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성과급 50% 미지급 사태가 정해년 신년벽두부터 전 사회적 관심사로 뜨겁게 등장하며 언론의 톱을 장식하고 있다. 경제적 위치뿐만 아니라 산업전후방 효과를 따져 보아도 한국사회에서 현대자동차 노사관계가 중요한 잣대가 되고, 올해 전반적인 노사관계의 방향타가 되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시대 첫 걸음을 떼는 첫 해이기에 노사관계 전문가들 또한 현대차 노사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기대에 걸맞게 회사가 먼저 노조의 약점을 보고 선방을 날렸다. 연초라는 상징적 의미는 국민 개개인 모두에게 지난 1년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한해를 설계하며, 주어진 조건은 다르지만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다짐하는 시기다. 이 조용한 아침에 울산 현대자동차 시무식장에서 노사간 충돌 소식을 방송과 언론에서 대서특필로 보도했다.
참으로 선정적이다. 마치 전쟁터의 아수라장과 같은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전후사정을 모르는 국민들은 대부분 덜컹 가슴을 쓸어내리며 "노조가 문제다"라고 느끼기 마련이다. 저 한반도 동쪽 끝 울산이라는 공업도시에서 현대차 노조가 폭력과 난동을 부리며, 연배가 높은 사장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했다는 상징적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된 이상 "왜 그랬을까"라는 이성적 판단이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다.
이때부터 현대차 노조의 주장과 요구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노조는 폭력집단'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노조가 아무리 억울하고 분통해 하더라도 그 심정을 이해하고 들어 줄 사람이 없다. 언론에서는 더욱 강도를 높여가며 노조에게 일방적인 비난과 매도의 십자포화를 쏟아 붓고, 회사에게는 '물러서지 말라'는 압박으로 대화의 여지조차 없애 버렸다. 한국 보수언론의 이런 태도는 노사 양측에게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힘껏 달려 충돌해 둘 다 망하라는 폭력성에 다름 아니다.
소위 '시무식 사건'의 전말은?
1월 3일 벌어진 소위 '시무식 사건'은 정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 자리에 갔던 조합원 누구도 '폭력과 난동'으로 덧칠이 되고, 일방적인 뭇매를 맞을 것을 감수하면서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조 간부 30여 명이 도착하니 경비대 100여 명이 막아섰다. 사장에게 왜 일방적으로 성과급을 삭감했느냐는 항의조차 할 수 없도록 가로막히자 밀고 당기며 혼란이 생겼고, 경비대에 힘으로 밀리자 흥분이 고조되며 소화기가 터지고 유리창이 깨지며 화분이 넘어졌다. 그 혼잡 통에 계단에서 밀려 떨어지는 노조원이 윤여철 사장과 함께 넘어지며 안경에 의해 찰과상이 생겼지 "폭력은 없었다"는 게 함께 있던 조합원의 증언이다.
그렇게 시무식은 중단되고 조합원들은 돌아 왔는데 방송과 신문을 본 조합원 스스로도 놀랄만한 내용을 접하며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왜곡될 수도 있구나." 노무현 대통령이 "돼지 머리 자르고, 다리 잘라내고, 몸통까지 잘라내고 꼬리만 이야기한다"는 식으로 언론에 대해 불만을 떠뜨리는 게 이해가 갔다. "결국 그 일이 우리에게 닥치고 말았구나." 현대차노조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사건의 본말이 전도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시작은 회사의 일방적인 성과급 삭감이었는데 정작 노조가 폭력집단으로 매장되고 있다. 노조가 선거를 앞두고 조직력이 가장 취약한 공백기에 빈틈을 보고 회사가 전쟁을 선포했다. 그도 임금삭감도 아닌 목표미달한 성과급 삭감에 노조가 감히 강력한 투쟁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둔 도발이었다.
이 사건은 '대공장 정규직노조의 집단이기주의', '노동귀족', '배부른 투쟁', '채용비리와 선물납품 사기사건으로 인한 도덕성 추락' 등 그동안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를 둘러싼 모든 일들과 함께 사람들의 엉뚱한 상상력을 작동시켰다. 시무식 사건이 노조 죽이기 여론몰이를 하던 보수언론들에게 너무 좋은 그림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물에 기름을 부은 듯 확산됐다.
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그런 기자회견을 했을까
민주노총의 정치파업 때문에 생산목표를 미달했으므로 '성과급을 50% 삭감지급하겠다'는 회사측의 사유는 민주노총을 당사자로 지목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성과급 50% 삭감이 돈의 문제라기보다 "정치파업을 하면 손해 본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차 노조는 민주노총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진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 노조의 몰락은 곧바로 민주노총 붕괴와 민주노조운동의 몰락으로 확전될 수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그런 연쇄 몰락 사태를 막고자 했다.
그래서 현대차 노조가 외롭게 맞고 있는 십자포화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가 나누어 맞자고 결심했다. 최소한 언론에서 '폭력과 난동'을 걷어내고 본질인 성과급 50% 삭감의 부당성을 알려내야 한다는 고민이었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전통적인 감싸기와 편들기로는 관심을 돌리기에 약하다는 데 있었다.
결국 체질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가지고 이틀을 고민하다 8일 기자회견 직전에 '대국민사과'를 넣기로 했다. 언론에서조차 '이례적'이라고 했다. 울산본부는 "한창 투쟁하고 있는데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사과하라니…"라는 현대차노조의 불만과 비판은 감수할 각오를 한 것이다. 보수언론에서의 악용은 넘지 못할 산이지만 '폭력과 난동' 보도는 중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 노조를 지키는 게 민주노총을 지키는 길이고, 또 그것이 20년 역사 속에서 노동자·서민들이 이 정도의 삶이라도 살 수 있도록 만든 민주노조운동이 사는 길이라면 개인의 희생과 치욕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날 이후 현대차 노조와 사전 '의견조율'에 대해 수도 없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한창 투쟁하고 있는 노조에서 '대국민 사과'는 당치도 않고 꺼내기 어려운 말이다. 울산지역 정치파업을 주도했던 민주노총이 간접적인 사과를 표현하여 국민들과 지역의 악화된 여론을 완화시켜보자는 게 전부다. '속셈'이라기보다 진정성이 담긴 것이고, 성과급 50%가 해결되고 나서는 현대차 노사 양측이 자연스러운 해명과 유감표명이 있을 것이다.
언론이 '미인경쟁'하느라 오히려 사태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번 현대차 사태를 보며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이 국민들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속담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말처럼 연초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서 노사관계가 악화일로라면 공정하고 균형잡힌 보도와 해결방향을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강경투쟁을 부추기고 있다.
현대차라는 재벌 앞에 줄을 서 광고를 따기 위해 추악한 웃음을 흘리며 노조를 옥죄기 위해 '미인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회사 편을 들어 응원을 하고,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 죽이기를 넘어 "절대 물러서면 안된다"며 발목에 족쇄를 채우기까지 한다. 노조건 회사건 한 발자욱의 물러섬이나 양보도 허용되지 않는 죽음을 향한 전주곡을 울리기에 바쁜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들은 도대체 현대차 사태가 어떻게 결과를 낳기를 기대하고 있는가. 20년의 역사를 가진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은 이미 언론에 당할 만큼 당하고, 맞을 만큼 맞았다. 이들을 단련시킨 것도 언론 자신이다. 이제 성과급 50%가 문제가 아니라 현대차 조합원들의 자긍심을 무너뜨리고 자존심을 짓밟아 조합원들은 "끝까지 해보자"는 분노에 가득차 있다. 노동자들의 생리는 짖밟으면 밟힐수록,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강철이 된다는 원리를 진정 모른단 말인가!
더 이상 발목을 잡지 말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퇴로를 열어 줘야 한다. 회사가 한발 물러서 교섭에 나설 체면을 만들어 주는 것도 언론의 책임이다. 노조도 연초부터 파업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건 누누히 밝히고 있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면 되돌릴 수 없다.
악몽은 깨고 곧 새벽이 밝아 온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현대차 노동조합의 투쟁을 명확하게 지지한다. 성과급 50%의 일방적인 삭감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의 부당한 뜻이 관철되는 순간 단체협약이나 각종 합의서는 휴짓조각이 된다. 선거를 통해 차기 집행부를 선출해도 허수아비에 불과하며, 기존의 기득권도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기에 이는 노조에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현대차 노조가 무너지면 민주노총도 망하기에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울산본부는 장기전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미지급 50%를 입금하며 원만하게 끝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현대차 조합원들은 연초부터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것 처럼 어안이 벙벙해 악몽을 꾸고 있다. 멀쩡하게 매년 관행처럼 지급하던 성과급을 노조의 약점을 보고 비겁하게 뒷통수 친 회사에 배신감이 들고, 언론에 두들겨 맞는 것도 억울하고 분통하다.
하지만 악몽은 곧 깨어나고 새벽은 밝아 올 것이다. 회사가 허위와 기만으로 조합원들을 악몽으로 몰아넣지만 진실은 밝혀지고 틀림없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순리이며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성과급 투쟁을 넘어 재발방지를 위해, 노사간 잘못된 '이면합의' 관행을 끊어내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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