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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 하면 넘어간다. '간접투자' 포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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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깜박 하면 넘어간다. '간접투자' 포장에

[협정문 따라읽기·3] 방송, '너무 잘 막아서 문제'라는데…

지난 25일 공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는 금융, 건설, 교육, 법률, 방송·시청각, 통신, 유통, 의료 등을 망라하는 '서비스, 투자' 분야의 산업들이 두 개의 범주로 나뉘어 있다.

현행유보(부속서Ⅰ)와 미래유보(부속서 Ⅱ)가 그것이다. 이 중 현행유보는 향후 협정문에 적힌 것 이상으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추가 규제를 할 수 없는 반면 미래유보는 그런 조치가 가능하다. 즉 둘 중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해당 산업을 보호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갈린다.

협정문 중에서 현행유보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곳에 기존 법규보다 완화된 조치가 적혀 있다면 그것은 사실상 '권리 유보'가 아닌 '개방'을 의미한다. 열린 문이 더 이상 닫힐 수 없도록 돌을 끼워넣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회사 차리면 누구나 방송할 수 있다

방송 역시 그 중 하나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방송위원회는 "방송 분야 개방은 없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천명해 왔다. 그러나 협상이 타결된 당일인 지난달 2일 방송위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해설서를 배포하며 방송이 개방됐음을 시인했다. 그 중 핵심은 '간접투자'다.

"이 협정 발효일 후 3년 이내에 의제외국인에 대하여는 종합편성 또는 보도·홈쇼핑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지 아니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100분의 100까지 보유하도록 허용된다." -한국측 현행유보(부속서Ⅰ), 53쪽

의제외국인이란 '외국자본이 일정량의 지분을 넘게 갖고 있거나 외국인이 최다주주인 국내법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중 케이블TV의 양대 사업인 방송채널사용사업(PP, Program Provider)과 종합유선방송사업(SO, System Operator)에서는 외국인이 지분의 50%를 넘게 갖고 있는 국내 법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고 이들이 투자할 수 없도록 제한해 왔다. 즉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에 투자한 뒤 그 기업이 또 다시 한국 방송사들의 지분을 소유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시장에 진출하는 행위를 막아 왔던 것.

그러나 위의 협정문은 그런 제한을 완화하는 동시에 더 이상 규제를 늘릴 수 없도록 못박았다. 이에 따르면 협정이 맺어진 뒤 '늦어도 3년 후'에는 미국 기업이든 한국 기업이든 간에 한국에서 법인을 세우면 누구든지 PP를 설립하거나 그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급속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국내 PP 시장을 100% 개방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영화·애니메이션에 "웰컴" 보낸 협정문

두 번째는 방송 쿼터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또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채널별로 적용되는 연간 분야별 요건은 다음과 같다.

가. 애니메이션: 연간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시간의 100분의 30이 대한민국 콘텐츠로 편성되어야 한다.
나. 영화: 연간 전체 영화 방송시간의 100분의 20이 대한민국 콘텐츠로 편성되어야 한다.
다. 대중음악: 연간 전체 대중음악 방송시간의 100분의 60이 대한민국 콘텐츠로 편성되어야 한다." -한국측 현행유보(부속서Ⅰ), 55쪽


즉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비지상파 부문에서 현재 각각 35%와 25%라고 명시했던 국산 애니메이션 및 영화에 대한 쿼터를 5%씩 낮춘 것이다. 현행유보에 속해 있는 관계로 앞으로 더 이상 국산 프로그램에 대한 쿼터를 늘일 수 없다는 점에서 국내 방송 시장이 미국 콘텐츠 산업에 확실한 길을 터준 셈이다.

물론 국산 프로그램 쿼터 완화가 반드시 미국산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효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쿼터 완화에 이어지는 다음의 협정 내용은 보다 확실한 '답'을 주고 있다.

"지상파방송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외국에서 수입한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 중 1개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을 해당 분야별로 매 분기 전체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 방송시간의 100분의 60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는 현행 법규를 의미한다. -편집자) 협정발효일 이내에 대한민국은 1개 국가 콘텐츠 한도를 100분의 80 이상으로 설정하도록 보장한다." -한국측 현행유보(부속서Ⅰ), 56쪽

현재까지 국내 방송들은 외국의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중 한 국가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제해 왔다. 그러나 협정문에 따르면 협상이 체결되는 즉시 한국 정부는 지상파와 비지상파 부문을 가릴 것 없이 1개 국가의 콘텐츠 한도가 '80% 이상'이 되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 미국 콘텐츠가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놓는 셈이다.

향후 미국 기업들이 국내 PP산업에 진출한다는 점과 국내 PP들의 자체 콘텐츠 제작이 활발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개 국가 콘텐츠 한도가 100%까지 늘어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국산 프로그램 쿼터가 더욱 축소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미국 콘텐츠들의 국내 방송 장악을 사실상 인정해준 것이다.

'최소한의 조치' 유지한 것이 '잘한 협상'일까

협상이 타결된 뒤 방송위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측의 요구가 이밖에도 많았지만 우리가 '막아냈다'고 주장한다. 방송사업자 대표자 및 편성책임자를 비롯해 KBS·EBS 이사 국적제한, 소유제한 등을 '현행유보'에 포함시킨 점은 향후 규제강화 가능성이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현행유보 사항과 대조해볼 때 이 같은 사항들은 미국에서도 자국의 산업 및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규제하고 있는 최소한의 사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방송, 통신사업자, 항공로 또는 항공고정국의 허가도 다음 당사자들에게 부여되거나 보유가 허용될 수 없다. 1) 외국인 또는 그 대표, 2) 외국 정부의 법에 의해 설립된 회사, 3) 주식자본의 1/5 이상을 외국인이나 외국 정부.

방송 허가의 외국인 소유를 허용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한, 방송국 허가는 주식자본의 1/4을 초과해 외국인이나 그 대표, 외국 정부나 그 대표, 또는 다른 국가의 법에 의하여 설립된 기업이 기록상 보유하거나 의결권을 가지는 회사에 의하여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배되는 회사에게 부여될 수 없다." -미국측 현행유보(부속서Ⅰ), 14쪽


여기에서의 '방송사업자'는 지상파 방송을 의미한다. 미국 역시 1/5, 즉 20% 이상의 지분을 외국인이나 기업이 소유한 법인에 대해 방송사업에 대한 진출이 제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 FTA는 방송의 가장 약한 고리를 침투할 것"

지난 25일 협정문이 공개된 뒤 일부 조항에 대한 논란이 일자 정부는 또 다시 "우리가 잘못한 것 없다"며 홍보에 나섰다. 정부는 '주요 쟁점별 질의응답 자료'를 통해 방송 분야에서도 PP에 대한 개방이 '간접투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이 직접투자 제한 철폐를 요구했지만 우리가 막아냈다"며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4월 협상 타결 직후 GE(제너럴 일렉트릭) 등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 시장 진출을 시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GE코리아 황수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투자 가능성을 시사했다. NBC 유니버셜 텔레비전 그룹, 유니버셜 픽쳐 방송, 프로덕션 등을 보유하고 있는 GE는 특히 NBC 산하에 18개 케이블 네트워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28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주최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한미FTA, 유료방송시장 개방의 영향과 대응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PP 시장에 대한 개방이 향후 10년을 전후로 한국 방송 시장 전체를 바꿀 것이라고 분석했다.

KBI 권호영·하윤금 책임연구원은 이날 발제문에서 "한국에는 150여 개의 PP가 활동 중이지만, 대부분 채널이 미국 기업이 투자하는 채널과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장르로는 지상파계열 드라마, 게임, 음악, 연예정보, 교육, 종교 채널, 그리고 미국인의 진입이 제한된 뉴스와 홈쇼핑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들은 "PP의 프로그램 제작에도 영향을 주어 독립제작사 등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지상파TV 역시 외국 채널과 직접 경쟁함에 따라 시청률 경쟁은 보다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시청률 경쟁은 곧 방송의 공공성 및 공익성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어 발제한 황근 선문대 교수는 이를 '우리 방송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절대 강자인 지상파방송, 케이블 SO, MPP와 절대 약자인 위성방송, 독립PP, 독립제작사 등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는 한국의 방송 시장에서 한미 FTA로 인한 개방은 우리 방송 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 즉, 구조적 취약점을 통해 침투해 올 것"이라며 "이는 우리 방송시장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하기 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PP 개방에 '3년 이내'라는 유예조건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늦어도 2010년부터는 시장 개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상업성 높은 프로그램'과 함께 '막강한 자본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 미디어 기업들의 침투는 시청료 인상 등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공익 프로그램 감소 및 문화적인 종속을 동반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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