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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온 친구가 화를 낸 이유는?"

[교육과정/논란을 넘어 대안으로]프랑스의 문화예술교육, FRAC의 사례

최근 <프레시안>은 '교육과정 논란' 기획을 통해 기존의 교과 및 학문의 구분을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일 소개된 김인규 교사의 사례는 흔히 '감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예술 교과와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관련기사: "미술은 '예능'이 아니다"(기사보기))

하지만 이런 사례에 대해 너무 낯설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외국의 사례가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예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보다 먼저 고민한 이들의 경험을 알려달라는 바람이다. 그리고 외국의 사례를 참고 삼아 한국의 교육현실에 어울리는 대안을 마련해가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우선 소개하는 사례는 프랑스의 경우다.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개념이 일찍부터 자리잡은 나라이기도 하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지난 1992년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문화부와 교육부를 통합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는 불과 일 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예술교육'은 단지 학교에서만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지식과 감성을 떼놓고 가르칠 수 없다"는 철학이 있었다. 앞서 <프레시안>이 '교육과정 논란' 기획 중 하나로 제안한 "예술교육,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에꼴 드 루브르(Ecole de Louvre)에서 박물관학(Museologie)을 전공하는 박지은 씨의 글을 2회에 나눠 소개한다. 이 글은 문화예술교육 웹진 <아르떼>에 실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수정보완한 것이다. <편집자>


'프락 일드프랑스'에 얽힌 짧은 기억

프랑스 남부의 님므(Nîmes) 외곽에 사는 E가 파리에 왔다. 미국에 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후 가끔 여행을 같이 다닌 계기로 지금까지 연락이 이어지고 있는 친구다. 프랑스인이긴 하지만 27살이 넘도록 제대로 파리 구경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파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겠노라고 짧은 주말 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던 중, 문득 프락 일드프랑스(FRAC: Fonds Régional d'Art Contemporain 현대미술지방진흥재단) 생각이 났다.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E는 시간이 없어 (사실 입장료 문제로!) 퐁피두센터를 건너뛴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고, 마침 나는 그 다음날 프락 일드프랑스 관객 프로그램 담당자와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었기에 겸사겸사 무료 입장인 프락을 방문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 프락 일드프랑스에서는 미국 출신의 비디오 및 전위예술 작가 조앤 조나스(Joan Jonas)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전시 설명이 시작되었고, 나는 '운이 좋군' 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시를 보고 난 후의 E는 한마디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과도 같았다. 단순히 "난 이런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현대미술 작가라는 인간들은 비싼 밥 먹고 왜 이런 짓을 하냐, 너무너무 괴상하고 이상하다"는 등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흥분했다.

나는 E가 현대미술에 대한 경험은 커녕, 표현 수단으로서의 현대미술이 갖는 다양성에 대한 개념조차 전무한 백지와 같은 상태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관심도 없는 친구를 앉혀놓고 여러 표현 방식의 하나로서의 현대미술이 어쩌고 하며 설명하기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역량이 너무 부족했다.

결국 E는 나를 향해 원망 섞인 눈길을 보내면서 짧은 파리여행을 별로 달갑지 않은 문화충격(?)으로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일요일 오후의 작은 에피소드는 내게 문화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문화예술교육의 또 다른 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E의 반응을 통해서 왜 프랑스 좌파정부가 문화예술 부분에서도 그토록 지방분권화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는지, 자크 랑(Jack Lang) 전 문화부 장관과 카트린 타스카(Catherine Tasca) 전 교육부 장관이 문화예술교육 5개년 계획 등을 위해 왜 그토록 엄청난 예산을 편성하고자 했는지, 파리 이외 지방의 낙후된 문화예술교육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그들의 위급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이 탄생시킨 전시공간 - 프락 일드프랑스의 '르 플라토(Le plateau)'

프락은 현대미술이 수도에 집중되는 경향을 지양하고 각 지역의 문화예술활동 교육을 활성화하는, 이른바 '현대미술 및 문화예술 영역의 지방 분권화'를 위해 1980년대 초 각 지방마다 설치된 문화예술기관이다.
▲ 프락 일드프랑스의 전시공간 '르 플라토'의 전경. 일반 주거 공간과 어우러져 있다. ⓒ박지은

프랑스 본토에 22개, 식민지령에 2개, 총 24개소가 설치, 운영 중에 있으며 지방 및 국적에 관계없이 전 세계 현대미술의 최근 동향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프락 일드프랑스는 어린이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소장, 소장품 전시 및 홍보, 현대미술 창작지원과 함께 프락의 주요 사명 중 하나로 중시되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파리 19구에 위치한 프락 일드프랑스의 전시공간 '르 플라토'는 파리 한복판에 자리한 퐁피두센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작을 뿐 아니라, 딱히 특별한 어린이 활동 공간이 준비된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 전시공간은 1983년 프락 일드프랑스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2002년이 되어서야 마련된 것이다. 건물 전체를 프락이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다 1층을 제외한 공간은 주민들의 아파트로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이곳은 어린이의 신체 조건을 고려한 가구 및 장난감들로 가득 찬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별 흥미를 주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이 프락 일드프랑스의 전시 공간이 마련된 배경에는 지역 정비사업에 스스로 참여한 주민들의 땀방울과 예술가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관객 프로그램 담당자 마엘 도(Maëlle Dault)는 프락 일드프랑스가 전시 공간을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400여 명의 지역주민들은 이곳에 새로 짓는 건물을 지역환경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서 무려 7년 동안 투쟁했습니다. 예를 들어 건물의 높이가 너무 높아지는 것에 반대하였고,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한 보행자 도로가 주변에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는 등의 재건축 원칙을 세워나갔지요. 이때 지역주민회에 속해 있던 한 예술가의 제안을 통해 이 건물 내부에 현대미술 공간을 확보하자는 계획이 나왔고, 현재 600 제곱미터의 전시공간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와 교사를 위한 다양한 관객 프로그램 – 보는 법 배우기

우선 프락 일드프랑스 어린이 프로그램의 종류와 그 특징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매주 일요일 4시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설명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각 전시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전시 설문지가 제공된다. 학급 단위의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활동들은 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먼저 전시 설명자와 함께하는 토론 형식의 전시관람이 있다. 이때는 방문 전에 인솔교사와의 협의를 거쳐 선정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다. 예를 들어 교사가 수업 시간에 '사회와 나의 관계, 주변 환경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중이라면, 작품 중에서도 그러한 주제들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과목 간의 연계성을 강조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자크 랑은 문화예술교육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은 다른 형태의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과 밀접한 영향관계에 있는 것이다"라며 "(예를 들어 음악과 산수, 연극과 문학, 조형미술과 기하학 등) 문화와 예술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과목들을 더욱 생기있고 심도있게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치원 큰 반 아이들(프랑스의 유치원[Ecole maternelle]은 보통 2세에서 3세 아동을 위한 어린 반, 3세에서 4세를 위한 중간반, 그리고 5, 6세를 위한 큰 반 등 세 종류로 나뉜다)과 초등학교 저학년 학급을 위해서는 <1시간-1작품 (1heure / 1oeuvre)>이라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프락, 루브르 등 프랑스 문화기관뿐 아니라 기타 다른 나라의 미술관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런 문화중재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작품들을 두루 보는 것보다 한 작품의 여러 가지 면모를 함께 살펴보면서 작품에 대한 지식이 아닌, 작품을 '보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많이 응용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전시 준비 및 진행 과정을 직접 방문하여 전시회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관객 앞에 열리게 되며, 왜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만지면 안 되는지 등을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해하고 전시 관람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교사들이 신청하는 경우에 한해 어린이들이 프락 일드프랑스의 팀원들을 만나서 전시회 및 현대미술과 문화 분야의 직업들에 대해 직접 질문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이밖에도 프락 일드프랑스에는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전시를 방문하기 이전에 전시를 미리 보고 이에 대한 교육자료를 얻는 프로그램, 교사들을 위한 전시 준비과정 방문 등도 마련되어 있다. 각 학급 및 학교 일정, 교육 주제 등에 따라 적절하게 응용될 수 있는 이러한 모든 어린이 프로그램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및 부모님들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준비되고 진행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프락과 학교의 문화예술교육 공동 프로젝트 - 에꼴 페사르의 사례

이러한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학교와 연계하여 진행되는 특별 프로젝트다. 프락 일드프랑스는 일드프랑스 지역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학교들뿐 아니라 국가교사양성기관 이위에프엠 (IUFM : Institut universitaire de la formation des maîtres)들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는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문화관련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파리 19구에 위치한 페사르 초등학교(Ecole Fessart) 1학년(Cours préparatoires) 반 담임교사 소피 이스칸은 2년 전부터 프락 일드프랑스의 관객 프로그램 담당자 마엘 도와 함께 문화예술수업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
▲ 아이들의 전시를 둘러보는 학부모들. 교실 뒤편에 틸 로스켄스의 작품이 보인다. ⓒ박지은

나는 담당자들과 함께 페사르 초등학교를 방문해 이 공동 프로젝트를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다. 부모님들의 학교 방문이 계획되어 있던 토요일 오전 10시 반, 학교 앞에 아이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사의 인솔에 따라 들어간 교실에는 프락 일드프랑스와 공동으로 진행한 문화수업시간에 만들어낸 어린이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앤 조나스의 전시를 본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을 상징하는 흔적(trace)을 사진으로 작업하였고 그 작품들에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었다.

교실 뒤편의 사진 작품 하나가 남다르다. 프락 일드프랑스 측에서 무상으로 대여한 소장품인 틸 로스켄스의 <단절된 풍경>(2002)이다. 이렇게 프락 일드프랑스는 1년에 4회, 각 2달간씩 소장품 중 한 작품을 대여하여 교실 등 학교 공간에 전시하고 학급 내의 문화예술수업에 활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번도 작품이 아이들에 의해 손상된 적이 없다는 말에, 일단 작품이 이동되면 손상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나의 선입견이 무색해진다.

교실 한편에는 작가 유르겐 네츠게르가 이 학급을 방문하여 만남의 시간을 가졌을 때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이 작가는 직접 학교를 방문하여 사진기 앞을 검은 천으로 가려 작은 암실을 만들어 보이는 등 이른바 옛날식으로 사진을 만드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직접 보여주고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학부모는 이 사진들을 보고 "우리 아이가 집에 와서 열심히 설명하던 것이 이거였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또한 아이들은 담당 교사의 지도 하에 작가의 웹사이트(www.jurgennefzger.com)를 방문하여 이 작가의 또 다른 작업들에 대해서도 공부해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예술활동을 경험했다. 이렇게 현대미술작가들이 아이들의 주요 생활공간 중 하나인 학교에 직접 찾아와 자신의 작업을 직접 소개하고 대화를 나누는 활동은 아이들의 창작 자체를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현대미술 작업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활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 아이들이 작가 유르겐 네츠게츠와 만난 뒤 찍은 사진. ⓒ박지은

아이들의 설명과 함께 부모님들이 교실에 전시된 아이들의 작품들을 자유로우면서도 진지한 분위기 안에서 감상하던 중, 담임교사 소피 이스칸이 잠시 주위를 환기시키고 프로그램의 의의, 재정지원 등 프락과 연계된 프로그램에 대해 짧은 소개를 한다.

그 뒤 간단한 간식시간을 가진 후, 원하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에 한해 프락 일드프랑스로 자리를 옮겨 담당자 마엘 도의 설명과 함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미 아이들은 전시를 관람한 상태였으므로 역으로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전시 설명을 하는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 와서 신나게 떠들어댄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미 관람한 전시지만 아일랜드의 민속춤을 소재로 한 비디오 작품 <나의 새로운 극장 I>(1997) 앞에서 아이들은 작품 속의 인물들을 따라서 춤을 추느라 신이 났다. 현대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즐기되, 어른들의 통제 안에서 일종의 자율적인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러 비디오 중 작가 자신이 누드로 등장하는 작품이 눈에 뜨인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 이런 부분들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네스 학생의 어머니 파비안느 고스의 대답이 흥미롭다.

"물론 저도 아이들과 성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들만 3시간 동안 본다든지 할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예를 들어 지난 번에 전시된 에릭 푸와트뱅의 사진 작품들처럼 인체 누드를 담은 작품들을 일부러 못 보게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못 보게 하면 할수록 더 보고 싶어해요.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이라는 게 뭔가 숨겨야 하는 것이고, 안 좋은 것인가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죠. 엄마 입장에서 그런 작품을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대하면 아이들은 비뚤어진 호기심을 가지기 보다는 엄마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그 작품들을 대하더군요. 대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물어보라고 하죠. 대답을 신중하게 제대로 해줘야 하는 건 물론 당연한 거구요."

물론 성에 대한 교육은 각국의 문화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른들이 성이라는 것을 무조건 감추고 터부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부모들이 교사 및 프락 담당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의 장이 자연스럽게 마련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활동이 단순히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에게도 유용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아이들을 위해 억지로 끌려와 시간을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가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진, 혹은 아이들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었다.
▲ 프락과의 문화예술수업 연계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는 아이들과 학부모들. ⓒ박지은

부모교육과 아이들 교육을 떼놓을 수 없다

이처럼 프락뿐 아니라 프랑스의 문화예술기관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 자체나 이를 진행하는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보다도 그 프로그램들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 실행되는가를 더 중요시한다.

아이들도 다른 세대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고 아무래도 교사 및 부모님에게 의존적인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예술수업 역시 각 교사의 재량에 따라 선택되므로 같은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같은 수업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에꼴 페사르의 경우도 이스칸 교사의 학급이 현대미술을 중심에 두고 프락과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무용, 체육 과목에 비중을 두는 교사들은 운동 활동 등에 대한 문화예술수업을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들의 경험이 교사들의 기호나 노력에 일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아이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열쇠는 어른들이 쥐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이 부모 세대를 교육하는 것이 선행될 때 진정한 어린이 문화예술교육의 토대가 형성되리라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프랑스에서 박물관 성인교육이 발달해 있는 것, 그리고 프랑스에서 어린이들만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딱히 유명한 곳을 꼽기 어려운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프랑스에도 과학 박물관의 시떼 데정펑(Cité des enfants), 퐁피두센터의 어린이 갤러리(galerie des enfants) 등에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러한 공간들 역시 모든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기관에 부속되어 있고 부모님 혹은 기타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프락 일드프랑스의 전시를 부모님과 둘러본 후 담당자 마엘 도의 설명을 듣는 모습. ⓒ박지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엄마, 저 안쪽에 괜찮은 비디오 작품이 있어. 빨리 와 봐." 하면서 엄마 손을 잡아끄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같은 전시에 대한 친구 E의 반응을 다시한번 돌이켜 보게 되었다.

'E가 어릴 적에 이런 경험을 했었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에 대해 그렇게 화까지 내면서 흥분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현대미술이 너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학급 안에 작품이 대여될 경우 당장 작품이 손상될 것이라는 걱정은 어쩌면 어른들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들에게 현대미술작품이라는 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행위가 아니라 예술가의 여러 가지 표현양식 중의 하나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는 도구로서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린이 문화예술교육을 위해서 각 기관마다 할 수 있는 역할들이 각각 있을 것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문화예술기관에서는 전시 설명 및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학교는 이러한 기회들을 활용하여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본 토양을 준비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기관과 교육기관의 공조에 가정 내의 교육이 조화를 이루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아이들의 생활을 삭막하게 하는 것은 어른의 신체에 맞게 지어진 물리적인 공간과 회색의 도시 환경만은 아닐 것이다. 이보다는 사회 안에서 아이들이 어떤 위치에서 이해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다.

아이가 단순히 의존적인 존재로만 인식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아이를 왕처럼 모시고 무한의 자유를 주는 것, 혹은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저 우리 아이도 남들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발상에서 접근하는 것은 잘못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환상적인 과자집을 지어주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회의 일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의 이런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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