라기보다는 민노당과 핵심지지층의 동원 전략적 차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권 후보가 경선에서 내세운 주요 공약이었는데 이제 와서 잘못됐으니 바꾸거나 반으로 부러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본선에서 중요한 대국민 메시지 차원에선 새로운 고려가 필요하다.

"15%는 얻어야 집권가능 세력으로 인정될 것"

프레시안 : 이번 대선이 항후 20년의 정치구도 결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한나라당과 민노당이 우리 정치의 양대축으로 설 수 있겠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게 현실이다.

노회찬 : 민노당 대 한나라당의 양강구도 형성은 민노당이 추구하는 목표 이상의 의미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문제는 방향성의 문제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변화와 달리 심층의 변화를 봐야 한다. 우리 정치는 3김 정치가 막을 내렸음에도 그 구조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 과도기는 2002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국민들은 벌써 보수와 진보로 우리정치를 인식하고 있다. 민노당은 부정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이 진보로 표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참 진보가 거짓 진보에게 빼앗긴 진보의 타이틀을 가져오느냐가 관건이다. 거짓 진보와 참 진보의 차별화에 성공해야만 제대로된 보수와 진보가 선다. 지금은 진짜 진보가 구석에 있고 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진보의 탈을 쓰고 망가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덩달아 진보의 이미지도 망가져가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문국현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고, 일부 운동권이 그리로 몰려가는 것이다.

프레시안 : 노 의원은 한나라당 범여권 사이에는 샛강이 흐르고 범여권과 민노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는 표현을 쓴적 있다. 민노당과 문국현 사이에는 어떤 강이 흐르나?

노회찬 : 문국현 후보는 한강 건너편에 있다. 이명박과 범여권 사이에 있다. 범여권보다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 문 후보가 시민운동에서 적극적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중요한건 그 사람의 기본 철학이다. 철학과 사상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소위 범여권 적극적 개혁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사이에 문국현이 있다.

물론 그들과 달리 참신한 대목이 있다. 민노당과 차이가 없어 보이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정치세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보면 문국현은 결코 노무현의 왼쪽에 있지 않다.

프레시안 : 문 후보에 대한 지지층이 가장 높은 쪽이 민노당과 진보진영이다. 이 역설이 그저 문 후보에 대한 대중들의 착시효과 때문일까? 설령 그렇다 해도 민노당이 '문국현과 우리는 다르다'고 선언하는 행위만으로 극복이 될까?

노회찬 : 민노당을 지지하다 떠난 사람 중에 절반 이상이 문국현 지지성향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솔직히 우리로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부 세력보다 더 왼쪽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이 조건 속에서 제대로 된 차별화, 왜 민노당이 참 진보인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집권이 목표이겠지만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의 집권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 비해 발전했다고 평가받을만한 현실적인 득표율의 하한선을 제시한다면?

노회찬 : 대선에 등장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국민들은 큰 구분을 가지고 있다. 문제제기 집단이냐 집권을 하려고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세력이냐로 나뉘어진다. 민노당은 이제 기성정당이다. 기성정치세력으로 계속 커 나가려면 집권세력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대선에서 등수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15%는 받아야 집권가능한 제3세력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제기 집단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그걸 돌파하면 향후 권력을 잡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갈 수 있다.

프레시안 : 최종 성적표는 내년 총선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총선 의석수로 계산하면 어느 정도 돼야 한다고 보나?

노회찬 : 원내교섭단체 규모(20석) 정도는 돼야 한다.
▲ ⓒ프레시안

"현재의 정파는 당내 '마피아'"

프레시안 : 당내문제를 좀 보자. 정체성만 빼고 다 바꾸자고 했다. 변화와 혁신은 여전한 과제다. 대선은 그 과정에서 가장 폭발적인 시기다. 선대위원장이기도 하고 민노당의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문제제기를 하고 풀어나갈 것인가?

노회찬 : 변화와 혁신은 당 내의 문제와 대국민 관계의 문제가 있다. 내가 후보가 됐다고 하더라도 변화와 혁신을 위한 가능성을 확보하는 정도가 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변화와 혁신을 이뤄낸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변화와 혁신은 지속적인 과제다. 후보가 되진 못했지만 대선후보가 되는 게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우리가 당초 만들고 싶었던 당을 만드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변화와 혁신은 지속적으로, 적극적으로 추구해 갈 것이다.

당내 문제는 정파문제, 진보정당다운 제반 체제와 운영의 문제 등이 있다. 정파구도는 민노당의 현재와 미래적 과제에 기반해 있기보다는 당을 만들기 이전의 운동의 역사에서 이미 구축된 것에 기반해 있다. 전근대적인 측면이 상당히 많다. 그것이 일반 당원들은 물론이고 민노당에 관심 있는 국민들에게도 부정적 효과를 많이 준다.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대립하거나 내부 권력문제에 몰입하고 있다. 당을 발전시키는 선도부대로서의 정파적 역할보다는 당 내의 '마피아'처럼 보여지는 측면이 많다. 정파질서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변화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 노력에 앞장서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존하는 어느 정파가 당을 장악하든 남는 과제가 있다. 진보적이면서 대중적인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지금 지도부가 아닌 다른 정파가 지도부를 이룬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민노당의 중장기 발전계획이 필요하고 그것이 집권계획이 돼야 한다. 집권할 수 있는 힘, 기반, 신뢰, 비전을 갖추는 일이라고 본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집권하고 싶으면 그것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처음 진보정당 만들 때 이상의 희생과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향은 진보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민노당도 권력이다. 의석이 열석이나 있지 않나. 이 기득권에 안주해서 나눠먹는데 몰두하면 망한다. 더 커 나가기 위한 전략전술, 견결히 지키려는 통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최근의 상황은 리더십이 없는 속에서 소그룹들이 권력을 나눠먹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한다. 변화와 혁신은 당내 권력투쟁이나 선거 구호로 끝나선 안 된다. 선거는 끝났지만 이 일은 지속적인 과제로 끌고 나갈 생각이다.

프레시안 :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네거티브 동영상 문제도 정파문제가 부정적으로 표출된 사례일 것이다. 경선에서 당초 정파문제가 제기됐을 때 실제로 우려된 것은 노 의원의 지적처럼 소그룹간의 권력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내년 당직 선거와 총선 비례대표 문제 등으로 발전할 개연성은 다분해 보인다.

노회찬 :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이후에도 변화와 혁신이 없으면 과거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이 시급하다. 비례대표나 당직선거를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례대표의 명부는 국민들에게 득표력을 신장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 심지어 한나라당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장애인이 1번 아니냐.

하지만 민노당은 힘센 정파들끼리 나눠먹는 구조다. 정파보다 당의 이익을 한참 위에 놓아야 하는데 당의 이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내용으로 비례대표 리스트가 작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의 정파구도에서 과연 실현되겠나? 정파구도가 바뀌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문제의식이라도 확산시켜서 주요한 결정을 함에 있어서 당 중심으로 가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프레시안 : 비례대표 선출 방식, 즉 제도적으로 정파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노회찬 : 하나의 선거에서 여러 사람을 뽑을 때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선호투표제다. 선거권자가 갖고 있는 판단을 최대한 반영될 수 있게 하고, 다수의 생각을 집약시킨 방법이라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선호투표제가 2004년 총선 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단지 좀 까다롭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호주도 하고 있는데 민노당이 그걸 못할 이유는 없다. 결국 현재의 1인2표라는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결정이 됐다. 그것은 유력한 몇 개 정파가 (담합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봐서 채택된 것이다. 당의 이익이나 합리적 선택보다 정파의 이익으로 본 것이다. 정답이 있는데 당의 이익을 위해 정답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당내 기반이 없지만 역량을 인정받는 전문가나 외부에서 영입하고 싶은 사람들은 완전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정파 나눠먹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사 잘 짓고 추수 못해서 졌다"

프레시안 : 경선과정의 복기를 해봤을 것 같다. 어찌보면 1등으로 시작해서 3등으로 마무리됐는데, 경선을 거치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노회찬 : 투표 들어가기 직전까지 수개월에 걸친 비공식적 과정이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일등과 격차가 큰 이등이었다. 투표 직전 여론조사에선 일등이 나왔다. 활동의 성과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8월부터가 중요했는데, 한마디로 농사 잘 지어놓고 추수 못해서 졌다고 본다.

네거티브 공세나 조직투표, 묻지마 투표 등 부정적 현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극복돼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싸움이든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전략전술,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 때문에 졌다고 하면 답이 없다. 그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 부족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마디로 전략과 기획의 실패다. 책임은 내게 있다. 그런 점에선 반성이 많이 된다.

프레시안 : 이번 경선 거치면서 민노당을 대표하는 리더급 진보정치인으로 발돋움 한 것은 나름의 성과가 아닐까 싶다. 이를 계기로 다른 차원의 모색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의 포부가 있다면?

노회찬 : 내가 진보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은 길지만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은 3년에 불과하다. 당을 처음 만들었을 때, 국회의원이 처음 됐을 때보다 어깨가 더 무거워진 건 사실이다. 신중해지는 측면도 많다. 잘못된 것을 공격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은 힘이다. 그래서 민노당이 정치적으로 더 발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내가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특정한 직책을 맡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온 국민이 쳐다보는 정치세력으로서, 유일한 진보세력으로서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 지난 3~4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 3~4년은 잔뜩 기대한 분들에게는 실망의 나날이었다. 그 상황이 더 장기화 돼선 안 된다. 타성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민노당은 민주노총의 적극적 결단에 의해 창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는 민노총이라는 조직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다. 탄압, 공세 등 외부 탓만으로 돌리기 어려운 내부적 문제가 있다. 노동운동 자체가 최약체의 상태에 놓여있는데, 이런 여건에선 민노당만 잘 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는 르네상스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탈노동운동, 반노동운동을 통해 민노당이 성장한다고 보지 않는다. 민주노총당으로 비쳐지는 게 우리의 핸디캡이긴 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발전함으로써 당이 발전한다. 여기에는 한국노총의 문제도 있다. 한국노총과 우리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반성도 필요하다.

또 하나, 서민의 정당이라고 하면서 서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서민들의 낮은 의식 때문으로 돌려선 안 된다. 모든 당원이 돈 똑같이 내고 투표권 갖자는 것이 진성당원제인데 지금 보면 민노당의 진성당원은 투사들처럼, 가까이하기엔 두려운 정당으로 비쳐진다. 문턱을 확 낮춰서 '저게 우리의 당이야, 우리를 위한 당이야' 이렇게 느낄 수 있는 활동방식이 중요하다. 세력화된 운동권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끼리 모여 떠들고 행진하는 방식은 안 된다. 직업운동가들의 정당에서 방향을 틀어야 한다.

프레시안 : 큰 과제들이다. 자리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했지만 뜻하는 바를 추진하려면 리더십을 발휘할만한 여건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가깝게는 내년 당직선거가 있다. 당직공직 분리제도가 여전히 있기 때문에 총선과 당직선거를 동시에 목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만, 당의 줄기를 바꾸기 위해 당직선거에 출마해볼 의향은 혹시 없나?

노회찬 : 아직은 시간이 남은 문제다. 경선 선대위 출범할 때 내가 대선 하나만 보고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선돌풍, 총선승리를 통해 당을 좀 더 발전시키는데 직접 앞장서겠다고 했고, 그 포부나 목표는 변함이 없다. 다만 지난 몇 년간은 제도적으로 당무개입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당 문제를 직접적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당직선거보다는 대선 잘 치르는 게 일차다. 두 번째는 총선을 잘 치러야 한다. 의석수를 늘리는데 기여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총선은 서울 관악구 출마설이 들린다. 정해진 건가?

노회찬 : 일부 지역에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은 있었다. 경선 때문에 검토를 못했는데, 이제 끝났으니까 빠른 시일 내에 지역구를 정할 것이다. 의논도 하고 객관적 지표도 보면서 대선 전에 정할 것이다.

프레시안 : 선대위원장이라는 감투를 떠난 얘기가 쉽지 않겠지만, 앞서 '창당 동업자'라고 표현한대로 권영길 후보에게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회찬 : 경선 과정에서 '그만하시라, 이제 내가 하겠다'고 얘기한 사람이 나이고 경쟁에서 권 후보를 이겨서 대선후보가 되려던 사람이 나이기는 하지만, 권 후보가 선출된 후보가 되고 나니 그 말이 미안한 감도 있다.

다만 대선후보라는 자리는 영예이기도 하지만 굉장한 짐이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게다가 권 후보는 세 번째 나왔기 때문에 더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당을 함께 만든 창업 동지로서 그동안도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도 무거운 짐을 다시 지게 된 점이 애틋하지만 민노당의 대선후보로서 최대한 역할을 잘 해서 대선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데 앞장서주길 부탁한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절실한 말이다.

또 하나는 민노당에서 초대 대표로 시작해 주요 직책을 가장 많이 맡았던 분으로서 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변화와 혁신은 노회찬, 심상정의 구호로 그쳐선 안 된다, 권영길 후보도 나름대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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