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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의 악몽, 제주도도 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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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의 악몽, 제주도도 꾸게 될까"

<인터뷰> 방한한 하와이 평화활동가 카지히로 씨

미국 하와이주(州). 산호초로 둘러싸인 1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곳. 하와이는 세계 어디에서나 손꼽히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와이의 전부일까? 하와이를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들은 하와이의 진짜 '특징'은 따로 있다고 한다. 바로 섬 전체가 미군의 요충지라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오아후 섬에서는 22.4%, 그러니까 5분의 1이 넘는 면적을 군대가 차지하고 있다.

10년째 하와이에서 평화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카일 카지히로(Kyle Kajihiro) 씨. 그가 지난 5월 29일 급하게 한국을 찾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그가 가장 부러워 했던 섬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고 했다. 그 섬이란 바로 해군기지 설치를 둘러싸고 점점 격렬한 논란에 휩싸여들어가고 있는 '평화의 섬' 제주도다.

제주특별자치도 김태환 도지사는 지난 14일 1500명의 도민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5년간 끌어 온 국방부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 남부에 위치한 서귀포시 대천동이 최우선 후보지이며 제주도는 수용댓가로 알뜨르 비행장 양여, 지역개발사업 700여억 원 및 복합휴양시설 지원 등을 받게 된다.

카지히로 씨는 군사기지 건설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제주도와 '하와이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30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00여 년전 시작된 '하와이의 재앙'

일본계 이주민 4세인 그는 현재 미국 평화단체인 AFSC 하와이 지역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카지히로 씨는 군사기지는 한마디로 '하와이의 재앙'이었다고 표현했다.
▲ 1893년 하와이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미국 군대 ⓒ프레시안

그 재앙이 시작된 것은 100여 년 전이었다. 1800년대 중반까지 하와이 왕국은 독립국가였다. 하와이에 괌, 필리핀, 쿠바 등지와 같이 군사 점령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계기는 1898년 스페인-미국 간의 전쟁이었다. 이보다 앞선 1893년 '하오레(백인 계열 엘리트)' 사업가들은 하와이의 카라카우라 왕을 압박해 진주만에 대한 독점권을 얻고 미국 군대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을 바꿔놓았다.

1900년 진주만에 해군기지가 건설됐다. 이는 36개의 양어지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의 발발 계기가 된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미 정부에게 군대를 확장하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수많은 땅이 대통령령으로 몰수됐고 1944년에는 총 7억3400만 평이 군용지로 쓰였다.

그 이후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에 미군 내 가장 큰 규모인 태평양지구사령부(PACOM)가 설치됐다. PACOM은 43개국과 20개의 속령 및 보호령, 5개의 상호방위조약이 다루는 범위를 관할한다. 미군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30만 명의 군사가 속해 있으며 10만 명의 서태평양 주둔군사도 이에 포함된다.

평화활동가들은 하와이를 '태평양에 있는 군사기지의 문어'라고 표현한다. 하와이의 산과 바다에 위치한 망원경, 무선방송, 전파탐지시설들은 오키나와, 한국, 필리핀, 괌 등 다른 곳에 다리를 뻗치고 있는 군사기지와 연결된다. 161개의 군사시설과 섬 전체면적의 5.7%를 차지하고 있는 미군기지, 그리고 섬 전체 주변 바다에 지정된 해양군사작전구역은 하와이를 설명해주는 '현실'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미군기지가 더욱 확장될 거라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291여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동원되는 '스트라이커 여단'을 하와이에 주둔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연방법원은 이 군대가 환경보호법을 침해했다는 판결하고 스트라이커 여단 프로젝트에 대한 일시 금지명령을 내렸지만 미 정부는 하와이나 괌 둘 중 한 곳에 항공모함 공격 그룹을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 과거와 현재의 진주만 모습 ⓒ프레시안

환경오염, 빈부격차…군사기지의 '유산'

미군기지 113년. 카지히로 씨는 그간 서서히 하와이 원주민들은 최악의 사회적 지위와 거주지 상실, 가난, 질병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밝혔다.

군대로 인한 변화는 하와이 원주민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소외된 소수자로 만들었다. 미국 본토 등에서 온 4만4000명의 현역 군인과 5만6000명의 부양가족들은 하와이 전체 인구의 8%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으로 집을 짓고 살아가는 반면, 집이 없어 해안가에 텐트를 치고 사는 원주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아후 섬의 '식량의 보고'였던 푸울로아(Pu'uloa) 지역은 이제 주요 핵무기 저장 및 보관장소로 전락했다. 미 국방부는 하와이에서 열화우라늄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2006년 1월 지역사회 단체들은 와히아 섬과 근처 훈련 지역에서 열화우라늄이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특히 군사시설에서 유출된 유독물질 등으로 오염된 지역에는 주로 하와이 원주민과 아시아 및 태평양 이주자 등 저소득층이 산다. 이들은 오염된 진주만에서 나오는 생선과 조개류를 주식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카지히로 씨는 '환경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했다.
▲ 미군기지로 사용 중인 하와이 군도의 모습. 빨간색이 현재 사용되는 부분이며 주황색은 과거에 사용된 부분, 노란색은 스트라이커 여단 등 앞으로 기지가 들어설 부분이다. ⓒ프레시안

1976년과 2000년, 하와이의 반전운동 불붙다

군사기지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은 1970년대 베트남전을 계기로 미국내 반전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무렵 처음 시작됐다. 1976년 9명의 하와이 원주민 활동가들이 카호올라웨(Kaho'olawe) 섬에 들어가 예정돼 있던 해군폭격을 막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폭격훈련을 막은 데 이어 미군이 불발탄 제거작업을 하도록 했다. 그 이후에도 하와이 내 지역마다 군사기지에 대한 반대운동이 전개됐지만 통합된 움직임은 아니었다.

2000년 하와이 내 시민단체들은 'DMZ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군사 문제에 대항해 온 활동가들과 단체들이 모여 만든 이 단체는 '비무장지대'라는 의미의 군사용어인 DMZ를 상징적인 의미로 차용했다고 한다.

이들은 하와이 내 전반적인 기지문제에 대응하며 '군 팽창 금지', '군이 점령한 땅 정화 및 반환', '군에 의존하는 경제를 대신할 안정적인 대안책 개발', '군에 의한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등 미군기지가 주둔하는 지역 평화단체들과의 연대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카지히로 씨는 최근 스트라이커에 대한 하와이 주민들의 인식과 저항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0일 하와이 내에서 가장 군사기지가 집중된 오아후 섬에서는 스트라이커 여단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는 "아직 하와이 내에서 기지 반대운동을 펼치는 목소리가 소수인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점차 많은 이들이 이에 동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사기지는 작은 섬에 주는 마약과도 같다
▲ 카일 카지히로 씨 ⓒ프레시안

카지히로 씨는 무엇보다도 군사기지가 이 작은 섬들에 가져온 악영향은 '경제적 의존'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언제나 경제를 들먹인다.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보조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한다. 기지 건설을 위한 돈은 유입되겠지만 그뿐이다. 자본은 일을 마치고 다시 나간다. 그러나 그렇게 침투된 자본은 작은 규모의 공동체 자체를 바꿔놓는다.

이제 이 거대한 군대와 연관된 작은 결정도 섬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우리 경제는 한마디로 '군사기지에 대한 의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경제는 워싱턴 D.C에서 결정한다. 난 이것을 마약이라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좋지만 그 뒤의 결과가 끔찍하기 때문이다."


카지히로 씨는 자신이 군사기지로 인해 자본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투자가 창출하는 이익이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 돈은 어떻게 들어오나. 미국 군수기업들과 정치인, 그리고 군대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정말 군사기지에 필요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본을 위한 것이다.

마을에서 '우리는 건설업이 필요해요'라고 하면 국회는 '그럼 스트라이커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화답한다. 그 이익은 다시 기업이 가져간다. 이익이 있으면 손해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가 그 비용을 지불한다. 주민들의 거주공간이 오염되고, 마실 물이 오염된다. 그곳을 정화하기 위한 비용은 다시 주민들이 지불할 것이다. 나는 이 같은 결과가 제주도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환상의 파라다이스'의 고통, '평화의 섬' 제주도에는…
▲ ⓒ프레시안

카지히로 씨는 하와이가 관광지로 유명해진 것 역시 미국 정부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환상의 파라다이스'는 관광산업과 군수업이 결합한 프로파간다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군대는 '전쟁'을 또 다른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 한다. 실제로 2차대전을 기념하는 애리조나 메모리얼 등은 각광받는 관광코스로 알려졌다.

우리는 제주도가 자신들을 스스로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것을 부러워했다. 닮고 싶었다."


그는 하와이의 이 같은 사정이 미국 본토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다고 밝혔다. 해군기지 건설계획 수용 발표가 난 뒤,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이 방문할 때 수천 명의 도민이 참여했던 항의 시위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도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미국 본토의 평화단체들 역시 하와이 군사기지 문제에 관심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들 역시 군사기지 주둔이 그곳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볍게 생각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끊임없이 가서 설득하고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때로는 상징적인 행동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하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쿠아는 작은 섬이었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해군폭격 반대 시위는 큰 반향을 불러왔다."


또 그는 하와이인들과 제주도민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권, 자신의 땅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킬 수 있는 권리가 걸린 문제다. 또 정부가 자국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문제를 가만히 둔다면 결국 그 영향은 국민들 스스로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부는 시시때때로 군사기지가 우리의 안보를 지켜줄 것이라고 한다. 자국 기지건설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그렇게 나온다. 미국 역시 끊임없이 그 같은 프로파간다를 해 왔고 9.11 테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쟁을 비롯해 환경과 자국민의 생존권까지 고려하는 '인간 안보'(human security)다.

나는 제주도민들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이미 충분히 희생했다고 본다. 정부는 언제나 새로운 지역을 '군사 지대'로 설정하고 그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인터뷰를 마친 카지히로 씨는 이날 오후 제주도로 향했다. 그는 서울과 제주에서 이틀에 걸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녹색연합, 제주 군사기지반대 도민대책위, 서귀포시 군사기지반대대책위 등 초청단체들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여했다. 하와이 군사기지 100년의 참담한 역사를 알고 있는 그가 최근 우리 정부로부터 '자국 안보'를 위해 기지 건설을 강요당하는 2007년 제주도에서 어떤 심정을 갖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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