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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게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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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게해 달라!"

서경주씨가 국회 기자실 앞에서 흐느낀 사연

24일 오후 4시경. 국회 기자실 주변 통로 쪽에서 격한 아우성이 들려왔다. 구호 외치는 소리를 배경으로 여성들의 비명이 뒤엉킨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무리를 이끈 한 남성은 자신들을 제지하는 국회 경위와 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마땅한 유인물도 한 장 없이 기자실 진입을 시도한 듯한 50여 명의 무리는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이었다. 서넛을 빼곤 대부분 30~40대의 여성들이었다. 이들이 국회 본청 면회실부터 꽤 먼 거리에 있는 기자실 앞까지, 덩치 좋은 경위들의 제지를 악다구니로 뚫고 들어와야만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지역에 학교가 없으니 이사 가라"

무리를 복도 바닥에 주저앉힌 한 남성이 두서없이 격정적인 울분을 토로할 때 서경주 씨는 서럽게 흐느꼈다.

서울 마포에 사는 서 씨의 아이는 이제 6살이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는 1급 장애판정을 받았다. 자가용이 없는 서 씨는 오전 8시에 대중교통편으로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갔다가 오후 5시 경 함께 귀가해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본다. 집안형편은 날로 쪼들려가지만 맞벌이는 애당초 그만뒀다.

서 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1년을 기다린 결과이긴 하지만 "강동구나 서대문구로 먼 길을 오가지 않아서 다행"이니 그렇다는 것이다.

서 씨에 따르면 마포에 거주지를 둔 장애아동 수는 176명인 데 반해 마포지역 어린이집 전체가 장애아를 수용할 수 있는 정원은 23명에 불과하다. 153명의 장애아들은 그냥 집에 머물며 순번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먼 지역의 장애인 아동시설을 찾아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이가 학교를 입학하는 몇 년 뒤부터가 더 걱정이다. 혹시나 입학을 거부당하지는 않을까, 학교가 아이를 받아만 두고 사실상 방치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괜한 걱정이 아닌 듯 했다. 무엇보다 장애아를 수용할 수 있는 초등학교가 부족하다. 게다가 초등학교 장애아 학급은 보통 교사 1인당 학생 12명 정도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특수교육에선 교사 1인당 학생 4명이 넘으면 교육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게 서 씨의 주장이다.

아이가 커 갈수록 보육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로써 자신을 감당할 자신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서 씨는 "자꾸 시간이 갈수록 엄마가 허름해지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엄마인 이현배 씨도 이날 무리에 속해 있었다. 중랑구에 사는 이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 "우리지역에 특수학교가 없으니 이사 가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6년을 견뎠다고 한다.

장애아들만 모아 따로 교육하는 특수학교는 "(비장애인과의) 통합"이 빠져있다는 게 이 씨가 고집을 부린 이유다. 이 씨는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격리된 시설에 수용해 내 아이에게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박탈하는 건 아이의 행복추구권을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요구는 따라서 특수학급이 있는 중학교를 확충하라는 것이다. 다행히 이 씨의 아이는 모든 학년을 통틀어 2개의 특수반이 있는 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일반학급에 배치돼 사실상 동료 아이들과 교사로부터 방치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사학법 때문에 229명 발의법안이 낮잠

기구하고 억장 터지는 사연을 저마다 가슴에 담고 왔겠지만, 무리의 요구는 참 간단했다. 1년 가까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안을 4월 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는 것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단식을 할 때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실을 기습 점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장애아 교육을 규정해 온 특수교육지원법은 장애아 입학거부 등 교육 현실에서 벌어지는 비일비재한 일에 대해 지난 30년 간 처벌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사문화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 교육위에는 지난해 5월 장애인, 장애인 부모, 특수교사 등이 주축이 돼 마련한 법률안이 올라와 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대표발의로 무려 229명이 발의에 동참했다. 장애인들의 교육여건 확충이라는 대전제에는 여야 간 이견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여태 처리가 안 된 건 사학법, 로스쿨법 등 쟁점 현안 탓에 교육위 자체가 가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산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 안영호 씨는 이날 "4월 국회에서 처리가 안되면 대통령 선거 일정 상 내년으로 넘어갈지 모른다"며 "적어도 26일에는 논의가 돼야 30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가 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2005년 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는 이들의 절박함을 일부나마 어림짐작케 한다. 우리나라 재가 장애인의 15.8%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마치지 못한 경우는 45.2%,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경우는 62.0%였다. 교육은 장애인들에게 너무 먼 일이었다.

이들의 구호 중에 이런 게 있었다. "내 새끼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게해 달라!" 두 시간 쯤 기자실 앞에 앉아 농성을 벌인 이들 장애아 부모들은 '바위처럼 살아가보자…'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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