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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에 묻힌 2007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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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에 묻힌 2007년 대선

[2007 대선이야기] 문국현과 심상정 현상이 던진 메시지

신정아보다 관심 못 끄는 범여권 대선주자들

뉴스도 술자리의 화제도 온통 '신정아'다. 신정아가 없었다면 그 많은 신문과 뉴스의 내용이 어떻게 채워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적어도 2007년 9월 현 시점에서 신정아는 권영길 후보가 5.5%P라는 간발의 차이로 민주노동당 후보로 당선된 것보다 더 주목을 받고 있으며 대통합민주신당의 본경선보다 더 큰 관심사임에 틀림없다.
▲ ⓒ연합뉴스

신정아 사건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한 젊은 여성의 거침없는 출세가도가 알고 보니 학력위조, 권력자의 비호, 정·관계, 재계, 예술계를 망라하는 막강한 연줄망에 의한 것이었고, 그 정점에 이른바 '몸로비'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니 어떤 드라마인들 이보다 흥미로우랴?

그러나 대선을 약 3개월 남겨둔 지금, 우리사회는 신정아 외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있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남루한 20대의 삶이 있고 비정규직 문제로 100일째 외로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이랜드 노동자들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를 이끌 차기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문제들이 과연 신정아 사건보다 덜 중요한가?

그러나 문제는 정확히 짚고 가자. 신정아라는 이름 석자 속에 대통령을 뽑는 문제마저 묻히는 상황을 언론의 선정주의적 보도니, 우리 국민들의 집단관음증과 낮은 시민의식이니 이런 변명으로 호도하지 말자.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대선후보들의 인물됨과 그들이 뿜어내는 매력, 정책적 흡인력이 신정아 사건에 감히 근접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하자.

대통합신당 경선 투표율 20%가 던지는 함의

제주와 울산에서 시작된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의 투표율이 18%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날의 강원과 충북 경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낮은 투표율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직전 경선에 대한 관심도를 조사한 결과 32.2%로 나타났다. 본 경선 직전 조사에서는 관심도가 26.0%로 더 하락했다. 가뜩이나 낮은 경선 관심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하락하는 답답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도 10% 남짓한 대통합민주신당의 지지층에서도 관심도가 52.5%로 나타나 약 과반이 외면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지지층까지 포함한 이른바 범여권 지지층에서는 47.0%, 2002년 노무현 지지층에서는 31.9%만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범여권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호남지역에서도 전국 평균 수준인 28.0%의 관심도에 그쳤다.
▲ ⓒKSOI

대통합민주신당에 있어 경선흥행은 가뜩이나 열세인 대선구도를 만회할 유일무이한 기회였다. 정당지지도에서도 현격한 열세고, 인물면에서도 이명박 후보의 '경제'와 '능력' 프레임에 견줄 만한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2002년을 뛰어넘는 경선드라마가 펼쳐져야만 49대 51의 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40대 60의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선후보는 과거의 후보가 아니라 훨씬 경쟁력있고 단련된 후보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경선참여율 18%라는 결과와 1위로 예상된 후보는 1위를 하고 단일화 될 것으로 예견된 후보들은 단일화를 하는 이변 없는 경선 결과는 이같은 기대를 무참히 깨뜨린다. 이변도 감동도 없는 경선, 무관심만이 남아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해있다.

확고한 지지층 없는 대선주자들

이번 대선이 과거와 다른 점은 어떤 대선후보도 지지층이라 불릴 수 있는 집단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 1년 가까이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를 나타내고 있는 이명박 후보에 대해 지지의사를 보이고 있는 층조차도 지지층이라기보다는 선호층에 가깝다.

최근 중앙일보 조사(9월 12일)에 의하면 이명박 지지층 중 과반에 못 미치는 46.5%만이 '이명박 후보가 좋거나 마음에 들어서'라고 응답해 적극적 지지를 표명했고 51.0%는 '지지할 만한 마땅한 후보가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해 소극적 선호에 그치고 있었다. 이에 반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은 강력한 지역기반에 입각한 견고한 지지층을 지니고 있었으며 퇴임 후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뒤에는 지역에 기반한 지지층은 아니더라도 '노사모' 와 같은 마니아층이 버티고 있다.

지역에 기반한 견고한 지지층도 마니아층도 없는 2007년 대선후보들의 상황은 3김시대와 지역주의 시대의 쇠퇴라는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제 대선후보들은 지역민심이나 소수의 마니아층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들을 향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설파함으로써 지지층을 규합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대선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라면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가 후보 선택에서 보다 본질적인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당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보여달라'

대중들은 먼저 '당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보여달라', 그러면 누구를 선택할지 판단하겠다는 입장인데,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은 호남표 확보, 충청과 호남의 서부연합 복원 등과 같은 정치공학에만 집중하고 있다. '당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는데 '통합만 하면, 호남에서 밀어주기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소통 부재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의석수 140여석의 거대정당의 경선보다 10석에도 못 미치는 민주노동당 경선이 더 많은 관심을 끌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노동당 경선은 적어도 '왜' 민주노동당이 집권해야 하는지, 자신이 후보가 되면 어떤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지, 어떤 점에서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는지가 논의되는 장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질문한 결과 '이념과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가 27.2%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으로 '대선을 위해 급조된 정당이다' 21.1%로 나타났다(8월 28일 조사). 즉 대선을 위해 급조된, 정체성도 노선도 모호한 정당이 대통합민주신당의 현주소인 것이다
▲ ⓒKSOI

가치논쟁과 미래논쟁의 장으로서 대선

지금까지만 보면 이번 대선은 '능력'과 '경제' 담론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이명박 후보에 의해 선점되어 있다. '능력' 담론은 능력 없는 자들은 말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모든 담론과 논쟁을 봉쇄하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다.

대선은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논의하는 장이고 가치 논쟁의 장이다. 97년 대선, 2002년 대선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경영 능력'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이들이 집권하면 지금과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대감이 지금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는 대중들의 희망에 불을 붙였고 이는 기존의 보수세력과 진보개혁세력간의 가치논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진보개혁세력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가치논쟁을 주도했고 또 여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민주화세력의 적자임을 주장해온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들은 미완의 87년 체제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 심화의 97년 체제를 극복하여 새로운 2007년 체제에 대한 논쟁을 주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양극화 문제를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서 눈감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영)능력'이 안 되면 '가치'와 '비전'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부재한 상황이다.

문국현과 심상정 현상이 던지는 메시지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치를 시작한 지 약 20일 된 문국현 후보가 수 십 년 이력의 범여권의 유력 대선후보들보다 높은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민주노동당 후보 지지도에서 만년 3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심상정 의원이 결선투표까지 올라가 5.5%P 차이까지 따라잡았다. 적어도 이 두 정치인은 이명박 후보의 '경제' 프레임을 설득력있게 비판하고 자신의 경제 프레임을 내세운 몇 안 되는 후보들이라는 점에서 '가치와 미래 비전'이 대선에서 얼마나 본질적 문제인지를 보여준다.

대중은 정치인의 과거 이력과 경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거는 가치와 미래 상에 따라 반응한다. 현재보다 나은, 현재의 남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선 후보들이 많다면 아무리 신정아 사건이 흥미로워도 이 보다 더 중요하고 주목을 끌 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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