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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 의회는 한미FTA 수용할까?

[분석] 미국 자동차 업계의 반응 및 민주당 대선 구도가 관건

한미 FTA 재협상이 29일 새벽 최종 타결됐다. 이제 오는 30일로 예정된 서명식과 국회 비준을 남긴 상태다.

"과연 국회 비준 절차를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한국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한미FTA는 쟁점이다. 최근 미국을 방문해,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고 돌아온 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한미FTA에 대한 미국 현지 분위기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DR)에 비견할 만큼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행정부가 호소해도,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NO' 외치는 美 의회

한미FTA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관심은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힐러리 클린턴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지난 9일 미국 최대 노조연합체인 AFL-CIO 주최로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한미 FTA가 비준되면 무엇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비준을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연이어 열리는 한미FTA 관련 청문회도 미국 정치권의 관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국회는 흔히 통법부(通法府, 정부가 발의한 법안이 정쟁의 대상이 아닐 경우, 국회가 충분한 검토와 토론 없이 통과시킨다는 뜻. 이런 성격은 국제 협정의 비준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 의원들은 자기 선거구나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분명히 대변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이런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미국 행정부의 설득은 잘 통하지 않는다.

과거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DR)이 2표 차로 간신히 미국 의회를 통과했던 사실은 미국 의원들의 이런 성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노동조합, 기업 등 미국의 이해 관계자 역시 당초 자신들의 요구가 조금이라도 반영되지 않으면, 해당 FTA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미국의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이런 개별 주체들의 이해 관계를 무시하는 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하는 셈인데, 역시 한국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한미 FTA의 열쇠, 美 민주당이 쥐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 행정부는 FTA 이행법 통과(체결된 FTA에 대한 비준 동의)에 대한 찬·반 표 계산을 한 뒤, 통과가 확실시 될 때까지 이행법안을 의회에 상정하지 않는다. 애당초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를 하므로 이런 표 계산 역시 어렵지 않다.

따라서 통과가 힘든 FTA의 경우, 의회와 행정부간 정치적 거래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페루와 미국의 FTA', '파나마와 미국의 FTA' 역시 이런 거래를 통해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합의가 이뤄진 뒤에야 재협상이 진행될 수 있었다.

결국 미국이 추진하는 FTA 협상의 향배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는 미국 의회이며,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한미FTA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행정부와 의회 사이의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입장정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美 의회에서의 핵심 쟁점은 쇠고기와 자동차

한미FTA 재협상에서 주요 쟁점은 노동과 환경 문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FTA 이행법 통과(비준)를 앞둔 미국 의회에서 정말 중요한 쟁점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다.

쇠고기의 경우,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을 구두로 약속했다. 따라서 올해 안에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쟁점은 해소될 것이다.

한미FTA가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뼈 있는 쇠고기' 수입, 즉 국민의 건강권을 악화시키는 선택의 실행만이 남아 있고 미국은 이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이를 뒤집거나 재협상의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부가 엄두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이 낳을 위험은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해야하는 상황이다.

'힐러리의 FTA 반대'로 이어진 미국 자동차 산업 위기
▲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그는 "한미 FTA가 비준되면 무엇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한미FTA비준을 반대하겠다고 밝혔다.ⓒ<AP>통신

그러나 자동차 문제는 이와 다르다. 미국 정치, 산업, 노동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한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입장은 자동차 문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감원 등)은 미국 사회에서 미국의 무역정책이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자동차산업이 사양화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불공정한 무역행위 때문이라는 시각과,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된 무역정책 때문에 미국의 고용이 해외에 수출(job exporting)되는 결과라는 시각이 섞여 있다.

그런데 앞서도 지적했듯 자동차 문제는 참 복잡하다. 즉 "미국 업계가 반발하니, 한국에게는 이익이 아니냐"라는 단순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단 한미FTA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부각되지 않았을 한미 간 자동차 교역 문제가 한미FTA 때문에 도마에 오른 것 역시 한국 자동차 업계로서는 큰 부담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 정치인들을 자극한 셈이고, 결국 한국 자동차 산업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업체의 미국 현지 생산체제가 완료되는 2009년부터는 관세인하가 수출 증대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없는 반면,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시장 잠식은 급속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상황 탓에 한미FTA에 대한 미국 정치인들의 태도 역시 단순하지 않다.

한국에서의 협상은 美 행정부 입장 청취용, 미국에서의 협상은 美 의회 입장 확인용

협정 서명일인 6월 30일의 2주 전에서야 한국 정부에 재협상 통고서를 송부하고, 서명이 열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재협상이 조급하게 열린 것, 그리고 한국 정부가 처음에는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다가 계속 말을 바꿔가며 재협상에 나서는 것 역시 이런 미국 내의 복잡한 정치 상황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재협상이 두 차례 열린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실상 한국에서 협상은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듣기 위한 것이고, 미국에서의 협상은 무역대표부의 입장에 대해 미국 의회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두 차례의 협상은 실상 장소만 옮겨서 열린 하나의 협상이었다.

아마도 무역대표부는 7개 의제를 우선 수용하지 않으면 향후에 재협상이 더 복잡해 질 수 있으니, 7개 기본의제를 우선 수용하라는 요구를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비자 면제 문제 등을 조기에 처리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TPA가 아니라 지난해 美 민주당의 선거 승리가 핵심 변수

문제는 무역대표부의 제안이 다수당인 민주당의 보장 없이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다.

향후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쟁점에 대해 미국 민주당과 행정부가 어떤 타협을 이루는가에 따라 또 다시 재협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 받은 무역촉진권한(TPA)이 만료되는 6월 30일에 맞춰 한미FTA협상이 진행됐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처지는 6월 30일 TPA종료와 별 관계가 없다. 미국 내부의 정치적 일정과 합의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TPA가 아니라 지난해 민주당의 선거 승리가 한미FTA의 향배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오는 30일 한미FTA 협정안에 서명하더라도, 정부는 미국 내 정치적 일정에 맞춰 재협상을 다시 하게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이번 협상 이후 한미 협상단 간 재협상(정부의 표현대로라면 추가협상)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내부의 정치적 타협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FTA 서두르는 美 공화당, 느긋한 美 민주당

그렇다면 미국에서 비준동의절차가 언제나 이루어질까?

물론 공화당과 미 행정부는 한미FTA가 한미동맹이나 동아시아 안보에 있어 중요성, 한국시장 확대와 동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등 경제적 실익을 들어 민주당을 압박할 것이다. 그리고 한미FTA와 관련된 산업의 보조금 지급이나 심지어 관련이 없는 정책을 연계하여 정치적 거래를 시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입장이 다르다. 급할 것이 전혀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동차 문제와 관련한 민주당 의원의 반대는 매우 거센 상황이다. 민주당과 사이가 나쁜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를 빨리 처리해야 할 인센티브도 없다.

올해 말 민주당 당내 경선은 본격화 될 예정이고, 내년은 본격적인 대선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은 무역 의제를 부각시켜 톡톡한 재미를 본 바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게는 한미FTA를 비준문제를 선거까지 끌어가 정치적 실리를 찾을 인센티브도 갖고 있는 상황이다.

TPA기한에 쫒겨 무조건 FTA 타결한 정부의 어리석음, 국회는 따르지 말아야

따라서 한미FTA에 대한 처리는 아무리 빨라야 연말 이후에나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의회 상정은 행정부와 민주당의 합의가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거래가 더욱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 정치권의 거래와 합의가 지연되어 미국의 대선국면이 본격화되는 시점까지 다다른다면 한미FTA 처리가 2008년을 넘길 가능성 역시 작지 않다. 한마디로 한미FTA의 운명은 미국의 대선구도의 제물이고, 결코 처리가 빨리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일정에 맞춰 시작한 한미FTA는 결국 미국의 정치일정에 끌려 운명이 결정될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TPA 기한에 얽매여 무조건 FTA를 타결한 한국 정부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 국회의 선택이다. 국회는 과연 '통법부'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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