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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두려운 사람들'이 단식농성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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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두려운 사람들'이 단식농성 하는 이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고 살아가는 사회를"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장애인교육연대, 대표 박경석)는 13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효성 없는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을 철폐하고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교육 받을 수 있어야**

이 자리에서 장애인교육연대 도경만 집행위원장은 1977년에 제정된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은 그 취지부터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도 위원장은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장애학생만을 지원대상으로 삼고 있어서 영유아, 고교생, 대학생에 대한 배려는 외면하고 있으며, 장애를 치료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도 사람의 한 특징일 뿐이라고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 위원장은 "이런 관점에 선다면 장애 학생은 특수한 존재가 아니며, 서로의 특징을 존중하면서 함께 어울릴 대상일 따름"이라며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 위원장은 "이렇게 보면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은 적절치 않다"면서 "대신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제정해 유아교육부터 고등교육 및 성인교육까지 교육의 전 과정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장애인교육연대의 이런 주장을 반영한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을 마련해 4월 정기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장애인교육연대 회원 35명은 장애인교육지원법의 조속한 입법을 요구하며 인권위 11층 배움터를 점거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진1)

***상급학교의 문턱이 너무 높아**

장애인 학생들의 교육권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지난 1992년 충남 천안에 장애인 학교인 인애학교의 설립을 주민들이 저지하면서 처음으로 사회이슈로 떠올랐다. 그 뒤 학교가 장애인 학생의 입학을 거부하거나 장애인 학교의 설립을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례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올해에는 감리교신학대학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입학을 거부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 대학에 지원한 뇌병변 1급 장애인 김 모(30) 씨가 면접전형에서 'F'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학은 현재까지 청각 장애인이 입학한 사례는 있으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입학한 경우는 없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학교가 영세해서 휠체어 이동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아직 김 씨와 같은 중증 장애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이 전체 교수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장애인교육연대가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제정되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 받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게 의무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중등학교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로 올라가면서 장애학생들이 교육과정에서 탈락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진다. 정신지체가 아닌 장애인 학생에 대한 교육은 일반학교에 설치돼 있는 특수학급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 교육청 산하 학교 중 특수학급이 설치된 학교의 평균 비율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각각 7 대 4 대 1이었다. 교육청 산하 고등학교를 통틀어 특수학급이 한 곳도 없는 경우도 많다. 전체 182개 시군구 교육청 중 특수학급이 설치된 고등학교가 전혀 없는 교육청이 60곳에 이른다. 대학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앞서 언급한 감리교신학대의 경우 최근 10년 간 입학한 장애인 학생 수는 모두 20여 명에 불과하다.

상급학교로 올라가면서 장애학생들이 더 많이 탈락하는 것이다. 탈락한 장애학생들은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율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그 결과 전체 장애인의 51.6%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다.

***고립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

이같은 현실이 장애인 학생과 학부모들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비장애인들과 함께 지낼 기회가 점점 줄어들면서 장애인들은 결국 자신만의 공간 속으로 고립되는 것이다.

장애인교육연대의 활동은 이같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애인들 자신의 적극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애인교육연대는 인권위를 점거해 단식농성을 하는 동시에 전국 곳곳에서 집회를 여는 데 이어 다음달 3일에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입법공청회, 다음달 24일에는 법안 발의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이하 박스〉

이날 단식농성장에서 장애인 학생을 자녀로 둔 윤종술 씨를 만났다. 윤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아이가 2급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

경남 김해에서 건축장비 수입업을 하던 그가 장애인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장애를 앓는 자녀를 둔 직원의 고초를 지켜보면서부터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신의 자녀가 장애를 겪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 뒤 생후 18개월 된 자신의 아들이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애를 겪는 자녀를 둔 부모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이 무렵부터 그는 생업을 접고 장애인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의 사회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참여연대에도 가입했다. 그는 현재 경남장애인학부모회 회장과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 '함께하는 일터'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2)

***"힘들어도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배우게 하고 싶다"**

프레시안 : 대학은 물론이고, 초중등학교에서도 장애인 학생의 입학을 꺼린다고 들었다.

윤종술 : 그렇다. 다른 학생과 부모들에게 3월은 새로운 학교생활을 앞둔 설레는 시간이다. 그러나 장애 학생의 부모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상태로 3월을 보낸다. 담임교사에게 불려가서 다른 학교로 전학 가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일으킨 사고에 대해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거나, 소풍 등의 학교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3월에 어떤 담임을 만나게 될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노골적으로 각서를 요구하거나, 전학을 종용하지는 않더라도 교사로부터 '솔직히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학부모로서 죄인이 될 따름이다.

프레시안 : 그와 같은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종술 : 외국에서도 장애인 교육의 큰 흐름은 통합교육이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같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장애는 한 인간의 여러 가지 특징 중 일부일 뿐이다. 장애를 겪는 아이가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비장애 학생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 비장애 학생과 어울려 본 경험이 없는 장애아가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성인으로 자라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게다가 비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은 비장애 학생에게도 큰 교육적 의미가 있다. 장애 학생과 가까이서 부대껴본 경험을 통해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수 있다. 자신과 다른 특징을 가진 이들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책을 통한 가르침으로는 불가능하다. 직접 장애인과 생활해본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 아이의 경우도 발달장애를 겪고 있지만, 가게에서 과자를 사 온다든가 하는 심부름을 곧잘 한다. 다른 아이들과도 별 무리 없이 어울리는 편이다. 장애 학생들만 있는 공간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게다.

***장애인 교육 예산, 미국 15%, 일본 8%, 한국 2.5%**

프레시안 : 어쨋건 장애인 학생을 일반 학교에 보내고 있다면 형식적으로는 장애인 학생과 비장애인 학생의 통합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셈인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무엇을 들겠는가?

윤종술 : 대부분의 장애인 학생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낙오하게 된다. 장애인 학생들이 무사히 교육의 전 과정을 마칠 수 있으려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 외에도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선 장애인 치료 인력을 학교에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음성변환 장치를 보급하고, 지체장애 학생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의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장애인 교육 여건은 외국과 비교해도 너무 열악하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장애인 학생 한 명당 교사 한 명꼴로 인력이 배치된다. 특수 학급에서도 10~15명당 한 명꼴로 교사가 배치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시장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전장애아동 교육법'에 따라 장애인 교육이 의무교육으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예산의 15%를 할애하는 미국이나, 8%를 배정한 일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적은 예산을 쓴다. 한국은 고작 2.5%에 불과하다. 경제수준의 차이를 고려해도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장애인 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회 전체를 위한 것"**

프레시안 : 장애인 교육권 문제가 공론화되려면 그것이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형성돼야 할 것 같다.

윤종술 : 그렇다. 장애 학생을 둔 부모의 이혼율은 다른 가정에 비해 7배 가량 높다고 한다. 열악한 장애인 교육여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소모가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엄연히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애인을 배제하고 이루어지는 교육이 완전한 것일 수도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장애인 교육권에 대한 투자는 단지 장애인 각자에 대한 투자가 아니다. 장애인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많은 비장애인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장애 학생 한 명당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이 대략 어느 정도되는가

윤종술 : 우리 집의 경우 한 달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55만 원 정도 된다. 우리 아이는 김해시에 있는 언어치료센터에서 언어치료를 정기적으로 받는다. 40분 치료에 3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일주일에 세 번 가니까 한달에 36만 원이 나가는 셈이다. 거기에 다른 치료비를 포함하면 55만 원 정도의 고정비용이 지출된다.

앞에서 장애 학생 부모의 이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다행히 우리 집은 무척 화목한 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에 하던 사업으로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잡혀 있고, 내가 장애인 교육권 운동을 하면서 가족들도 이 문제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치료비가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치료를 받아도 빨리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데서 생기는 절망감이 가족 사이를 허무는 경우도 많다.

***"엄마는 문방구 점원"**

프레시안 : 그와 같은 치료를 공공기관에서 받을 수는 없나?. 반드시 사설기관에서 받아야 하나?

윤종술 : 장애의 종류에 따라 치료의 종류가 다르지만, 수요가 많은 치료는 언어치료, 물리치료 등이다. 이런 치료는 보통 병원이나 사설기관에서 이뤄진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이와 같은 치료전문가들을 학교에 배치해 달라는 것이다.

혹은 학교마다 배치할 여건이 안 된다면 기존의 특수학교를 특수교육 센터로 개편하고, 이들 센터에 상주하는 인력이 각 학교에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는 연계체계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프레시안 : 둘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지 4년째인데, 그동안 속상한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윤종술 : 그런 이야기를 하면 끝도 없다. 재작년까지 아내가 항상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문지기', '문방구 점원'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경남 지역의 경우 지난해부터 '학교 도우미 뱅크'가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 학급보조 인력이 배치된 것이다. 지금은 아이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는 이 분들이 맡고 있다. 이런 작은 노력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장애인들이 당장 곁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아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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