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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에 폐가가 없는 이유는?"

<박원순의 희망탐사·4>농촌테마관광 남해 다랭이마을

남해 남면 끝자락에 마을 자체가 하나의 건축물이라 해도 좋을 가천 '다랭이마을'이 있다. 바닷가를 접하고 있는 남면 끝자락 그 마을은 그러나 오로지 농사에 의존해 살아가는 마을이다. 100층이 넘는 논배미들은 아직 푸른 싹을 틔우지 않았으나 바다를 향해 가파르게 뻗어있는 논과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마을의 풍경은 아찔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안절벽에서 논과 마을을 개간했을 그 몇 년 또는 몇 십 년, 아니면 그 이상의 세월과 수십,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는 벼보다 강한 그들의 생명력은 입을 다물지 못할 다랭이마을의 광경만큼이나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눈빛과 말 속에서 대단한 열정을 전하는 그 마을의 이장 김주성 씨와 새마을지도자 김학봉 씨를 만났다. 검은 피부에 작은 체구가 내뿜는 열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농촌만이 가진 장점을 알았으며 이를 현실에 옮길 줄 알았다. 그래서 다랭이마을은 달라졌다. 절벽같은 경사에 농사를 지어 사는 그 마을은 이제 전국의 조명을 받는 최고의 농촌체험마을이 됐으며 폐가가 없는 시골마을이 됐다. 그런 그들에게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와 더불어 관광기획자라는 호칭을 얹어주고 싶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다랭이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어본다.


테마농촌마을로 변신하다
▲ 남해 다랭이 마을의 김주성 이장. ⓒ희망제작소

우리 마을을 보면 신라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고 우리 조상으로 따지면 12대 할아버지부터 이곳에 들어왔다. 마을이 사람 살기가 힘든 곳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경사가 너무 심하고 어업을 하려면 파도가 세고 배를 댈 곳이 없다. 흉년이 많이 들다 보니까 바닷가여서 뭔가 먹을 것들이 많은 것이 장점이었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되다 보니 이 경사 높은 곳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도 계속 개간을 했다.

이 동네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2002년도 무렵이었다. 그 당시 농촌관광사업이 막 시작됐는데 여기는 농촌진흥청이 하는 농촌테마관광마을로 지정되었다. 남해군청에서 '이런 사업이 있는데 해 보지 않겠는가' 해서 보니 돈을 1억이나 준다고 하더라.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이를 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해 보니 힘이 들었다. 소득이 올라야 주민들이 신이 날 텐데 그게 안됐다. 막 시작하는 마을에 사람들이 올 리가 없었다. 2002년 말에 포기할까 하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정말로 아름답다", "외국에 온 것 같다"고들 했다. 뭔가 보였다. 뭔가 잘해보면 우리 삶이 나아지지 않겠는가 마음을 먹었다. 제일 취약한 것이 잠자리와 음식이었는데 굉장히 불만을 많이 늘어놓더라. 잠자리를 고치려면 시설이나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우리가 뭘 잘할 수 있나, 뭘 줄 수 있나를 생각해보니 딱 나오는 답이 '정'이더라.

집집마다 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집에 가면 오신 분에게 무조건 농산물을 드린다. 가격이 2000원, 3000원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못한다. 또 차량을 가진 분은 차 없이 오는 분들을 모셔오고 데려온다. 더구나 차가 일찍 끊기는데 택시타고 오라고 하는 대신 직접 모시러 간다. 택시비도 읍내에서 오면 1만원이 넘어간다. 그리고 반드시 대화를 나눈다. 이런 저런 동네 이야기, 경치 이야기, 날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는 사람들에게 내 가족들에게 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자고 결의를 했다. 그러면 부족한 것이 다 묻히더라. 온 손님들이 인터넷에도 올리고 그러면서 방송에도 알려져 보도가 이어졌다. 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다랭이마을'이라고 치면 엄청나게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다.

물론 어려운 점도 없지는 않았다. 주민 중에 호응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방관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소득이 생기고 궤도에 오르니 달라졌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니까.

민박의 수입에서 10%를 떼서 마을공동기금을 만든다. 마을의 수선, 마을행사, 마을복지사업에 쓴다. 연간 700만-800만 원이 적립되지만 여전히 모자란다. 연간 2000만 원 가량이 마을경비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득이 돌아가는 방법

마을이 활성화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가 돈이다. 제일 고민한 부분은 민박을 치는 분들은 돈이 되지만 민박울 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돈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민박 안 하는 분들에게도 벌이가 되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전통막걸리를 개발하고 도시의 기호를 읽어 톳, 미역, 잡곡들을 가지고 식단을 꾸미고 그것을 도시민들이 먹어보고 사가도록 했다. 농사를 지어 팔 수도 있고 미역 등을 따서도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 판매도 하고 방문자들이 사가기도 한다. 지금은 이미 집집마다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주문이 오면 택배로 보낸다. 거의 거미줄처럼 고객과 주민들이 얽혀 있다. 품질이나 가격은 통합관리를 한다.
▲ 성성하게 푸르른 빛이 남아있는 다랭이 마을의 다랭이 논들. ⓒ희망제작소

활성화된 이유이기도 하고, 무척 고맙기도 한 것 중의 하나가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60대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에 의욕과 활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외지 관광객과의 고리와 교감이 생기고 이는 삶의 의욕과 활력으로 이어진다. 죽었던 마을이 살아 있는 마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다랭이마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들

경상도 사람들이 무뚝뚝하다고 해서 고치려고 회의도 하고 배우기도 했다. 경상도 음식이 본래 맛이 없다고 하길래 딴 곳의 맛을 배웠다. 하지만 결국 여기에 와서 우리 조상들이 먹어 왔던 우리가 먹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게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관광객들도 그런 것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옛날 된장과 멸치액젓을 활용하고 여기에 옛날식으로 담아서 제공하니 그것 하나로도 반응이 좋았다.

이와 더불어 어쨌거나 관광인데 그 프로그램의 차별화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도시민들은 이곳에 오면 뭔가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른이나 학생들에게 맞는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어두고 있다. 누구라도 우리 마을에 와서 체험을 하면 평생 못 잊게 하려고 애를 썼고, 그리고 그 결실은 지금도 맺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와 정'이다. 마음의 여유를 줘야 한다. 옆도 돌아보고 이웃도 생각하게 해 보자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얼마 받아 돈을 벌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여유와 정을 주다보면 돈도 벌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은 100분이 오면 70분이 '너무 좋다', '다시 오겠다' 한다. 우리 마을에 오면 즐길거리, 먹을거리, 볼거리들이 많아 만족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번 갔다 오면 친구들까지 불러 오기도 한다.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생긴 것이다.

지난해를 보면 민박을 하고 간 사람들이 1만 명 쯤, 그냥 방문객까지 합치면 18만 명이 된다. 체험마을 하기 전에는 우리가 먹는 식량 빼고 마늘 판매액 등이 1억20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관광수입만으로도 8억이 된다. 물론 큰돈이고 꽤나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18만 명 중에서 5000원만 쓰게 만들어도 9억이 된다. 1만 원을 쓰게 하면 18억이다. 돈을 버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제일 불편한 것이 식당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큰 식당보다는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작은 식당을 만들고자 한다.

산책하는 코스도 부족하다. 찻집이나 카페 같은 것을 만들어 두면 방문객들이 좋아할 것 같아 3~4군데 만들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마을공동 운영의 영업장소로 해서 마을 주민들의 전체 이익이 되도록 한다.

다랭이마을 보존을 위한 트러스트를 만든다
▲ 남해 다랭이마을의 김학봉 새마을 지도자가 다랭의 마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우리 마을 전망대에서 보면 벼가 들어차 있을 때 가장 전망이 좋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들이 휴경을 하다 보니 이 빠진 경치가 된다. 어떻게 하면 모든 주민들이 논을 완전히 경작할 수 있도록 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 나온 것이 '다랭이논 트러스트'다.

우리 마을 회원 500명, 군청과 전문 학자들이 힘을 합쳐 다랭이논 트러스트를 만들려고 한다. 구좌 당 5만 원씩을 납부하면 그 돈으로 우리가 농사를 짓고 그 분들에게는 3만원 가량의 친환경농산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조합을 만든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농촌을 살리고 보존한다는 보람을 가지고 친환경 농산물도 제공받을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태곤 박사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 두 번 갔는데 일본에는 다랭이연구학회가 있더라. 그분들이 우리 마을에 와보고 한일공동 다랭이 연구를 해보자고 했다. 김태곤 박사 등과 여기를 다녀보고 더불어 고민하면서 트러스트 아이디어를 냈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더라. 주민들이 작물을 심어 경관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거기에 못 미친다. 이 마을을 운영해 보면서 논이 제일 많이 걸린다. 다랭이논이 키포인트인데 이것이 없으면 우리 마을도 살아남기 힘들다.

우선 300명 내지 500명을 먼저 모아 확대하려고 한다. 남해군 농업기술센터와 협의해 이미 합의도 끌어냈다.

다랭이마을에서 그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마음이 훈훈했다. 나와 더불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 땅,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그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100층을 넘는 논배미만큼 켜켜이 쌓이는 그곳에서 우리나라 농촌의 행복도 꿈꿔본다. 최근 며칠 뉴스를 가득 채웠던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농부, 엽총을 든 농부 모두 행복해지는 농촌은 어쩌면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시의 사람들이 그들을 잊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다른 길을 걷고, 함께 한다면 말이다.
면담장소 -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리 다랭이마을

면담일시 - 2006년 11월 3일 오전 10시

다랭이마을의 대표적 체험 프로그램

김주성 이장이 소개하는 다랭이마을의 여러 체험프로그램들은 끝이 없다. 그의 입을 통해 듣는 다랭이마을의 체험프로그램,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만 골라도 다음과 같다.
▲ 바닷바람을 맞고 싹을 틔우는 다랭이마을의 다랭이 논 전경 ⓒ희망제작소

1.손그물낚시

아이들이 오면 바닷가를 간다. 몽돌이라는 자갈들이 깔려 있다. 돌을 걷어내고 손바닥에다가 멍게를 올려놓으면 고기가 그것을 먹으려고 손가락사이로 왔다 갔다 한다. 그 감각이 특별하다. 그러다가 고기를 잡기도 한다. 이른바 손그물 낚시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좋아한다.

2. 마늘쫑뽑기. 냉이캐기

초봄에 도시민들이 오면 논에 시금치나 마늘, 냉이, 쑥 등을 일부러 많이 심어둔다. 그것을 직접 캐서 가져가도록 한다. 한번 논에 들어와서 캐는 데 3000원을 받는다. 실제 농작물 재배하는 것보다 수입으로도 좋다.

3. 다랭이 논갈이, 모내기 등의 농사 체험

소를 이용해서 다랭이 논을 경작하는 체험이다. 직접 소를 몰고 논을 갈아보게 한다. 이것은 3~4월에 이루어지는 행사다. 모심기는 5월말이나 6월초 사이에 이루어진다. 절기마다 다른 행사를 준비해둔다.

4. 들밥먹기

집에서 밥 먹는 것이 아니고 경치 좋은 곳에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 행사다. 민박 온 사람들의 경우다.

5. 시골학교 영화보기

폐교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활용해서 시골학교 운동회를 한다.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운동회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40~50대는 좋아하는데 젊은이들은 안 좋아한다. 그래서 밤에는 조명을 켜놓고 캠프파이어를 한다. 또 영화를 상영하는데 마당에다가 은박지를 깔아 그 위에 앉거나 누워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야참으로 어른들은 해물파전에다가 막걸리를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모닥불을 피워 감자를 구워준다.

6. 바다체험 - 1일 어부체험, 통발체험, 선상에서 회먹기

제일 인기몰이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뗏목을 타는데 이 곳 바다의 물이 너무 맑다. 고기들이 훤히 보인다. 바닷가에서 고기도 잡고 도시락을 먹는다. '1일 어부체험'도 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올리면 고기가 잡히는데 그대로 회를 떠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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