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90여 개 인권·사회단체들은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사독재 시절 제정돼 문교부, 국무총리 지시 등으로 이어져 온 '국기에 대한 맹세'는 수정이 아니라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 이유로 무엇보다도 '맹세'는 개인의 양심적 자유에 맡길 일이지 법으로 강제할 사항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국기에 대한 맹세' 앞에서 일제 황국신민서사를 떠올릴 수도 있고, 종교적 계율에 위배된다고 여길 수 있으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해 충분히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주노동자를 비롯해 이주인들이 점점 증가하는 현재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인권침해요소가 다분한 법 제정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처벌조항이 있을 때에만 나서겠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맹세를 하지 않는다고 법적으로 처벌받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이미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사회적으로 많은 '피해자'들을 낳아 왔다. 1970년 전국 각지 학교에서는 국기에 경례를 하지 않거나 맹세를 거부한 교사들이 구속됐으며 학생들은 제적을 당했다. 이런 사례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2003년 경기도 의정부 영석고에서는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밝힌 한 학생의 입학이 거부됐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006년에 역시 국기에 경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기도 부천 상동고에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던 이용석 교사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그는 "국가가 노동자, 농민, 민중들의 이익과 권리에 충실하다면, 국가는 국가 구성원들에게서 충분히 그 권위를 인정받을 것"이라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법으로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편집자>
나는 2006년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정직 3월의 징계를 받은 교육노동자다.
내게는 6살짜리 아이가 하나 있다. 모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는 <파워레인저 매직포스>라는 어린이용 드라마가 있다. 평범한 아이들이 마법의 힘으로 변신해 정의의 힘으로 악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내 아이는 이 방송물의 매니아(?)다. 아이는 이를 통해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다는 것을 내면화하고 있다. 폭력이 '선'이라는 것을 뒤집어쓰고 내면화되어 가고 있으며,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영웅주의', 그리고 전체를 위해 나 자신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전체주의'가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아이는 자기 혼자 '파워레인저'의 흉내를 내며 자신만의 가상의 적을 물리치고는 한다. 그것도 아이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어떤 국가를 선택하든, 아니 국가를 선택하든 말든
객관과 합리, 중립이라는 외피를 뒤집어 쓴 채 이루어지는 교육의 위험성은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내면화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일상적으로 유지, 강화되고 있다. 결국 그것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되며 사회 구성원들은 이를 다시 객관과 합리,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바로 이런 교육의 결과다. 누군가에 의해 내면화된 목적의식적 교육의 산물일 뿐이다. 나는 그동안 이것이 맞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하지 않는다.
이유 중의 하나는 왜 내게 그것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내게는 국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어떤 국가를 선택하든, 아니 국가를 선택하든 말든 그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다.
내가 경례를 하고 맹세를 해야 할 지금의 국가는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가이기에 그런 국가에 대해서 나는 그 어떤 동의도 할 수 없다.
미국의 군사재편전략으로서의 평택미군기지 이전은 민중과 노동자의 삶을 파괴할 전쟁을 전제로 한 전지구적인 자본의 전략일 뿐이다. 수십 년 동안 삶을 가꾸어 왔던 주민들을 군대를 동원해서 그 터전에서 강제로 몰아내는 야만의 행위를 서슴지 않는 국가에 난 동의할 수 없다. 철저히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노사관계 로드맵', '비정규직법', '한미 FTA'를 강행하는 국가에 난 동의할 수 없다. 세계 자본의 꼭두각시가 되어 '이라크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전쟁'에 민중의 자식들을 내모는 국가에 난 동의할 수 없다.
왜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생에 대한 군사문화를 내버려두나
또 다른 이유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전체주의가 이 땅에서는 일제 때부터의 군국주의와 맞물려 여전히 군사문화로 남아 있으면서 우리에게 무조건적 충성과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다.
일제 시대 때 군국주의 일본 정부는 이 땅에 학교를 지었다. 이유는 황국신민화를 통해서 일본 왕에 대한 자발적 충성을 내면화시키기 위해서다. 이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한 학교의 형태는 군사학교였다.
지금 학교의 모습은 일제 시대의 학교 구조와 내용을 해방 후 군사정권을 거쳐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학교의 모습을 보자. 아침 운동장 조회 때의 모습은 연병장에서 사열 받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교실 칠판 위 한가운데에는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가 여전히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며, 교직원 회의 시간이든 운동장 조회 때든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무의식적으로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교실에서는 군사용어인 '차렷', '경례'가 아직도 자리잡고 있으며, 오와 열을 맞추어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연병장에 도열한 군사열을 연상시킨다.
해방 후 일제의 황국신민화는 반공과 안보 의식화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통제에 따른 질서와 국익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국익을 위해서 노동자, 농민, 민중이 희생해야 한다는, 그래야 다 잘 살 수 있다는 집단 최면만이 존재하고 있을 따름이다.
80년대까지 교련으로 계속되었던 무조건적 복종과 질서의 교육은 지금도 교문지도, 두발규제 등에 군사문화로 남아 있다. 일찍이 박정희는 사회교화라는 명목으로 국민(남성)들의 두발규제를 위해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가위질을 해대지 않았던가. 지금은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대상만 학생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박정희식 군사문화의 잔재와 이데올로기는 일상의 여러 곳에서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태어났다"로 대변되는 이 무서운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권위는 자신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인정하는 것"
지금 국기법 논쟁이 한창이다. 국기'법'이 왜 필요한가? 결국 '강요된 충성'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수작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권위는 자신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국가가 국가다우면 국기'법'까지 필요없다. 아무 것도 필요없다. 국가가 노동자, 농민, 민중들의 이익과 권리에 충실하다면, 그 국가는 국가 구성원들에게서 충분히 그 권위를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기법을 제정하려는 이 움직임은 국가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해 자본의 이윤을 더욱 보장하기 위한 얄팍한 술책에 불과하다.
당장! 국기법을 폐지하라. 그리고 내게 '충성'을 강요하지 말라.
1972년과 2007년, 시대를 뛰어넘은 '닮은 꼴' 학교 '국기에 대한 맹세'는 1968년 충청남도교육위원회 차원에서 최초로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40여 년간 '국기에 대한 맹세'는 법적으로 처벌조항이 명시돼 있지는 않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이들은 크고 작은 피해를 받아 왔다. 1972년 전남 광양군 진월면 오사리 중앙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50여 명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함께 거부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오사재건교회 주일학교 교사 양영례 씨가 구속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던 초등학생 김현호 씨는 2년 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국기 경례에 대한 강요에 못이겨 자퇴를 했다. 지금도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하고 있는 김현호 씨는 최근 인권단체 '인권운동사랑방'에 보내온 글에서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나 묵념을 하지 않으며 맹세문을 외우지 않는다"며 "그것은 순전히 신앙 양심에 기초한 행위이지 애국적 동기가 불순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내게 영향을 준 분은 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렀던 목사님이셨다"며 "그는 독립된 조국에서 일제와 똑같은 국가주의의 모순을 보고 저항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강요된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면 강요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우상숭배가 아니란 말인가"라며 "내게 있어 그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일 뿐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애국주의의 덫을 벗어버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일 것"이라고 밝혔다. 35년 뒤인 2007년, 여전히 대부분의 일반 학교에서는 조회시간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요구한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다이루'라는 가명을 쓰는 한 학생 역시 인권운동사랑방에 기고한 글을 통해 "학교와 사회, 국가는 국기에 대한 맹세, 경례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왔는가에 대한 진실은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며 "폭력적이고 무조건적인 강요는 내가 국기에 대한 맹세, 경례를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한다"며 "난 나보다 전체가 우선시 되는 사회, 국민보다 국가가 우선시 되는 국가를 만드는, 유지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것은 폭력적이고 무조건적인 강요에 대한 항의, 더 큰 죽음의 폭력을 막기 위한 작은 평화의 행동, 사람이 사는 세상을 위한 침묵의 외침"이라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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