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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생각에 가슴 아프지만 이대로는 못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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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딸 생각에 가슴 아프지만 이대로는 못 내려가"

[인터뷰]올림픽대교 주탑에서 16일째 농성 김호중 위원장

올림픽대교 주탑 위에는 현재 3명의 경기지역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75m 상공에서 16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포항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면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원청업체의 사용자성 부인으로 인한 교섭의 어려움 등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올림픽대교 주탑에서 이들이 농성을 시작한 것은 단순히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한발짝 더 나아가 이들은 "정부가 건설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15일 김호중 경기서부 건설노조 위원장(40)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고공농성의 목적과 현재 상황,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단협에 따라 지급받은 전임자 임금이 갈취라고?"
▲ 경기도 건설노조 노동자 3명이 16일째 올림픽대교 주탑에서 농성중이다. ⓒ경기도 건설노조

김호중 위원장이 올림픽대교 주탑에 올라간 것은 지난달 31일.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농성을 벌이던 북파공작원들이 열흘만에 농성을 그만둔 바 있어 일부 경찰들은 이들의 농성이 열흘을 못넘길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농성을 어느덧 2주를 훌쩍 넘겼다.

75m 상공에서의 농성은 그 자체로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김 위원장에게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어봤다.

"불편할 것은 각오하고 올라왔다. 그렇지만 역시 쉽지 않은 농성이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덥다. 여름침낭을 가지고 올라와 밤에 다소 추위에 시달린다.

식사는 조합원들이 준비해 준 것을 밑에서 검열을 거쳐 올려 보내주고 있다. 좀 어려운 점은 내려다보면 사방이 물인데 씻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농성장인 주탑 주변을 경찰 병력이 에워싸고 있다"며 "경찰차량 3-5대 정도가 항상 대기하고 있어 일반 시민들이 올림픽대교를 지나다니는 데 불편을 드리고 있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16일 동안이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그는 "지역 건설노조에 가해지는 정부의 탄압을 중단시키고 현재 구속된 조합원들의 석방 등을 요구하기 위해 고공농성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건설노조의 경우 지난 2000년부터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원청업체와 단체협상을 맺어 왔다. 노사가 합의한 이 단협에 따라 노조 전임자들이 협약 내용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벌여 왔고 그 비용을 사측에서 전임자 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21일 수원지방 검찰청 특수부는 경기도 건설노조의 전·현직 간부 10여 명에 대해 긴급체포를 시도해 이 가운데 조준행 경기도 건설노조 부위원장 등 3명의 전·현직 간부들을 체포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이들 간부들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공갈·협박을 통해 돈을 갈취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교섭과정이 공갈·협박이면 이 나라 노조 간부는 모두 공갈범?"

노조가 사측을 상대로 금품갈취를 했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도덕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자극적인 내용임에 분명하다. 이에 일부 언론들은 검찰 발표 직후인 지난달 28일 '활동비 뜯은 노조? 건설노조 간부 구속', '노조전임비 명목 갈취 수사' 등 검찰의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사안을 보도했다.

그러나 노조는 "단체협약 체결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는 원청업체가 갖는 법적·현실적 책임과 권한을 바탕으로 요구한 것이었으며 정당한 노사관계법에 따라 단체교섭을 진행해 체결된 단체협약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른바 '공갈·협박'이라는 것은 노사간 교섭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있는 '교섭에 빨리 나오라'는 등의 힘 겨루기였으며 이른바 '금품갈취'라는 것도 협약에 따른 노조 전임자 임금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열린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남궁연 건설연맹 위원장은 "교섭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노사 양측의 줄다리기를 공갈·협박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다 공갈범이냐"고 되물었다.

김 위원장도 "심지어 검찰은 사측의 인사담당 노무자들에게 유도심문을 통해 원하는 답을 끌어내는 등 짜맞추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검찰이 원청업체 인사노무 담당자에 대한 소환조사 도중 '이 정도만 하는 것도 강요가 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정도도 협박으로 느낀다'고 얘기하며 '노조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기 위해 유도심문을 했다는 것이다.

전국 토목건축협의회 의장이기도 한 김 위원장이 고공농성을 벌임에 따라 의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조병규 토목건축협의회 의장 직무대행은 "심지어 어떤 인사노무 과장은 '나는 강요나 협박이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검찰이 진술서를 마음대로 작성했다. 노조에게 미안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원청업체와 단협 체결이 왜 불법인가?"
▲ 경기도 건설노조는 "정부가 건설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 건설노조

이같은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은 최근들어 갑작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김 위원장은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은 사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은 건설 노동자는 하청업체 소속의 일용직 노동자로 원청업체와 법적 고용관계에 있지 않다며 원청을 상대로 한 노조 활동의 불법성을 주장했지만 노조는 "원청업체와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 도대체 뭐가 불법이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노조는 지난 5월 대법원 판례를 통해서도 이같은 내용이 증명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원청회사가)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등 구체적인 지배를 하는 지위에 있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김 위원장은 "더구나 경기도 건설노조의 경우 조합원 중 500여 명이 원청업체 소속 직영노동자들이며 따라서 이들은 정규직원이나 다름없는 노동자들이자 경기 건설노조 조합원"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 일부가 원청업체 소속이니 원청업체와 교섭을 벌이는 것은 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에 대한 논란은 포항 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 농성 과정에서 한 차례 달아오른 바 있다. 포항의 전문건설업체들은 원청업체인 포스코건설이 사용자성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와의 임단협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원청업체와 교섭을 통해 단협을 체결한 사례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좋은 현실적 사례가 될 수 있을 법하다.


"정부는 ILO 권고도 무시하고 건설노조 탄압 계속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더욱이 정부는 ILO의 권고 내용도 무시하고 건설노조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 간부들이 대규모로 구속되는 등 정부의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이 벌어지자 민주노총 건설연맹은 ILO에 이 문제를 제소했다. 이에 ILO는 지난 3월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과 관련해 한국정부에 권고했다.

"ILO 권고안의 내용은 건설노조의 원청과의 단협 체결과 전임자 임금 요구는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ILO는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심지어 간부들이 입은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하라고까지 정부에 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보상은커녕 2003년과 똑같은 방식으로 건설노조를 또 탄압하고 있다. 더욱이 경기도 건설노조뿐 아니라 대구·충남지역 건설노조 간부들도 체포와 구속에 시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주탑에 올라와 있는 동안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14일에는 경기 건설노조 출신인 이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독일의 이주 노동자 정책을 조사하러 출국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수원지검에 의해 연행됐다. 이 부위원장은 현재 경기 건설노조의 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 부위원장까지 연행해 간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아빠, 얼른 내려와' 말하는 딸…이 상태로는 못 내려간다"

농성장인 주탑 아래는 일반 조합원들의 출입조차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경찰 병력에 의해 차단된 상태. 농성 중인 이들의 하루일과는 어떨까? 김 위원장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의외로 이 위에서도 하루종일 매우 바쁘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밑에서 있는 다른 조합원들과 시간을 맞춰 함께 집회를 연다. 물론 서로의 얘기가 들리지는 않지만 마음이 함께라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다. 그리고 나면 운동도 하고 올려준 밥도 먹고 책도 보고 아래 있는 조합원들이 찾아오면 손도 흔들어주고 그렇게 보낸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김 위원장은 아내와 13살 난 딸을 가진 한 가정의 가장이다. 매일 전화로 통화를 하는 딸은 그때마다 "아빠, 빨리 내려와서 집에 와"라고 얘기한다. 가족들 생각이 안 나느냐는 질문에는 "고통스러운 질문"이라면서 "딸이 자꾸 내려오라고 하는데 지금은 내려갈 상황이 못 된다"고 말을 잘랐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기관인 검찰과 건설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그렇다보니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금방 끝나리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정부가 건설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검찰이 이런 식의 탄압을 계속한다면 내려가기 힘들다."

이번 주말 태풍이 몰려온다고 기상청이 예보했다. 태풍이 몰고올 비바람으로부터 작은 몸 하나 가려줄 지붕도 벽도 없는 75m 상공에서 이들의 '목숨을 건 농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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