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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교육부총리 직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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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병준, 교육부총리 직 감당할 수 있을까?

[기자의눈] 소신과 다른 발언…말 바꾸기…

"과격한 발언을 일삼는 비주류 학자." 한 교육계 인사는 대중에게 각인된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의 이미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과격한 비주류'에게 거는 기대
  
  김 후보자의 이런 이미지는 대구상고와 영남대 출신으로 학계의 주류가 아니었던 데에다 '세금폭탄' 등의 과격한 발언을 한 것이 언론에 소개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노 대통령 '코드'의 학자로 알려지면서 노 대통령의 기존 이미지 중 부정적인 측면이 덧씌워진 탓이기도 하다.
  
  행정학자인 김 후보자의 전공 분야는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이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지속된 탓에 '지방은 곧 변방'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극복하고 서울과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김 후보자의 오랜 소망이었다. 이렇게 보면 비주류라는 키워드로 김 후보자의 이력을 설명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듯하다.
  
  이런 비주류의 이미지를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이라면 오히려 이런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도 크다. 지나친 학벌 중시의 풍조가 한국 교육의 오랜 병폐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과도한 입시경쟁, 실력보다 출신학교를 중시하는 풍조가 이런 병폐에서 비롯됐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에서도 잘 드러나는 중앙과 주류에 대한 오랜 집착은 한국의 교육을 황폐화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권력과 자원의 서울 집중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온 행정학 교수가 교육부총리가 됐다는 소식을 반긴 이들 중에는 '비주류' 이미지의 김 후보자가 주류에 대한 집착 속에서 깊어진 한국 교육의 병폐를 치료하기에 적임자라고 여긴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외고 모집 지역제한 '실시 연기'는 실질적인 '취소'
  
  그런데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보인 모습은 이런 기대를 금세 허물어뜨렸다.
  
  이날 김 후보자는 최근 쟁점이 된 '외국어고 신입생 모집지역 제한'에 대해 시행시기를 2008년에서 2010년으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 정권의 임기 중반인 2010년으로 미룬 것을 단순히 정책 실시의 2년 연기로 여기는 이는 드물다. '외국어고 신입생 모집지역 제한' 정책은 이제 취소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전혀 새로운 교육정책을 들고 나왔던 전례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
  
  김 후보자의 '비주류' 면모에 품었던 기대가 허물어진 것은 외국어고에 대한 김 후보자의 태도에서 교육 문제에 대한 그의 철학이 드러난 탓이다.
  
  입시명문고가 된 외고, 고교평준화 흔든다
  
  교육부는 지난달 19일 '외국어고 신입생 모집지역 제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외국어고가 전국적으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이런 정책은 '입시명문고'가 돼 있는 외국어고의 현 상황이 외국어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이런 정책을 통해 외국어고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명문고화하는 경향에 다소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보수 성향의 매체와 외국어고 학교장들, 그리고 한나라당은 교육부의 조치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외국어고 관계자들은 "외국어고 졸업자가 반드시 외국어를 전공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고교 시절에 익힌 외국어 소양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도록 권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외국어고가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이 아닌 과거의 경기고나 서울고의 위치를 대체하는 입시 명문고로 떠오르면서 고교 평준화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 시민사회 윤지희 공동대표는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일반계 고교의 몫"이라며 외국어고 졸업생들이 비(非)어문 계열 학과로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했다. 윤 대표는 교육부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외국어고 신입생 모집지역 제한' 정책이 과도한 외국어고 진학 열기를 식혀서 외국어고가 본래의 취지에 충실한 교육기관이 되게끔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자체의 경쟁 속에 우후죽순 생기는 외고
  
  이처럼 외국어고 졸업자들의 비어문 계열 학과 진학이 논란이 된 배경에는 1990년대 이후 외국어고의 수가 늘어난 상황이 있다.
  
  외국어고가 입시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외국어고 설립 경쟁에 나섰다. 이런 경쟁 속에서 1984년 처음 등장한 외국어고는 22년 만에 31개로 늘어났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의 외국어고 설립 공약은 줄을 이었다. 교육부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번 선거에서 나온 외국어고 설립 공약이 모두 실현될 경우 외국어고의 수는 100여 개로 늘어날 수 있다.
  
  100여 개의 학교에서 졸업생이 나오게 되면 외국어고 졸업생은 어문계열로 진학하도록 유도하자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각 대학의 어문계열 학과 정원을 모두 합쳐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어고 졸업생이 다양한 전공으로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현행 고교 평준화 제도는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외국어고가 고교 평준화 이전의 명문고의 위치를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19일 갑작스럽게 '외국어고 신입생 모집지역 제한' 정책을 들고 나온 배경에는 이런 외국어고 설립 열기를 식히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고교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외고 모집지역 제한' 유보, 지역균형발전 강조하던 모습과 배치돼
  
  교육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 왔다고 주장해 온 김 후보자가 이런 배경을 모를 리 없다. 18일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외국어고 신입생 모집지역 제한 정책의 실시를 연기하겠다고 한 것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후보자는 18일 청문회에서 "고교 평준화를 폐지하면 자칫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교육 양극화와 지식 양극화 등 사회분열과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며 평준화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고교 평준화 이전의 명문고의 위치를 대체하고 있는 외국어고에 대한 규제 정책을 번복한 김 후보자 본인의 발언과 상충된다.
  
  게다가 입시명문고로 자리잡은 외국어고가 전국적으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을 선선히 용인한 김 후보자의 태도 역시 서울로 모든 자원이 집중되는 것을 비판하며 지방 분권을 주장해 온 그의 평소 소신과도 배치된다.
  
  '주류'에 대한 집착이 한국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며 김 후보자의 '비주류' 면모에 대해 기대를 걸었던 이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연히 입장 바꾸고도 교육부총리 직 감당할 수 있을까?
  
  18일 청문회에서 김 후보자는 기업의 요구에 맞도록 대학교육을 개혁하고 대학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리고 교총과 전교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교원평가를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대학 구조조정과 교원평가 등은 교육계의 이해관계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김진표 현 교육부총리도 이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한 반발에 직면했다. 과연 김 후보자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민감한 사안을 처리하는 행정 책임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신뢰다. 신뢰를 잃어버린 행정 책임자가 민감한 정책을 추진할 경우 서로 대립하는 양쪽 모두 만족하지 못 한 채로 단지 갈등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가 민감한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에게 필요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18일 청문회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그는 이날 자신의 소신과 배치되는 발언을 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논리적으로 서로 상충하는 말을 하면서도 태연했다.
  
  더구나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는 "2008학년도부터 외고 학생모집 대상지역을 광역자치단체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며 외고 지역제한 정책을 예정대로 추진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민감한 사안을 놓고 불과 며칠 사이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본 국민들이 김 후보자에게 신뢰를 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이해관계와 입장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주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김 후보자가 교육부총리 직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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