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근이 쓰러지던 날도 이렇게 비가 쏟아지더라구…."
그 날 경북 포항 형산 로터리에서처럼 1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도로 위에서 포항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1000원짜리 비옷을 하나씩 입고 맨주먹을 흔들고 있었다.
"하중근을 살려내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건설노조 조합원 하중근 씨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하 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지는 16일로 꼭 한 달째다.
노동계 자체 진상조사단은 하중근 씨가 경찰의 과잉 진압 과정에서 "넓고 둥근 물체에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지만 같은 부검 결과를 놓고 경찰은 "넘어져서 사망했을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사인을 놓고 이처럼 다른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포항 건설노동자들 1200여 명이 15일 서울을 찾았다.
"중근이 다쳤을 때 경찰이 바로 옆에 있었다"
"하도 분통이 터져서….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이고 언론이고 대통령이고 모두가 모른 척하니 우리가 직접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중근 씨와 같은 제관 일을 했던 조합원 김모 씨(49)는 서울까지 올라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하중근 씨와 지난 4년 동안 '형님-동생' 하며 "퇴근길에 막걸리도 한 잔 씩 나눠먹으며" 가까이 지냈던 지인이다. 하 씨가 쓰러지던 날 포항에서 열린 집회에서도 두 사람은 함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중근이가 실려가던 날 우리는 막대기 하나 손에 쥔 것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민주노총 건설연맹 관계자도 집회에 참가하는 조합원들에게 "오늘은 허가가 난 집회니 평화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설명했다고 한다.
"포스코 본사 건물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던 다른 조합원들을 생각하며 집회를 한창 진행하고 있던 중 갑자기 경찰이 우리를 향해 소화기 분말을 쏘면서 막 달려왔다. 그 때 사람들이 많이 다쳐서 실려 갔다. 상황이 좀 정리된 다음에 정신을 차려보니 중근이가 도로변에 주저앉아 있었다. 중근이 바로 옆에 검은 승용차가 있었고 그 옆으로 전경들이 쭉 서 있더라."
김 씨는 "그 때 우리는 정말 무기 같은 건 하나도 없는 맨 몸이었다"고 억울해 했다. 하 씨는 병원으로 옮기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지난 1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죽은 사람은 둘이나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다니…"
김 씨는 하중근 씨에 대해 "베풀기를 좋아하던 다정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편히 밥 먹을 수 있는 식당 하나 없어 여름이면 그늘진 곳을 찾고, 겨울이면 바람을 피해 밥을 먹어야 하는 포스코 건설현장이다.
"도시락보다 못한 수준의 3000원짜리 밥 대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면 중근이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받아오곤 했다. 면은 다른 사람 다 줘버리고 자기는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던 사람이었다"고 김 씨는 회상했다.
포항의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해 2등 항해사로 10여 년 동안 일을 했던 하 씨. "가정사 등 여러 문제로 배에서 내려온 뒤 건설현장으로 들어와 고생만 했는데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고 김 씨는 안타까워했다.
"정부가 '우리가 잘못해서 죽였다'고 시인하면 이 정도까지 화가 나진 않을 것 같다"는 김 씨의 말은 이날 만난 노동자 대부분의 공통된 마음인 듯 했다.
"죽은 사람이 하중근 씨뿐이냐. 임신한 여성 때려서 유산시켰으니 배 속의 아이까지 두 명이나 경찰이 죽인 것이다. 이번에 유산된 아기는 그 부부가 7년 동안이나 간절히 기다려 왔던 애였다. 그런데 하중근 씨도 그렇고 아기도 그렇고 경찰은 '우리 잘못 아니다'라고만 하고 있지 않느냐.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다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조합원 조모 씨(46)의 말이다.
조 씨는 "죽은 사람이 그 뿐인 줄 아느냐"고 말했다. 포스코 점거농성에 참가했던 한 조합원은 농성이 정리되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직후 과로사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9일 포항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다쳐 장기가 파열된 한 조합원도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현재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2달 여의 파업을 거치면서 늘 함께 일하던 현장 동료들이 죽고 다치고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반복됐다.
"'잘못했다' 사과만 해도 될 것을…그 때까진 장례 못 치른다"
"중근이 장례 치를 때까지는 협상이고 뭐고 없다."
김 씨는 강조했다. 하 씨의 시신은 아직 장례도 못 치른 채 병원에 안치돼 있다. "망자를 편하게 가시도록 보내준 다음에 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는 김 씨에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조건은 뭐냐고 물어봤다. 김 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경찰이 나서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과 우리 조합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동료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진실된' 사과였다.
오후 3시 40분 경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나가려던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이 대립하고 있던 가운데 전경들이 갑자기 "우-" 소리를 내며 달려 들었다. 노동자들이 일순간에 뒤로 쫒기면서 잠시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된 뒤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 누구를 죽이려고. 한 사람 죽은 것으로 모자라냐."
한편 현재 경찰은 하중근 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자체 수사를 진행 중이며 노동계의 요구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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