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7월 23일) 내가 바로 이 지면에 "멍청아, 문제는 '평화'가 아니라 '경제'야"(☞칼럼 보기) 라는 글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이 글의 내용과 관련해, 그동안 세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학계와 사회운동의 원로이고 평소 존경해온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가 나의 글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한겨레>, 2007년 7월 25일자의 "문제는 경제라고요?" ☞칼럼 보기). 다른 하나는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간의 남북정상회담이 결정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것이다.
주 교수는 한나라당의 변신은 진정한 것이 아니며 경제가 중요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협공 속에서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는 한국경제의 활로가 남북의 협력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것 말고는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제문제의 활로를 남북간 평화정착과 교류협력에서 찾는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선의 가장 중요한 담론은 경제와 평화의 결합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실천운동에 몸담아온 학계원로답게 경청하고 깊이 생각해볼 주장들이다. 그러나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우선 한나라당의 변신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7월 23일자 글에서 한나라당의 변신이 얼마나 진정한 것인지 불투명하다는 것을 전제한 바 있다. 그러나 바로 "한나라당조차 대선을 의식해서 이 같은 포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햇볕정책의 기조가 시대적 대세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썼다.
핵심은 한나라당의 변신이 진정한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변신은 거짓이며 한나라당은 여전히 냉전적인 수구꼴통당이니 한나라당을 찍지 말라"는 주 교수와 범여권의 담론에 국민들이 얼마나 호응할 것이냐는 것이다. 별로 호응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민들의 주된 관심은 "누가 나의 생존권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냐"이다. 오죽했으면 박정희 향수가 되살아나겠는가?
남북정상회담, 대선 영향 없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이명박의 승리이다. 그 많은 도덕적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저 일자리를 주고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해주면 그만이라는 것이 민심이다(물론 그가 일자리를 주고 신자유주의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 뻔하지만).
또 박 후보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이후보가 냉전적 보수의 상징인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과거와 같은 냉전적 노선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지지자들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정형근 의원이 주도한 신대북정책이 경선과정에 나와 꼴보수 지지층을 의식하느라고 조심을 했지만 이제 국민을 상대로 한 본선이 시작된 만큼 이 후보는 중도표를 잡아오기 위해 본격적으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이 후보가 10월로 연기된 남북정상회담이 혹시라도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하는 우려에서 정상회담에 대해 던지고 있는 견제구와는 별개의 것이다. 참고로 최근의 북한수해와 관련해 반북의 상징인 뉴라이트 단체들까지도 북한돕기에 나서겠다고 선포하고 나선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남북정상회담이 얼마나 획기적인 결과들을 가져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일시적으로는 다른 의제들을 압도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겠지만 대선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평화와 남북관계의 전진을 당연시할 것이다. 대선이라는 선거공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차라리 북한 핵사태가 다시 심각해져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오히려 범여권으로서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리할 것이다.
남북경협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인가?
다음에 집어볼 것은 남북경협 등을 통해 평화와 경제를 결합시켜야 한다는 주 교수의 주장이다. 이는 단순한 평화론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이명박류의 경제대통령론에 맞서서 당장 경제를 살려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다수 서민들의 표를 얼마나 끌어 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 같은 선거공학적 문제점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주장이 우리 경제문제의 핵심이 단순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위협, 즉 신자유주의라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의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남겨 놓은 상태에서의 남북경협은 오히려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과 한국재벌이 중심이 된 한국의 종속적 신자유주의의 북한으로의 영토적 확장이 되고 말 것이다(이 점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진행되고 있는 햇볕 기조는 한반도의 탈냉전이라는 긍정적 계기와 신자유주의의 확대, 심화라는 부정적 계기가 공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한국의 다수 민중이 아니라 재벌과 기업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신자유주의적 북한 흡수통일 전략이 현재의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축적전략일 수 있다. 사실 1990년대 이후 최고의 통일세력은 더 이상 한총련도, 범민련도, 주사파도 아니며 현대와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재벌과 자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파업 한 번 안하는 온순하기 짝이 없고 언어 문제도 없는 양질의 노동력을, 그것도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에서 월 70달러(개성공단의 임금)에 살 수 있는데 이보다 더한 횡재가 어디 있는가?
신자유주의는 분명히 악랄한 반인간적인 체제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봉건적 왕정'의 변형에 불과하고 인민의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북한체제에 비해서는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북한이 남한의 기업들의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에 편입되는 것이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역사의 퇴보'가 아니라 오히려 '역사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념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민중의 삶이 아닌가("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살아 있는 나무는 푸르다"[괴테, 파우스트 중]).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남북경협이 단기적으로는 북한민중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경협이 남한사회, 남한 노동자들에게 끼칠 영향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월 70 달러짜리 북한노동자들을 찾아 공장을 옮기면서 남한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노동운동은 더욱 힘을 잃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노동운동이라는 견제추마저 사라진 신자유주의의 횡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움직임이 심화되면 민주노총이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남북경협 반대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주 교수가 이야기하고, 일부 범여권 주자들이 주장하는 남북경협을 통한 평화와 경제의 결합은 자본의 축적전략, 신자유주의적 자유주의 세력의 경제전략일 수는 있지만 민중운동과 진보진영의 전략일 수는 없다.
이 같은 계급분석이 동반되지 않고 중국과 일본에 끼여서 위기에 처한 '한국'이라는 추상적 국가주의나 민족론에 기초한 '평화와 경제의 결합론'은 한미 FTA가 재벌에게는 막대한 이득을 주지만 민중들에게는 생존권의 위협을 가져다준다는 계급분석을 사장하고 중국과 일본에 끼인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다시 말해, 물론 민족은 중요하지만 내부분석을 동반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에 끼인 한국이라는 식으로 분석단위를 국가로 한 분석과 처방은 넘어서야 한다.
문제는 남북 경제협력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경제협력이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경제협력은 우리(중국과 일본에 대항하는 한국 또는 한민족이라는 추상적 우리가 아니라 남한 민중 나아가 남북한 민중이라는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문제의 핵심은 경제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경제와 평화의 결합도 추상적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니 신자유주의의 확대, 심화를 은폐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고 말 것이다. 이번 대선의 역사적 과제는 평화와 경제의 결합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프레시안> '대선이야기'의 필진이 일부 교체됐습니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과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이 개인 사정 상 칼럼 연재를 중단할 뜻을 밝혀왔습니다. 새 필자로는 한귀영 KSOI 수석전문위원이 합류, '대선이야기' 필진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 이강로 전주대 교수, 한귀영 전문위원, 김호기 연세대 교수,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등 다섯 분으로 운영됩니다.<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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