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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을 '도박'이라 않고 '게임'이라 부른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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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을 '도박'이라 않고 '게임'이라 부른 죄"

['바다이야기' 다시보기]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 필요

한명숙 국무총리는 22일 오전 문화관광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최근 사행성 게임 확산으로 사회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정책 판단 미흡과 조기 차단을 하지 못한 문화부의 책임이 크다"고 문화부 정책 담당자들을 크게 꾸짖었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도 23일 "(권력형 비리) 의혹 해소와는 별도로 정부는 정책 실패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도박성 게임이 전국에 퍼져 서민 주머니를 털어가도록 만든 정책 실패에 대해 정부는 정중하게 대국민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등 사행성 게임산업을 방치해 온 정부에 대한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문화부는 올해 초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이하 게임산업법. 10월 29일 시행)하는 등 성인오락실에 대한 규제책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사태를 이렇게 까지 키워 온 정책 판단 오류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뿐더러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들도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인 것이다.

'바다이야기'와 '철권'을 동급으로 본 잘못

급기야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기에 대해 심의를 맡고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대해 검찰이 23일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심의 과정에서의 불법 로비가 곧 밝혀지리라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불법로비를 추적하기에 앞서 이번 바다이야기 파문에는 차분히 따져보아야 할 대목들이 많다. 원점으로 돌아가 잘못 끼워진 단추가 무엇인지 살피고 거기서부터 문제를 근원적으로 되짚어보아야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지적인 것이다.

그것은 아주 상식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사행성 게임을 일반 오락실의 '철권'이나 PC게임 '스타크래프트'와 동급으로 취급해 영등위에서 심의를 맡게 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영등위는 말 그대로 영화나 PC게임, 온라인 게임 등 '영상물'에 대해 선정성 기준에 따라 '18세 이상 이용가', '전체 이용가' 등의 등급 심사를 하도록 설치된 민간기관일 뿐이다.

이 영등위가 게임기에 대한 등급심사를 맡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애당초 영등위는 사행성 게임기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문광부의 요청을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 영등위 관계자는 "게임기를 처음 받았을 때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어 워크샵도 하고 공부도 많이 했다"며 "그러나 위원들이 비상근인 데에다 심의량이 많아 항상 업무가 밀렸고, 이권 문제라 협박도 심해 일하기 정말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부터 성인오락실이 '규제해야 할 도박산업'에서 '육성해야 할 게임산업'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간추리자면 사행성 게임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그것이 우물우물 게임산업의 범주 안으로 밀고 들어 왔다는 얘기다.

그 이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속출하자 문화부는 2006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전문성을 갖춘 게임물등급위원회를 두기로 했지만, 이 게임물등급위원회만으로 사행성 게임을 완전히 걸러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심의와 무관하게 이뤄지는 '게임기의 개·변조' 앞에 심의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허가제에서 등록제로…우후죽순 골목길 점령


이어 2001년 '성인오락실 빅뱅'이 일어났다. 당초 성인오락실 등을 규제하던 법안은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인데 이 법의 개정을 통해 성인오락실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했다.

마침 자영업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많은 점포가 성인오락실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등록제 전에는 1000개를 넘지 않던 성인오락실이 순식간에 2만여 개로 늘어났으며, 현재 5만여 개로까지 늘어났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문화부가 새로 마련한 게임산업법에 성인오락실은 여전히 등록제로 돼 있다.

이에 뒤늦게 게임산업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등은 이달 초 '게임제공업'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법 개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성인오락실이 도박장된 결정타 '상품권'

성인오락실의 모태는 199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경품게임장'이다. 슬롯머신 등과 유사한 게임을 통해 점수를 획득하고 획득한 점수에 따라 선풍기나 다리미 등의 현물 경품을 타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경품타기는 사람들에게 '시간 때우기' 이상의 흥미를 주지 못했고, 경품으로 지급되는 현물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높았다. 이러던 중 2000년께부터 '스크린 경마'를 필두로 불법 '딱지 상품권'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상품권을 10% 정도의 수수료를 떼고 현금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상품권'이 도입되는 순간 성인오락실이 '도박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일반 현물로 경품을 타게 되면 경품을 탔어도 현금이 떨어지면 오락실을 떠나게 되는데, 상품권 방식으로 바뀐 뒤 이용자들이 '대박'을 노리며 경품으로 지급받은 상품권을 계속 현금으로 바꿔 기계에 투입하는 동안 게임 시간 자체가 늘어나고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부는 2002년 경품취급 고시를 개정해 상품권을 성인오락실에서 경품으로 지급할 수 있게 했다. 불법 상품권 유통을 양성화한다는 명목과 성인오락실에서 소비되는 돈이 영화관람이나 책 구입 등에 사용돼 문화산업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취지가 합쳐진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늘날과 같은 '도박 공화국'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상품권이 도박 중독의 근본 원인이 됐을 뿐 아니라 상품권 업체 인증제를 실시하다 상품권 업체들이 난립했고, 2005년 지정제로 바꿨으나 역시 무자격 업체 논란 및 업체 선정 로비의혹까지 일고 있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존의 딱지 상품권 문제의 핵심이 현금 환급이었는데, 정책 담당자들이 그 문제를 모르고 상품권을 제도화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라며 "그것도 법률을 통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정부 고시를 통해 몇몇 관리들이 은근슬쩍 정책을 바꾼 것 아니냐"고 정부를 비난했다.

정부는 최근 당정협의를 통해 성인오락실의 경품 지급 상품권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은근슬쩍 정부 고시로 생겨난 상품권 제도가 이번에도 역시 정부 정책만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에 이르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열린우리당 강혜숙 의원 등은 이미 지난해 4월 상품권폐지 등을 골자로 한 '음반 ·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문화부가 게임산업법을 추진하며 폐기됐다. 게임산업법에서는 '상품권'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찾을 수 없다. 더군다나 문화부는 올해 5월까지만 해도 정부는 경품한도를 낮추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었을 뿐이다.

▲ 압수된 위조 상품권. 이른바 '딱지 상품권'으로 성인오락실에서의 현금 환급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뒤에 보이는 장치는 개변조된 게임기의 기판이다.ⓒ연합뉴스

"영등위 단속지원 나갔다가 주차위반 과태료만"


상품권이 폐지됐을 때 '딱지 상품권'이 부활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공식 상품권'을 없에더라도 오락실이 불법적으로 딱지 상품권을 지급하고 환전하는 음성적 관행이 되살아날 수 있다. 따라서 단속과 같은 사후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성인오락실이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것은 2005년 '바다이야기'나 '황금성' 같은 사행성 높은 게임기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게임기들은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이어서 개변조가 쉬웠고, '연타', '예시' 등의 기능을 끼워넣어 최대 당첨금 2만 원 규정을 무시하고 200만~400만 원까지 당첨되게 했다. 바다이야기 등은 개변조를 통해 사행성을 극대화했고, 시장에서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압수할 불법 개변조 게임기의 양만 해도 6만5000대로 축구장 4개 분량이라고 한다. 현재 시중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게임기가 개변조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정부 측은 지속적인 단속을 해 왔다고는 하지만, 2005년 이후 성인오락실 개수가 2~3배 가량 늘어난 것만 봐도 단속이 허술했다는 방증이다.

전 영등위 관계자는 "개변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게임기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영등위 단속지원반이 손님을 가장해 단속을 하는데, 단속하러 나갔다가 주차위반 딱지를 떼고 과태료를 그대로 물어야 할 정도로 단속에 대한 인력이나 제도적 지원이 전무했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의 경우에도 게임기 개변조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 개변조를 적발해내기가 쉽지 않고 성인오락실 업주들이 경찰의 단속정보를 미리 파악해 대비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정부는 개변조 등을 신고할 경우 최고 5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강력 처방을 내놓았지만, 경찰도 잘 모르는 개변조 내용을 일반인들이 증거를 확보해 신고하는 것이 쉬운 일인지는 의문이다.

'게임산업법'이 아니라 '사행행위 특례법'으로 다스려야

그렇다면 이런 성인오락실들을 다룰 법안이 없었나. 그것도 아니다. 우선 적용가능한 것이 형법상의 도박죄가 있고,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사특법)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사특법은 당초 유원지 등의 '야바위꾼'들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었으나, 성인오락실도 곰 인형이든 상품권이든 경품을 지급하는 이상 '게임'이 아니라 '사행행위'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사특법의 적용대상이라는 것이다.

사특법에 정의된 '사행행위영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회전판돌리기·추첨·경품 등 사행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기구 또는 방법 등에 의한 영업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영업"이라고 돼 있다. 성인오락실도 대통령령으로 사행행위업으로 지정해 규제할 수 있었다.

또한 사행행위업을 하고자 할 때는 지방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고, 허가 사유도 '공공복리', '상품판매', '관광진흥'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이 법으로 규제했을 경우 현재와 같이 골목길들을 점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는 "게임을 해서 현금을 받으면 불법이고, 상품권으로 받으면 합법일 뿐만 아니라 '육성해야 할 게임산업'으로 둔갑하는 것이 현 정부의 성인오락실 정책이었다"라며 "성인오락실들을 '게임'이 아니라 '도박'이나 '사행행위'로 처음부터 강하게 규제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요컨대 첫 단추가 대단히 잘못 끼워졌다는 얘기다.

여기에 최근에는 정권 실세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며 사태가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문화부가 그동안 정책을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의 헛점과 성인오락실을 중심으로 흘러 다닌 돈의 규모를 보면 '정권 실세' 운운하는 의혹이 안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 여전히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

아닌 게 아니라, 정부가 최근 내놓은 대책을 보면 △상품권 폐지 △사행성 게임기 심의 강화 △개변조 포상금 지급 등이 주요 골자다. 성인오락실은 그대로 두되 규제를 강화해서 고사시키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물론 권력형 비리의 문제 여부는 검찰이 밝혀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대응으로는 업자들이 벌금 내고 풀려난 뒤 예전처럼 불법 상품권을 사용하고 심의만 넘긴 개변조 게임기를 이용해 계속 영업을 강행할 때 또 다시 단속인력 부족 탓만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경품을 지급하는 모든 게임기에 대해 사특법을 적용하면 제한적인 사유에 한해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 숫자가 대폭 줄어들게 되고, 숫자가 줄어들면 개변조 단속이나 불법 상품권 사용 등의 사후관리도 쉬워진다. 처벌 규정도 게임산업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하다.

사특법 적용 주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경실련, 흥사단, 등의 40여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도박산업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는 "성인오락실을 사특법으로 규제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해 왔으나 정부와 국회는 이를 외면했다. 이런 요구와 주장을 모르는 정부와 국회가 아닐 텐데, 여전히 사특법을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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