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두리(몽둥이) 맞고서 굴 안에 끌려가서 (탄광의) 천장이 떨어져서 이 세상 이별했네.
죽은 아 꺼내서 손발을 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름만 불러봤네.
감독놈은 몽두리 들고서 죽은 사람 옆에 두고 숯 담아 내라 했네.
이 말을 듣고서 복장을 뚜들면서 나라 뺏긴 민족은 요렇게 서름(설움) 받나.
몽두리 맞을 때는 같이 맞지 하며 하꼬(석탄 나르는 기구)를 제쳐서 숯을 부어냈네.
하꼬를 일바다서 죽은 사람 실어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천장만 쳐다봤네.
여기저기서 죽은 사람은 많았는데 초상 치는 것은 한 번도 못 봤네.
일제시대에 강제징용 당해 후쿠오카의 치크호 탄광 지역에서 일하던 조선인이 남긴 시다. 이 시는 당시 타국에서 노예노동을 하던 조선인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13일 '2006 피스앤그린보트(Peace & Green Boat)' 첫 기항지인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난 김정태(40) 씨와 이누카이(67) 목사는 치크호 지역에서 강제 연행된 이들의 흔적을 찾아 일본 역사의 일부분으로 기록을 남기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의 NPO(비영리단체)인 '차세대지원 글로컬넷(GLOCAL NET)'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정태 씨는 재일조선인 4세. 그의 증조부가 강제연행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재일조선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차별이 그로 하여금 이 운동을 하게 만들었다.
이누카이 목사는 신학대학 재학 당시 오사카 지역에서 목회 활동 실습을 하면서 최하층 노동자들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이 지역에서 하층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망언' 일삼던 아소 다로 외상의 조부는 탄광회사 사장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하면서 자국의 남성 노동력이 부족하자 전쟁에 필요한 석탄을 캐기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 연행했다. 이렇게 연행된 조선인은 약 67만 명. 주로 탄광과 시멘트 공장 등에서 일했다. 이들은 홋카이도, 오사카 등 일본 전역에 배치됐으며, 후쿠오카 지역에만 약 20만 명이 끌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 역사에서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후쿠오카 타가와시(市)에 위치한 '석탄 역사박물관'에는 강제 연행 당한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에 대한 자료는 전시돼 있지 않다. 강제연행 후 이 지역에서 사망한 조선인들의 수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1만 여 명으로 추정할 뿐이다. 다른 지역에서 탄광노동을 하다가 숨진 조선인들까지 합치면 6만4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강제연행한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미쯔이, 미쯔비시 사(社)는 현재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 됐다.
아소 다로 외상의 증조할아버지가 이 지역에 세운 '아소 광업소'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에서 '아소 탄광'으로 발전해 1930~40년대 징용인력을 바탕으로 큰 돈을 벌었고, 가업은 아소 다로 외상에게까지 이어져(아소 시멘트) 일본 내 보수 정치세력의 오랜 후원자 역할을 했다. 그들이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노동을 착취해 번 돈은 증손자 대의 아소 다로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아소 다로 외상은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해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아소 다로(66) 외상은 자민당 정조회장이던 2003년 5월 "창씨개명은 당시 조선인들이 원해서 이뤄졌다"는 망언을 비롯해 2004년 총무상일 때는 일본의 '다케시마(독도) 우표' 발행을 주도했고, 외상이 된 2005년에는 "신사참배를 양보하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초청할 필요는 없다",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인데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으며, 2006년 초에는 한 술 더 떠 "천황이 신사참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소 다로는 북한 미사일 발사 실험 때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주장했으며, 북핵실험 때는 일본의 핵무장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고이즈미 내각에 이어 지난 9월 출범한 아베 내각에서도 외상에 재기용됐다.
우리나라 정부는 아소 다로의 망언에 맞서 '아소 탄광' 징용 피해 조선인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감감소식이다. 이누카이 목사는 "사망한 조선인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일본인들이 강제연행한 조선인들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는 증거"라면서 "일본 정부는 (전쟁이 끝난 지) 60여년이 지났는데도 강제연행 문제에 대한 기초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정말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김정태 국장은 "일본이 점차 우경화되고 있다지만 이누카이 목사처럼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런 의미에서라도 민간 차원에서 양국 간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컬 넷'은 조선인 징용자 관련 사업 외에도 1년에 2차례 한국과 일본 대학생들 간의 교류 사업도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 모두 강제징용 등 과거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고 김 국장은 말했다. 그는 진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양국의 젊은이들이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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