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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사태, '생산제일주의'가 근본원인"

[시각]악화되는 현대차 노사갈등, 어디로 가나?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현대차의 노사갈등 양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3일 회사 시무식 자리에서 노조가 소화기를 뿌리는 등 시무식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과 관련, 회사는 노조 간부 22명을 고발했으며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8일 제기하기로 했다.

노조도 "가만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분위기다. 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잔업 및 특근을 거부하고 최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로비에서 노조 간부 10~20여 명이 5일 째 철야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노조는 오는 10일로 예정된 최소 3000여 명 규모의 본사 상경투쟁에 앞서 8일 확대운영위원회 회의를 열고 파업을 포함한 향후 투쟁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이에 지난해 말 '성과급 지급'에 대한 해석차로 시작된 현대차의 노사갈등이 날로 악화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이 사태를 바라보는 노동계 안팎의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시무식장에서의 노조의 과격행동을 부각시켜 보도하며 "노조의 이기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노조의 과격행동'만으로 이 사태를 몰아가는 것이 건설적인 방향일까? 한국노동연구원의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현대차 노사가 안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들이 성과급과 시무식 사태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며 "현재 노사 양측이 모두 매몰되어 있는 표면적인 인과관계보다는 그간 현대차 노사가 걸어 온 과정에 주목해야 이 사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질은 사측 '생산제일주의'와 노조 '실리주의'"
▲ 현대차노조가 지난 3일 성과급 지급 문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으로 시무식 장에 소화기를 뿌렸다. ⓒ연합뉴스

현대차는 라인별로 모든 작업이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100여 명만이 파업에 참가하더라도 전체 공장이 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현대차는 '생산제일주의'를 유달리 강조하는 기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노동문제 전문가는 "이런 구조 속에서 현대차가 생산제일주의를 강조하다보니 노조가 공장을 세우겠다고 하면 윗선에서의 질책을 면하기 위해 공장장이 노조를 찾아가서 비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조 대의원 및 간부 직책은 생산현장에서 '권력'이 되며 조합원들은 실리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 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바로 그렇게 현대차 노조가 조합원들의 실리에 천착하는 과정에서 성과급 문제를 놓고 시무식장에 소화기를 뿌리며 일부 회사 간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얘기다. 더욱이 현대차 노조는 2월 중으로 새로운 집행부 선거를 치를 예정이어서 선거를 앞두고 현 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초강수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시무식 사태'와 관련해 엄길정 현대차노조 선전실장은 "소화기 분사 등은 우발적인 일"이라고 해명했으나, 노조가 시무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은 '무리수'였던 것이 사실이다. 한 노동문제 전문가는 "현대차 노조가 오버했다"고 비판했으며, 민주노총의 고위 관계자도 "현대차노조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사안인 듯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노조가 조합원 실리주의를 중심에 두고, 현장에서는 노조 간부들이 또 하나의 '권력'이 되는 상황 속에서 사측 역시 노조와의 이면합의를 '밥 먹듯이' 해 왔고 보수진영으로부터 "노조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수시로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노사간 갈등이 이처럼 '대형 사고'로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노조의 '현장 권력화'에 앞서 사측의 경영철학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배규식 본부장은 "노조 역시 내부의 수많은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번 사태는 회사의 잘못된 매니지먼트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비판했다.

노사 양측 모두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서는 현 노조 집행부가 회사의 바람대로 다음 선거에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현대차 노사 갈등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싸움 길어지면 노사 모두 이득 없다"
▲ 연초부터 날로 악화되고 있는 현대차 노사 갈등은 길어질수록 노사 모두 이득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합뉴스

현대차는 회사 소식지를 통해 "이제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노사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경영 상황에서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은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고 회사의 강경대응 방침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차는 또 "더 늦기 전에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 잡고 안정된 현장에서 새로운 희망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바람대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노사 모두 차분히 노사관계의 현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갈등이 길어지고 극대화될 수록 노사 양측 그 어느 쪽도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의 실리주의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사측마저 이례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마당에 싸움이 길어지면 노조에 유리할 것이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사 또한 노조가 상경투쟁과 파업 등으로 강하게 맞설 경우 새해벽두부터 생산차질로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파업 등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차질에 따른 손해액도 막대하겠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바로잡지 못하면 다음 집행부가 누가 되든 마찬가지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또 틀어진 노사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를 넘어 전체 노동계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개별 기업노조의 운명을 넘어 새롭게 출범하는 금속 산별노조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금속노조를 끌고 갈 핵심 동력임은 분명하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 말 출범한 금속 산별노조가 '현대차 노사 갈등'이라는 폭풍우를 만날 경우 금속노조를 주요 동력으로 하고 있는 민주노총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은 분명하다.

배규식 본부장은 "산별노조가 제대로 걸음마를 떼려면 이번 사태를 잘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며 "대기업 노조의 실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산별노조의 미래도 어둡다"고 말했다. 오는 2월 치러질 금속노조 선거에서 누가 지도부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넘어 산별제도의 안착을 위해 이번 사태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고민 역시 절실하다 하겠다.
현대차 노사갈등, 어디서 시작됐나?

이번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지난해 8월 현대차 노사는 생산목표 달성에 따른 성과급 차등 지급에 합의했다. 이 합의문을 근거로 현대차의 윤여철 사장은 지난해 12월 28일 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목표를 98%밖에 달성하지 못해 성과급을 100%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윤 사장이 단체 교섭 석상에서 '모양새만 그렇게 갖추자'며 '150%를 안주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발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현대차 노사는 90년대 중반 이후 생산목표 달성에 따라 성과급 차등 지급을 합의하고서도 그와 관계없이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는 회사가 약속을 뒤집고 성과급 지급을 거부한 이번 일이 지난해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현대차 노조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보고 있다. 더욱이 현 노조 집행부가 창립기념품 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도덕성 시비로 조기 사퇴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기회에 노조를 길들이겠다"는 사측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엄길정 현대차 노조 선전실장은 "이번 사태는 성과급을 50% 더 받고 말고의 문제를 넘어 노사 상호 신뢰의 문제"라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회사를 노조가 받아주는 선례를 절대 남겨서는 안 된다"고 말해 결국 이 사태의 본질이 노사간 '기싸움'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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