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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지상의 낙원, 카슈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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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버림받은 지상의 낙원, 카슈미르

[아시아 인권 투어] <4> 전쟁 고통 속의 일상

2005년 지진, 그 이후

2005년 10월 8일 오전 8시 50분 이후 카슈미르 중동부 지방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진도 7.6을 기록한 이 지진은 이미 60년 가까이 아시아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내전에 휩싸여 생존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이름 없는 민초들에게 절망 이외의 그 어떤 심리상태도 사치라는 사실을 냉혹하게 일깨운 듯하다. '지상낙원'에서 '버림받은 땅'으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여러 도시들은 그 수도인 무자파라바드 인근이 진앙지였던 탓에 인도령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 자체에 의해 무자파라바드에서만 1만1000여 명, 파키스탄령 전체에서는 9만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그 뒤 이상한파가 몰아친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 보태진 사망자 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진은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갈등을 다소 완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는데, 그동안 완전히 봉쇄되었던 통제선을 통해 인도의 구호물자가 파키스탄으로 건네지는 등 양국간 대화채널이 급속히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 10월 29일 뉴델리에서는 자살폭탄테러로 인해 61명이 죽고 200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들을 '이슬람 혁명그룹'이라고 칭한 정체불명의 이 단체는 "인도군이 카슈미르에서 완전 철수하기 전까지 공격은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만을 남겼다.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카슈미르가 아닌) 파키스탄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의 소행이라는 점과 테러 목적이 양국 간의 대화채널을 붕괴시킴으로써 무력충돌의 상태로 회귀시키려는 데에 있다는 점만은 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이는 카슈미르 문제가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국가 대 국가'의 국경분쟁만은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의 일상화 : 천국 속의 지옥

수백 년간 지역 토후국가(princely state)로 공동생활을 영위했던 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mir)는 영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일정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나 1947년 독립과정에서 인도로 편입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제1차 카슈미르 전쟁(1947~49)이 발발했다. 이 전쟁의 결과는 무엇보다 카슈미르 지역의 '분할'이었다. 통제선으로 불리는 휴전선을 중심으로 북서지역의 파키스탄령과 중부 및 남동지역의 인도령으로 각각 분리된 것이다.
▲ 제1차 카슈미르 전쟁의 결과로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으로 분리된 카슈미르. ⓒ 위키피디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는 험준한 산악지형과 낮은 인구밀도, 그리고 종교적 단일성(인구의 99%가 무슬림)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큰 갈등이 없지만, 문제는 인도령 카슈미르, 즉 인도의 행정구역상 잠무 카슈미르주(州)다. 파키스탄령으로 편입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비옥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중부의 카슈미르 벨리 전체와 그 남쪽지방이 모두 인도령으로 편입되었는데 인구 대다수(70% 이상)가 무슬림이기도 하다. 바로 이 인도령 카슈미르가 인권침해의 극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분쟁지역의 인권문제라고 하면 대개 무장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및 이에 대항하는 정부군의 과잉 무력진압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인도령 카슈미르에서도 무슬림 반군과 인도 정부군에 의한 테러 및 살인에 의한 사망자 수가 6만 명을 넘고, 이들 중 절대다수는 반군도 인도군도 아닌 민간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살과 테러는 그저 좀 더 눈에 잘 띄고 좀 더 끔직한 인권침해일 뿐이다. 가장 심각한 인권문제는 전쟁이 일상화되면서 단 하루도 평온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지옥상태'가 강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잠무 카슈미르 지역 무슬림들의 일상은 마을 곳곳에 상주하고 있는 50만 명이 넘는 인도 보안군에 의한 끊임없는 감시와 검문, 무작위로 이뤄지는 가택수색, 구타, 욕설, 강간, 감금 등 하루의 단 일초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반대로 힌두교도들은 저항반군의 잔혹한 폭력과 강탈 및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2일에도 인도령 카슈미르의 수도 스리나가에서는 라지브 간디 추모집회에 모인 3000여 명의 군중을 향해 폭탄이 날아들어 5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슈미르인들은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고 있으며 외지인에 대한 극도의 적개감을 갖고 있다. 또 이들은 적과 동지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마저 겪고 있다. 잠무 카슈미르를 지키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하루 하루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지옥의 삶이며 절망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 지난 3월 10일 '잠무카슈미르 해방전선'의 지지자들이 인도령 카슈미르의 수도 스리나가에서 '인도 반대'와 '자유를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

카슈미르의 삶이 전면전에 의한 민간인 피해 차원이 아닌 이렇게 일상화된 전쟁과 그에 따른 정신적 육체적 피폐화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죽음보다 못한 일상을 살아가게 된 것일까?

사실 1988년 이전의 카슈미르는 단지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영토분쟁 지역으로 세 차례의 전면전(인도-파키스탄 전쟁) 혹은 통제선을 중심으로 한 간헐적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한 단체가 바로 '잠무카슈미르 해방전선(Jammu Kashmir Liberation Front)'이다.

일반적으로 카슈미르 무슬림 반군은 거점지역과 지도부 구성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①파키스탄 거점/파키스탄인 지도부, ②파키스탄 거점/카슈미르인 지도부, ③카슈미르 거점/카슈미르인 지도부가 바로 그것이다. '해방전선'은 ③에 해당된다.

이들은 카슈미르 민족주의자로서 카슈미르에 본부를 두고 카슈미르 정체성에 기초하여 카슈미르가 인도나 파키스탄 혹은 그 어떤 국가로부터도 지배받지 않는 독립된 지역임을 선언하며 무력항쟁에 들어갔다. 이들에게 카슈미르 문제는 '독립'뿐 아니라 '통일'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1988년 7월 31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수도인 스리나가 도심의 중앙우체국에 폭탄공격을 감행한 이후였다. 이들의 공격은 카슈미르 문제를 전혀 새로운 차원, 즉 '무장투쟁의 시대' 혹은 미국과 인도가 정의하는 '테러리즘의 시대'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의 공격으로 인해 인도는 자신이 통치하는 카슈미르 지역의 무슬림 반군에 대한 실체를 확인했으며 이듬해인 1989년 이들의 거점으로 알려진 카르길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이것이 바로 카르길 전쟁 혹은 제4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제3차 카슈미르 전쟁)이다. 양국간 영토분쟁에 카슈미르인들의 민족자결주의가 개입된 것이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①그룹, 즉 파키스탄에 거점을 두고 파키스탄인들이 주도하는 반군활동이 대단히 활발해짐으로써 양국 간의 갈등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신들이 이들 단체들에 대한 '정치적, 외교적, 도덕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더라도 '군사적' 지원은 하지 않고 있음을 명확히 하는데 반해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 군부가 이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종종 두 핵강대국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데 한 예로 2001년 12월 13일 인도 의사당에 대한 이들의 테러공격은 사상자 수로만 본다면 그리 큰 사건은 아니었으나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도 민주주의의 심장을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12월 내내 양국 간의 긴장은 나날이 예각화됐고 통제선에서의 산발적 전투가 수시로 발생했으며 많은 외신들이 핵전쟁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경고하는 사태로까지 치달았다.

국경분쟁뿐 아니라 분단과 통일의 문제까지 안고 있는 캬슈미르

카슈미르인(Kashmiri)은 인도나 파키스탄과는 다른 독립된 역사를 갖고 있고 자신만의 언어를 보존하고 있는 독립된 인종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의 틈에서 분단을 맞은 우리처럼 카슈미르인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외지인에 의해 분단을 강요당했을 뿐이다. 카슈미르가 한반도와 다른 것은 통일과 더불어 '민족자결', 즉 '독립'이라는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복합적인 현실에 처해 있다는 점 뿐이다.
▲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이해관계 다툼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이름 없는 카슈미르의 민초들이다. 사진은 인도 보안군이 지난달 31일 무고한 시민 2명을 죽인 것에 항의해 파업이 벌어진 스리나가 상점 거리를 걷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 ⓒ EPA

이렇듯 카슈미르는 분단의 모순과 식민지의 모순이 동시에 작동하는 아픔의 땅이다. 이 버림받은 지상낙원에서는 독립/통일/파키스탄 편입/인도편입 등의 담론이 어지러이 난무하는 입체적 갈등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분단지역으로써 카슈미르는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이산가족 문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양국간 통제선은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5년 4월 8일 처음으로 개통된 버스는 이들에게 희망을 실어 나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실제 이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신청 후 수 개월, 심지어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 높은 현실의 장벽이다. 관료주의와 복잡한 신원조회 때문이라지만 실제 양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에게 이 버스가 정치적 상징성 이상의 의의를 갖기란 어려워 보인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두 핵강대국 간의 영토적 이해관계, 종교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무차별 테러행위와 이에 대항한 무력진압, '해방전선'으로 대표되는 민족자결주의가 카슈미르 분쟁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은 이름 없는 민초들이다.

강탈·살해·강간·폭력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최소한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군대가 카슈미르로부터 철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극악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인도 보안군의 즉각적인 철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파키스탄 정부는 꾸란을 명분으로 민중들에 대한 테러폭력를 감행하고 있는 자국내 분리저항세력들을 방치하지 말고 갈등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력과 테러가 사라진 공간에서 카슈미르인들에 의한 자발적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인도적 지원을 하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
※ 관련사이트

잠무카슈미르 해방전선(JKLF): http://shell.comsats.net.pk/~jklf
가디언 스페셜리포트: http://www.guardian.co.uk/kashmir/0,,184266,00.html
비비시 인뎁스:http://news.bbc.co.uk/1/hi/in_depth/south_asia/2002/kashmir_flashpoint//default.s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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