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과-이과 구분, 이젠 없애자" ☞ "경직된 문과-이과 구분이 '황우석 사태'낳았다" ☞ "문과-이과의 차이는 제도가 만든 허상에 불과" ☞ '하얀 거탑' 속에는 무엇이 있나? ☞ '핀란드 교육'이 부럽다고요? ☞ 과학수업이 FTA를 만났을 때… |
앞서 실린 글에서 삶을 문과-이과로 구분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하얀 거탑' 속에는 무엇이 있나?)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교육과정 논의에 '아이들'이 있나?
지금 8차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는데 이런 저런 말이 많다. 그런데 아이들의 인지발달과정을 고려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재작년부터 '황우석'이 뜨니까 8차 교육과정에서 과학수업시수가 늘 것이고, 독도가 문제가 되니까 역사가 독립교과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지금 시안으로 나온 것을 보면 실제로 고등학교 과학과 수업시수가 1시간 늘었고, 사회에서 역사가 독립과목으로 되었다.
물론 나는 과학시수가 늘고 역사가 독립교과가 된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정이 교육의 원리가 아니라 이렇게 정치경제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각 교과 관련자들의 요구도 한몫 한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사범대 교수, 교사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과목의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그런데 나는 "교육과정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평범한 의견을 말하고 싶다. 자신의 교과를 강조하는 이들의 노력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이런 다양한 의견을 통합하고 조정할 큰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면 10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과학자들의 예측이 보도됐지만 학교에서 이뤄지는 환경교육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환경' 교과를 선택하는 비율은 해마다 낮아지고, 그나마도 형식적으로 가르친다. 왜 그럴까. 어떤 환경교육학자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환경교육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개별 교과이기주의가 너무 심하다. 그러므로 전공교과 구분이 심하지 않은 초등교육에서 환경교육의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 말은 굳이 환경과목을 별도의 교과로 가르쳐서 입시에 중요한 다른 교과에 밀려나게 하는 것보다 여러 과목에서 환경문제를 다루는 게 오히려 환경교육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즉 사회나 국어 교과에서도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통합적인 관점을 강조하게 된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많은 교육관계자들이 '통합적인 교육'을 주장해 왔다. 지식이란 실생활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늬만 통합 교육'을 넘어서려면?
그런데 구체적인 논의로 들어가면 복잡한 문제가 많다. 이 글에서 문과-이과 구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통합 교육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사회과 통합교육, 과학과 통합교육 등처럼 관련 과목을 묶어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과 통합 논의의 진행 과정을 보면 '통합적인 교육'을 향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문제들이 잘 드러난다. 문과-이과 통합교육보다 한 단계 낮은 차원인 이런 통합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잘 살피는 것은 향후 보다 근본적인 교육과정 개편 논의를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다.
일단 내가 담당하는 과학 과목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통합과학'을 가르치겠다고 다양한 노력을 해 왔지만 결과는 미미하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과학교사들, 그리고 과학교육 관련 교수들에게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교사가 품은 사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해 보겠다.
교육과정은 종단적, 횡단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종단적 측면'이란 교육과정의 학년 별 구성을 뜻한다. 즉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수학을 배운다면 이렇게 12년의 과정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것이다.
또 '횡단적 측면'이란 같은 학년 내에서 개별 교과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것이다. 즉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어떤 내용들을 각기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해서 가르쳐야 하는지를 가리킨다. 이 두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면 현재의 교육과정보다 훨씬 유연하고 역동적인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고등학교 '통합과학' 교과서를 보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4등분한 내용을 그냥 합쳐 놓은 것일 뿐이다. 중학교 '과학' 교과서를 펼쳐 봐도 단원 이름만 다르지 이들 네 분야를 기계적으로 똑같이 배분한 것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중학교 과학 교과서가 물상과 생물으로 나뉘어 있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중학교 과학은 과거부터 과학 교과서 한 권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참고서가 물상과 생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교사들이 수업할 때, 이렇게 나누어 가르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상과 생물로 나뉜 것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개별 교과가 물리적으로만 엮여 있을 뿐, 화학적인 결합은 이뤄지지 않아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지금은 물상과 생물로 나누지 않고 통합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더 많다. 그러나 내용은 역시 그대로 분리돼 있다. 제대로 된 통합교육을 하려면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은 교육과정의 '종단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아이들은 생물의 관찰이나 해부, 지구과학에서의 암석 관찰이나 별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학교에서는 생물이나 지구과학의 기초적인 관찰 분야를 많이 할당하고 물리, 화학 분야를 상대적으로 줄여야 한다. 이들 네 과목을 매 학년마다 똑같은 비율로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통합과학을 종합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2, 3학년 때는 물리와 화학을 필수과목으로 배정하고 비율을 늘려야 한다. 이게 '종단적 배려'다. 인지 발달 단계상 사고력이 왕성하게 발달하는 나이인 고등학교 2, 3학년 무렵 물리, 화학의 어려운 개념을 많이 가르쳐야 한다. 물리, 화학 지식이 과학의 기초적인 분야이므로 이를 모르면 대학에 진학한 뒤, 생물학, 천문학, 기상학, 지질학, 해양학, 공학 등을 배우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주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잘 나오지 않을까. 아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면 대학입시에서 지구과학이나 생물보다 주로 물리, 화학 문제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수많은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과감하게 이런 교육과정에 관한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무늬만 통합 과학교육'이 아니라 진정한 통합과학교육이 될 것이다.
문과-이과의 '기계적 균형과 대칭' 논리가 교육과정 개혁 가로막아
여기서 잠시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자. 한국은 2004년 국제학생평가(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핀란드에 이어서 2등을 했다. PIS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감독 하에 실시하는 15세 이상 학생의 읽기·수학·과학 평가다. 지난 2000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며 국가별 학업성취도 비교지표를 도출하는 게 목적이다. 정규 교육과정보다는 실생활에 필요한 응용능력을 평가하는 데 주력한다. 여기서 우리 학생들이 2등이나 했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하면 교수들로부터 학업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왜 그런 것일까?
PISA에서 1등을 한 핀란드의 사례가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핀란드의 교육현장을 참관하고 온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핀란드에서는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면 학생들이 '정말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를 한다"고.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상당히 유연하게 교육과정을 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을 혹사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원리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의 교육과정은 나선형 교육과정이다. 이것은 교육학자 브루너에 의해 제창된 것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같은 개념을 계속 심화 확대하는 교육과정이다. 똑같은 '집합' 개념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에서 계속 심화하여 배웠던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원리가 꼭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같은 개념을 나이별로 다른 인지수준에 따라 심화 확대하여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의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작업은 너무나 정치적이다. 그래서 종단적인 배려가 없다. 횡단적으로 과목별 수업시수를 균일하게 만드는데 주력한다. 관련 교과 이해 당사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선형 교육과정을 도입하면 한번 배운 내용을 계속 심화시키면서 새로운 과목과 내용이 추가되므로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식의 양을 줄이기 어렵다.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려면 종단적인 고려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나이에 필요한 내용으로 횡단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 과학처럼 사회나 다른 과목도 이런 종단적 구성을 한다면 횡단적으로, 즉 한 학년에서 배워야 할 교과시수의 안배가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교육과정을 설계하면 아이들의 발달을 고려하여 그 나이에 주로 배워야 할 성격의 지식을 가르치면서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을 수 있다.
중학교 교사로서의 한계를 전제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중학교 1학년의 경우, 학생들이 사회와 도덕을 무척 어려워 한다. (과학의 경우 어려운 부분이 2, 3학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1학년 아이들은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는다. 단지 진도가 너무 빨리 진행되어 어려워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아이들과 대화하며 그 이유를 물어보면 교과에 등장하는 단어의 수준이 초등학교에 비해 갑자기 어려워 진다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였다. 한 번은 사회 선생님이 우리 반 성적이 하도 저조해서 학년 말에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라. 1년 동안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학생은 손들어." 그랬더니, 36명 중에서 19명이 고개를 숙인 채 죄인처럼 손을 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복도를 지나가다 그 장면을 우연히 보고 말았다. 그 선생님은 3학년도 같이 가르쳤는데, 창의적으로 잘 가르치고 성적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잘 따랐다. 그런데 1학년을 포함한 몇 반 성적이 너무나 저조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위에서 제안한 것처럼 종단적 구성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한 원인이라고 본다. 즉 중학교 1학년 때, 사회와 도덕 교과에서 어려운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면 해당 시기에 언어 관련 과목의 수업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쉽게 적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과정을 종단적으로 놓고 설계를 하면 이처럼 특정 시기에 중요도가 높아지는 과목을 강화하는 게 가능하다.
이런 사례는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처럼 교육과정을 종단적, 횡단적으로 구성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이 문과-이과의 구분이다. 문과-이과의 '기계적 균형과 대칭'을 중시하는 논리가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학년에서 특정 과목의 중요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문과-이과의 '기계적 균형과 대칭'을 고려하다보면 결국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짜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문과-이과의 구분이 없어지고 교사들이 자신의 교과의 중요성만 주장하지 않고 아이들의 인지발달을 고려해서 교육과정을 구성한다면 우리도 핀란드의 교육을 굳이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학 교육과 대학 입시 개혁이 뒷받침돼야
남은 과제는 또 있다. 대학 교육이 바뀌지 않고는 말짱 헛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과정 그리고 곧 나올 8차교육과정에서는 높은 수준의 물리나 화학을 배우지 않아도 공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대학 교육이 제대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즉 대학의 기초 교육이 제대로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은 이미 취업학원이 돼 가고 있어서 쉽지 않다.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르고 숨 돌릴 겨를조차 없이 취업전쟁에 매달려야 할 학생들에게 차분하게 기초과학의 개념을 설명하는 게 가능할까. 대학에서 이런 개념을 숙지한 학생들에게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
결국 그 결과로 나온 게 공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대거 자퇴하여 의대나 약대에 다시 입학하는 현상이다. 여기에 IMF 이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생기면서 문제는 더 커지고 있다.
대학에 입학한 뒤의 교육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학 입시의 문제도 함께 엮여 있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학교에서는 현실적으로 '이과'가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과'를 택하면 대학 입시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전보다 넓어졌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계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신성적의 유·불리, 대학에서 요구하는 선택과목에 따라 결정하는 현상은 여전한 셈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상태에서는 교육과정을 어떻게 고치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흔히 현행 교육과정이 수요자 중심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을 살펴보면 앞에서 예로 든 강남의 고등학교 아이들처럼 결코 자신의 흥미에 따라 교육과정을 선택하지 않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문과-이과라는 틀을 허문 바탕 위에 종단적, 횡단적으로 교육과정을 새로 구성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작업 중 일부일 따름이다. 대학 입시의 개혁, 대학 교육의 개혁도 뒷받침돼야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런 개혁이 이뤄지려면 대학 입시 때문에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학교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학벌을 중시하는 풍토가 바뀌어야만 한다. 말 그대로 '산넘어 산'이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할 거면 이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라는 표어는 집어 던져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모른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와 폭넓게 접촉하며 자라는 것이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를 아직 모른다. 그런데 그 기회를 근거없는 관습이 낳은 장벽 때문에 가로막아서야 되겠는가.
물론 이런 복잡한 과제에 대해 선명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긴 안목을 갖고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지는 길을 찾고자 하면 못 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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