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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장관이 자기 발언 의미도 모르나"

민주노총까지 강력 반발…노정관계, 파국으로 치닫나?

노정 갈등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제14차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회에 참석중인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발언으로 시작된 양측의 충돌이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상수 장관은 30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한국노총의 ILO 총회 철수에 대해 입장을 밝히며 "이건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사태 수습을 시도했지만, 한국노총은 "장관이 자기 잘못도 모르고 해프닝 운운한다면 1996년과 같은 전면적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1996년에는 당시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날치기'에 맞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동총파업을 벌이는 등 거세게 항의해 결국 정부가 무릎을 꿇은 바 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한국노총에 가세했다.

이상수 "이건 일종의 해프닝…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발단은 이상수 장관이었다. 이날 오전 이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협상이 결렬되면 정부안의 단독입법을 추진하겠다며 자세한 일정표를 밝혔다. 또 이 장관은 협상 과정에서 나온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언급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비열한 행위"라고 비난하며 ILO 총회 전면 철수를 선언했다.

국제행사 기간 중 주최국 노동계 대표단의 일원인 한국노총의 'ILO 총회 철수'라는 태풍이 완전히 가라앉기도 전에 이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무슨 오해를 했길래 국제적인 회의에서 철수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어 "오해가 있었더라도 철수를 발표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묻는 것이 우선"이라며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한국노총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 장관은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공개적인 회의인데 기자들에게 협상 내용을 설명해준 것이 뭐가 문제냐"며 "그 날 회의에 왔으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간단한 회의 결과만이 브리핑되는 사실상 '비공개' 회의다.

이 장관은 또 "서로 오해를 풀 것"이라며 9월 2일 노사정 대표자회의 개최를 위해 한국노총을 설득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 장관은 "그러나 2일 회의가 무산된다고 그냥 둘 수는 없지 않냐"며 "내년 1월 1일부터 복수노조가 시행되는 등 변화가 생기는데 그 혼란을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물었다.

이 장관은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치기 위해 필요한 시한이 이미 한계치에 와 있다"며 이날 오전 밝힌대로 새달 7일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입법예고를 실시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한국노총 "1996년 같은 전면적 투쟁 직면할 것"

한국노총은 이 장관의 해명에 대해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정길오 한국노총 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해프닝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모른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정길오 대변인은 "협상 과정에서 나온 얘기를 공개한다는 것은 이미 정부가 사회적 대화의 의지가 없으며 일방적으로 정부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라고 반발했다.

정 대변인은 "한국노총은 어느 누구보다 노사관계와 관련된 문제를 투쟁이 아닌 협상으로 풀기를 바랬던 곳"이라며 "그러나 장관이 이렇게 사과 한 마디도 없이 '해프닝' 운운한다면 1996년 상황과 같은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달 2일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한국노총 참여를 설득하겠다는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노사정대표자회의 거부라는 한국노총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절차상의 문제로 인해 '거부 고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해가 있었으면 '철수 선언'을 하기 전에 전화라도 했어야 한다"는 이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 대변인은 "장관이 사회적 대화의 판을 깰 때는 우리와 상의했냐"며 "파트너란 동등한 위치에 서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로드맵 강행 처리는 처절한 저항 불러올 것"

한편 민주노총은 "ILO 총회에서 철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정부는 입만 열면 '사회적 대화', '뉴딜', '상생'을 운운하면서 상호의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행동해도 과연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일방적 로드맵의 추진은 노사정관계의 파탄을 의미한다"며 "로드맵 강행 처리와 하중근 조합원 사망사고의 방치는 곧 민주노총의 처절한 저항과 국민적 분노를 불러오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또 이날 오전 이 장관이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혈액과 항공 등 범위를 확대한 공익사업장에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최소업무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민주노총이 제안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허황된 얘기"라고 일축했다. 대체근로 도입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그간 논란이 돼 왔다. 포항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게 된 것도 포스코가 대체인력을 파업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상수 장관은 "일시적인 오해"라며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설명했지만 정부 단독 입법을 예고한 이 장관의 발언이 노사관계 로드맵 처리를 앞두고 예고돼 있던 노정간 갈등에 도화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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