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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주민들은 함께 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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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주민들은 함께 살길 원한다"

[인권오름] '이주협상'에서 지켜야 할 인권 원칙

지난 2일부터 경기도 평택 대추리 주민들과 정부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까지 총 4차례의 회의를 가진 뒤 오는 15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이후 6개월만에 재개된 대화다.

그러나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며 3년 넘게 싸워 왔던 주민들
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불안한 눈으로 이번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

헬리콥터를 동원해 들판에 철조망을 치며 '영농 금지' 팻말을 박았던 정부는 이제 주민들에게 "빨리 떠나라"고 독촉한다. 국무총리실 산하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의 김춘석 부단장은 "1월 중순에 협상이 끝나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철조망에 막혀 1년 간 농사를 짓지 못했던 주민들의 생계에 대한 대책없이 '조속한 협상 타결과 이주'에 급급한 모습이다.

그간 범대위에서 활동하며 '평택 투쟁'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본 인권운동사랑방의 김정아 활동가 역시 대화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가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주민대책위는 이번 대화를 이주협상이 아니라 '공동체 보존 협상'이라고 고쳐 말한다"며 "주민들이 협상에서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공동이주"라고 밝혔다.

또 그는 "국가가 인권의 원칙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다면, 주민들이 이주하기 전까지 경작권을 보장하고 농사 짓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 실린 글 전문이다. <편집자>

평택 '이주 협상'이지 '인권 협상'이 아니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대추초교가 무너진 후 흉물스럽게 쌓인 잔해와 함께 그 곳과 함께 했던 모든 기억을 가슴 속에 묻어야 했던 지난 5월부터 이미 겨울이었는지 모른다.

얼음덩어리로 변한 벼이삭

사람들이 아직도 대추리에 사느냐고 의아해 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는 한 주민의 말은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있는 주민들의 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말 <한겨레21>을 통해 보도된 주민들의 생활상은 대추리와 도두리를 잊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뜨겁게 만들었다. 주민 대부분이 1년 내내 수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생활을 자식이나 친척에게 의지해야 했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드는 등 생활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전가되었다. 어떤 독거노인은 총수입이 팽성 주민대책위원회에서 준 약간의 쌀이 전부였으며, 벼이삭을 주워 생활했다는 주민도 있었다. 작년 주민들은 100만 평 논에 직파를 했지만 이른바 '불법영농행위'라는 이유로 누런 황금들녘이 되었어도 낫질 한 번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50억 원 상당의 쌀이 정부의 '불법영농행위' 금지로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주민들의 생존권이 얼어붙어 버렸다.

보석으로 풀려난 김지태 이장을 중심으로 주민대책위는 지난 1일부터 정부와 대화에 들어갔다. 더 이상 농사 지을 수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차츰 조여들어오는 생활고, 잇단 이주로 황폐해져가는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길은 정부가 종용한 협상테이블에 앉는 도리밖에 없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주민들이 협상을 선택한 순간 대부분의 언론은 '보상'에만 관심을 쏟았고, 운동진영은 주민들이 떠난 평택운동에 대한 고민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협상에 대한 관전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협상은 주민과 정부 양측의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양 당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비자발적 강제이주 시 지켜져야 할 '보편적 인권 이행'의 문제이다. 개발과 안보의 논리로 인해 숱한 가난한 사람들은 집과 땅에서 쫓겨나고 인권을 짓밟혀 왔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삶도 바로 그랬다.

'공동체 보존'이라는 인권적 요구

주민대책위는 이주협상이 아니라 '공동체 보존 협상'이라고 고쳐 말한다. 주민들이 협상에서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공동이주이기 때문이다. 국제인권기준은 '땅과 일자리, 정든 집이 없어지고,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며, 소득이 줄고, 사회안전망이나 생존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보완적 관계까지 소멸되는 것"은 비자발적 강제 이주가 낳은 인권침해라고 지적한다.

먼저 떠난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려는 현실로 드러난다. 보도에 따르면 평택시에 거주하는 이주민들 중 일부는 쓰레기 줍기나 벽보 떼기 같은 평택시 공공근로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농사 지을 땅이 없는 사람들도 다수다. 자기 땅 없이 이른바 가난한 소작농을 하던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이주 후의 삶은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이들에게 이주는 실업과 생계의 위협을 의미한다.

부족한 살림이라도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돕고 살던 사람들은 이주 후에 쉽사리 해당 주민으로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소외된다. "난 여기서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랑 나눠 먹으면서 당당하게 사는데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살겠어?"라는 대추리 노인들의 말은 주민공동체가 제공하는 '보완적 관계'가 없어지고 나면 "의지할 데 없는 독거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국제인권 기준이 말하는 '이주 이전보다 생활 여건이 나빠지면 안 된다"는 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내쫓기에만 바쁜 정부
▲ 지난해 8월 31일 국방부 앞에서 열린 주민 촛불 2주년 문화제 ⓒ평화바람 홈페이지(http://peacenomad.net)

정부는 빠른 시일 안에 협상을 마무리 짓고, 기지 건설 작업을 착수하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미 일부 건설업체도 선정된 상태다. 문제는 정부가 계획도 없이 무조건 서두르기만 한다는 것이다.

강제퇴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유엔의 일반논평7'은 "보존 및 재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재배치 조치가 취해진 경우에만 주요 제거 활동에 착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약 당사국으로서 한국정부는 국제기준이 말하고 있는 '불가피성'이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기지 확장이 5년 연기될 수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정부는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긍정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로 인한 기지 확장은 결국 전쟁기지에 다름 아니며 이는 헌법의 평화주의에 위반되고, 한반도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시민사회의 입장은 변경된 적이 없다. 그러나 정부는 시기만 늦췄을 뿐 여전히 군대까지 동원해가며 기지 확장을 강행하고 있고 첫 희생양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었다. 정부는 여전히 '불가피성'에 대한 대답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주 협상'이지 '인권 협상'이 아니다

'사회권 일반논평7'은 비자발적 강제이주를 단행할 경우에도 사회권이 후퇴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농사 짓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동원해 주민을 협박해 주민들의 생계가 크게 위협당하고 있다. 가난과 질병의 공포 또한 확산되고 있다. 국가가 인권의 원칙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다면, 주민들이 이주하기 전까지 경작권을 보장하고 농사 짓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자발적 이주대상자들이 정부와 다른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다고 해서 차별해서도 안된다. 주민들은 여전히 미군기지 확장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고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매일 촛불을 밝히고 있다. 협상에서 이같은 정치적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거나, 이를 중단하는 것을 협상의 조건으로 한다면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국가폭력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주 여부와 상관 없이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는 주민들에게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 정책에 대한 정보공개나 질의, 의견 전달에 대해 정부는 성실히 답하고 귀를 기울여 주민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김지태 이장이 협상 당시 재협상과 관련된 정부 쪽 인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를 거절했다. 주민들은 '이주'에 관한 협상을 하려고 하는 것이지 '인권'에 관한 협상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이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까지 정부가 보여준 모습에 대한 불신 탓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철조망에 갇혀 있는 농토를 주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인권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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