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을 외치다 주저앉아 흐느끼던 이현배 씨가 입을 열었다. 이 씨가 원하는 '사람 대접'은 간단했다. 장애가 있는 이 씨의 아이가 비장애 학생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낯선 요구가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통합교육'에 대한 요구다.
이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우리지역에 특수학교가 없으니 이사 가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일반 학교에 입학했고, 온갖 수모를 참으며 6년을 버텼다. (☞ 관련 기사 : '3월이 두려운 사람들')
이 씨는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격리된 시설에 수용해 내 아이에게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박탈하는 건 아이의 행복추구권을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아이는 무사히 초등학교를 마쳤지만, 계속 학업을 이어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재가(在家) 장애인의 15.8%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마치지 못한 경우는 45.2%,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경우는 62.0%였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많은 선진국처럼 일반 학교에 특수학급과 특수교사를 확충해야 한다. 요컨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을 위한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특수교육지원법은 이런 여건을 만들기에 적절치 않았다. (☞ 관련 기사 : "목발로 횡단보도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 주는 사회")
학교 측의 장애아 입학거부 등에 대해 지난 30년 간 처벌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 씨를 포함한 장애인 학부모들은 기존의 특수교육지원법을 대체할 새로운 법안을 요구했다. 이들은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안 제정 운동을 전개했고,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이에 동참했다.
그래서 나온 게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장애인교육법)'이다. 지난해 5월에 발의된 이 법은, 그러나 일 년 가까이 지나도록 제대로 논의되지 못 했다. 누군가 반대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의원들이 찬성했다.
발의 당시, 229명의 여야 의원이 동참해 눈길을 끌었던 이 법이 줄곧 외면당했던 것은 사립학교법 때문이다. 사학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국회 교육위가 아예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 학부모들이 국회 기자실을 찾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월 임시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또 한 해를 넘기게 된다는 것. (☞ 관련 기사 : 서경주 씨가 국회 기자실 앞에서 흐느낀 사연)
그리고 4월이 다 지나갔다. 당시 국회 기자실을 찾았던 장애인 학부모들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모처럼 환한 웃음이 입에 걸려 있다. 지난달 30일, 장애인교육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인교육법을 대표발의한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소감을 밝혔다. <편집자>
국회 앞에 펼쳐진 감동적인 풍경
지난 4월30일은 국회 역사상 흔히 볼 수 없는, 매우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 날이었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장애인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장애인교육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법안 논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4월 국회 통과'라는 목표가 마침내 이뤄졌다.
또한 장애인교육법이 통과된 직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그동안 이 법의 제정을 위해 한뜻으로 노력해 온 국회의원들과 장애인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모두가 기쁨과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모여 제일 먼저 축하인사를 보냈고 뒤이어 이 자리에 참석한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의 이주호, 나경원, 임해규, 유기홍 의원은 학부모들의 노력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예전에는 정치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정치인들이 모두 멋있어 보인다"라고 웃음꽃을 피웠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이 탄생하기까지
우리나라 장애인교육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장애인부모가 장애인학생을 교육하려면 보통의 학부모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입학, 등하교, 상급학교 진학 등 학교를 보내는 과정도 험난하고 우리 사회와 학교에서 당하는 설움과 차별을 이겨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부모들이 "내 아이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았으면"하고 한탄을 하겠는가? 기존 특수교육진흥법의 목적을 읽어보면 말은 그럴 듯하다.
특수교육진흥법 제1조 목적에는 "이 법은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적절하고 고른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교육방법 및 여건을 개선하여 자주적인 생활능력을 기르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활안정과 사회참여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법은 제정(1977년)된 지 30년, 전면개정(1994년)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법 조항이 초중등과정 중심으로 규정되어 있고 무엇보다 법의 구체성, 강제성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열악한 특수교육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의 틀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제정하자!"였다.
장애인교육권연대와 함께 진행한 법안 마련 논의
법 초안을 마련했고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여러 차례의 토론회, 공청회를 거쳐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완성되었다.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법안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숱한 논의 끝에 결국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들어졌고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06년 5월 8일 국회의원 228명의 서명을 받아 '장애인의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인교육지원법)제정안'을 발의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안(최순영의원 대표발의)과 특수교육진흥법 전부개정법률안(정부발의)을 섞어놓은 절충법안이다. 법 명칭만 봐도 '장애인'도 들어가고 '특수교육'도 들어가 있다.
절충법안이긴 해도 두 법안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장애인교육지원법의 주요내용이 퇴색되지 않고 거의 다 담겨 있다. 장애인교육법은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과 요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발의하고 심의하는 과정의 중심에 장애인학부모 등 장애인교육권연대가 당당하게 자리를 틀어쥐고 있었다.
국회가 시혜의 차원에서 던져준 법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힘겨운 투쟁을 통해 쟁취한 법이기 때문에 이 법을 시행하는 과정에도 장애인 학부모들은 단단히 한 몫을 할 것이다.
장애인교육법의 내용은?
4월30일 국회 본 회의장에서 이 법안을 표결하기 전에 제안 설명한 내용의 골자는 이렇다.
"첫째,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을 폐지하고, 장애인의 교육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으로 제명을 변경했습니다.
둘째, 특수교육에 있어서 유치원 및 고등학교 과정의 의무교육을 도입하고 장애영아교육 및 전공과 과정을 무상화하며, 대학의 장에게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설치와 편의제공을 의무화하는 한편 장애성인평생교육시설에 관한 규정을 둠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생애주기별 교육지원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셋째, 특수학교의 학급 및 일반학교의 특수학급당 학생 수를 현행보다 대폭 낮추어 이를 법률에 명시하고,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하여 가족지원, 치료지원, 보조인력 지원 등 관련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제안 설명에는 빠져 있지만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추가하자면 장애인 및 학부모의 권리를 강화하여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와 교육기회 배제 등의 차별을 받으면 심사청구, 행정심판 청구 등을 통해 교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장애인교육법 시행으로 달라지는 것들
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법적인 근거가 생겼다는 것은 글씨를 쓰려는데 필기구와 종이가 생긴 것처럼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교육법이 내년 5월부터 시행되면 장애인학부모들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자녀의 장애가 발견되면 연령에 관계없이 무상으로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장애 특성에 맞게 적절한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유아교육과 고등학교 과정이 의무교육이 되었기 때문에 국가와 지자체는 시군구에 특수학급, 특수학교를 설치하고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수교육수혜율이 현재의 25%에서 90%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다. 또한, 공교육체계 속에서 가족 상담 지원, 치료 지원 등이 실시되어 가계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사설치료비용이 절감되는 등 가족들이 떠안아야 했던 어려움이 많이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학생들의 대학진학의 문이 넓어지고 선진국 대학처럼 각종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며 장애성인을 위한 야학 등 평생교육에 대한 지원도 대폭 확대될 수 있다.
장애인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학력 이하이기 때문에 평생교육에 대한 지원은 매우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각종 차별 사례에 대한 처벌과 시정요구의 길이 열려 학부모들이 주체적으로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학교현장이 새롭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장애가 무슨 죄인 양 숨 죽이며 움츠려 있어야 했던 학부모들은 이제 법에 따라 당당하게 교육권보장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체육교과 시간, 현장학습, 소풍, 수학여행 등에 장애학생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선진국처럼 교육여건이 좋아져서 장애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실질적인 통합교육을 받게 되면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장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개선되고 이후 사회통합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과제는
앞서 언급한 법 제정에 따른 변화는 예측 가능한 밝은 미래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가 시행령, 시행규칙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정 논의과정에 장애인당사자들이 참여를 요구했듯이 장애인교육법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실질적으로 학교현장이 변화하고 그 변화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장애인교육예산 확대가 필수적이다.
법 제정이 '산고 끝의 기쁜 출산'이었다며 법 시행은 양육의 과정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학부모들은 수년간 법제정을 위한 투쟁을 진행하면서 우리 아이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장애인교육법 조항들이 장애인교육권 보장의 지침서, 나침반이 되어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장애인교육 선진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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