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도 만만치 않다. 노조가 원청업체와 교섭을 통해 노조 전임비를 받아내는 것은 '건설현장의 잘못된 관행'이라며 이번 기회에 뿌리 뽑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잘못된 관행'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건설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무식한 소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도 건설노조 조합원 이승우 씨(40)가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승우 씨는 이 글에서 건설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조가 법적으로는 사용자가 아닌 원청과의 교섭을 통해 단협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편집자>
서울에서 성남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빌라촌을 이루고 있는 복정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곳에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큰 규모의 인력시장이 있었다. 매일 새벽 4시만 되면 날품을 팔려고 나오는 1000여 명의 일용직 노동자들로 도로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 이름, 복정동 건설일용노조
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오기 마련. 내가 기억하는 1989년 인력시장의 최대 화제는 노동조합이었다. 1987년 이후 전국의 노동자들이 인간선언을 하고 노조를 속속 결성해 가던 그 무렵이었던 탓이다.
일하다 다쳐도 하소연할 곳도 없고 임금을 떼여도 그저 소주나 마실 수밖에 없는, 의지할 데 없이 외로운 건설일용노동자들 역시 어렵게 어렵게 1989년 복정동 건설일용노조를 만들었다. 노조가 만들어진 뒤 한 번은 날일을 나갔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유가족들에게 보상은 커녕 장례비도 사측에서 나오지 않았겠지만 당시 복정동 건설노조가 앞장서 이 일을 해결했다. 당시로는 굉장한 사건이었다.
날일로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계절은 누가 뭐래도 겨울이다. 복정동 건설일용노조는 겨울철 월동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 그랬던 복정동 건설일용노조가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서울시경 기동대에 의해 노조 간부들이 금품갈취 협의로 구속·수배되기 시작하면서 노조가 무너져내렸다.
미처 세상이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새벽, 찬바람을 맞으면 집을 나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커피 한 잔, 따뜻한 물 한 잔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위해 이들을 데려가는 사용자들에게 몇 천 원의 돈을 받은 것이 경찰서로 가니 '금품갈취'가 됐다. 경찰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복정동 건설노조를 '폭력조직 복정파'로 언론에 발표했다.
결국 성남 복정동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작은 바람막이가 돼 줬던 복정동 건설일용노조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너진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다시 세우는 데 5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우리 건설 노동자들은 다시 아무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설움을 느껴야 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임금체불·차별까지…'노가다'의 실상
복정동 건설노조가 무너진 후 17년이 지난 오늘, 그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갈협박·금품갈취' 혐의로 각 지역 건설노조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구속과 수배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대구, 포항 건설노조에 이어 경기도 건설노조 간부 4명이 구속되고 8명이 수배됐다. 검찰은 여전히 건설노조를 조직폭력단 정도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속내는 건설현장에서 노조의 활동을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과연 건설노조의 활동은 검찰의 말대로 '사법처리의 대상'인 것일까?
흔히 '노가다'로 불리는 건설노동자는 노동자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각종 법,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건설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고정돼 있지 않고 고용관계 역시 명확치 않은 탓이다. 다시 말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할 '사용자'가 모호하다는 얘기다.
혹자들은 건설 노동자들이 일당 10여만 원을 받고 있다며 '고임금 노동자'라는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건설 현장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한 소리'다.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와 날씨 등에 민감한 건설현장의 일의 특성상 건설노동자의 실질적인 연간 소득 평균치는 월 14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건설현장은 최소한의 복지시설은 고사하고 관리직들과의 차별까지 종종 벌어져 노동자로 하여금 모멸감까지 느끼게 한다. 식당은 현장에서 관리자용과 노가다용이 따로 있고 화장실도 별도로 쓰게 되어 있으며 숫자 또한 턱없이 모자란다. 그뿐만 아니라 화장실 청결상태는 쓰레기매립장을 방불케 한다. 변변한 휴게실 하나 없어 그늘이라면 아무 곳에나 쓰러져 쪽잠을 자고 길거리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또 샤워실이 없어 종일 흘린 땀을 씻지도 못하고 지하철을 타게 되면 수치감이 밀려온다. 건설현장에 원청 관리자를 위한 샤워시설은 있으나 건설일용노동자들은 사용할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는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임금체불이 발생한다.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거나 원청 사무실에서 농성을 할 수밖에 없다. 법대로 하자면 노동부로 가야 하지만 노동부로 가면 임금 체불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장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일 일을 받아서 하는 건설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기만 해도 바로 그 다음 날로 그 현장에서 쫓겨난다. 해고가 손바닥 뒤집듯 쉬워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여겨질 정도다.
건설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조가 필요했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속아서 당하고 살아 왔던 건설노동자들에게 노조가 처음부터 환영을 받을 수 없었기에 활동가들은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뛰어 다녔다. 늦으면 자동차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노조원을 늘려갔다.
사용자가 모호한 특성 때문에 일반 기업별 노조와 달리 각 지역별로 결성된 노조는 사용자들에게 임금인상, 퇴직금, 임금체불 해결, 각종 사회보장제도 실시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어려움은 있었다. 조합원들이 대부분 직접 겉으로 나서기를 꺼리는 탓이었다. 다음 현장에서도 계속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관리자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각 노조 간부들을 중심으로 시공업체, 다시 말해 원청사를 사용자로 규정하고 단협을 체결하기 위해 교섭을 벌여왔다. 이렇게 해서 2003년, 경기도 건설노조는 원청과 교섭을 통해 원청 직영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이뤄냈다.
'불법' 운운하는 검찰, 건설현장의 실상 알고 하는 소리인가?
그런데 검찰은 이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교섭 의무가 없는 회사와의 교섭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설사 원청 소속의 노조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노조원이 직접 교섭의 주체가 되지 않고 해당 회사 직원이 아닌 노조 간부가 교섭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검찰의 주장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이다. 기업단위 노조가 중심인 다른 업종에서는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나 건설 현장은 기업단위 노조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결국 이 말은 건설현장에서 노조 활동 자체를 막는 얘기다.
검찰은 건설노조의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건설노조의 활동은 잘못된 관행이 아니라 건설노조 활동방식이 가질 수밖에는 하나의 보편성, 지역산업별 노조활동의 한 사례라는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노동자의 자주적 권리다. 노동자의 처지와 존재가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맞게 노동자의 권리가 다양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검찰은 이제 건설 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무식한 소리'를 이용한 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건설노조의 활동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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