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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票가 아니라 '씨'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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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死票가 아니라 '씨'표다"

<인터뷰> 민노당 권영길 후보 지지 'JSA'의 박찬욱 감독

'공동경비구역JSA'. 2001년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또한 영화계에는 정치적인 표현의 자유를, 관객에게는 남북문제에 대한 진보적인 시각을 동시에 선사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박찬욱 감독은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13일 권영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문화예술인 166명과 함께 민주노동당사에서 권 후보 지지선언식을 가졌다. 또 당의 광고모델로도 나섰다.

박찬욱 감독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이 인터뷰가 결정되기까지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두 명의 후보가 더 있었다. '밀애'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과 영화배우 정찬씨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민주노동당 서울 강남지구당 당원으로 1년 이상 당비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진성당원'이었다. 당에 대한 '충성도'에서 다른 두 후보를 가볍게 제쳤다.

***"死票가 아니라 '씨'표다"**

박 감독은 "(도와달라는 연락 왔으면 해서) 주위에 은근히 소문내고 다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자발성'과 '열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박 감독이 가장 목소리를 높인 대목은 "사표(死票)가 아니라 '씨'(종자)표"라는 말이었다.

권 후보를 찍으면 오히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게 된다는 '사표논리'에 대해 그는 "DJ 뽑을 때는 그런 말 안했나? DJ에게 속았는데 또 같은 일을 반복하라는 것인가"라며 단호히 말을 잘랐다. 또한 "노 후보는 DJ 만큼의 리더십도 없다. 엉망진창이나 실패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이어 "권영길과 노무현의 차이는 '진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의 차이다"라며 "점진과 급진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권 후보와 민주노동당이 더 점진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노 후보가 혼자서 확 바꿀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이상이고 환상이다. 개혁은 한 개인의 신념으로 될 일이 아니다. 조금씩 힘을 합쳐서 원내로 지방정부로 들어가고 하나씩 바꾸는 것이 더 점진적이고 온건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이번에 민주노동당에 지지와 동의를 나타내는 국민들의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나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정치를 하는 것은 부시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힘들다"라는 재미있는 비유법으로 대답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 항의해 지난 6일 삭발한 그의 머리가 파랗게 빛났다.

앞으로 작품에 정치색을 반영시킬 것인가를 물었다. 박 감독은 '민주노동당원이 저런 영화를' 하는 영화와, '역시 민주노동당원이군' 하는 영화를 모두 만들 것이라며 "좀 더 넓게 영화나 예술을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박찬욱 감독 인터뷰 전문.

***"주위에 은근히 소문내고 다녔다"**

프레시안 :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고 모델로 광고촬영까지 한 배경은?
박찬욱 : 내가 내심 '민주노동당 당원인데 왜 연락이 안 오지?'하며 궁금해 하고 있는데 한 가지 일이 일어났다. 지구당에서 전화가 왔다. 그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당 : 저, 박찬욱 당원이시죠?
박 : 네(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당 : 당원이신데 유세 좀 나오시고 그러시죠.
박 : 네?( 아, 당은 감독 박찬욱과 동명이인이거나 장난으로 같은 이름 쓴 걸로 아는구나!)

이런 일이 있었고…….(웃음) 사실은 유세전에는 적극적인 지지를 하거나 나서는 것이 필요 없이 당원이라는 것으로 내 정체성이 판단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점점 뭔가 나서서 도와야겠다고 여겨졌다. 그렇다고 직접 당사 찾아가서 '적극 돕겠습니다!' 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은근히 주위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자꾸 그러고 다니니까 결국 연락이 왔고 오늘 지지선언과 촬영까지 한 것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지지로 봐도 좋은가?
박찬욱 : 그렇다. 자발적인 거다. 그리고 우리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이런 것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지지선언도 하는 것을 몰라서 참여하지 못한 예술가가 무척 많다.

프레시안 : 안 하던 일을 시작해서 가족이나 친지가 걱정하지는 않는지?
박찬욱 : 워낙 영화 일 때문에도 집에 늦는 편이라 이번 지지로 일이 더 늘어나 집에 늦을 것을 걱정하는 정도다. 좀 더 이 문제를 이야기 하자면 외국에 가서 특히 일본에서 '공산당'하고 한자로 써 있는 포스터를 보고 외국이라는 사실도 잊고 다리가 떨리던 시절이 있었다. 프랑스나 유럽에 가서도 코뮤니스트 어쩌고 하는 포스터 보면 외국인데도 우리는 뜨끔 하고 그랬다. 요즘 개인적으로 기호5번(사회당)의 '돈 세상을……' 하는 포스터를 보면 즐거워서 웃음이 난다. 이젠 한국도 무의식적인 '자기사상검열'에서 회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민식이 '탄압' 걱정해 줘"**

프레시안 : 주위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반응은?
박찬욱 : 뭐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반응들이다. 나는 '커밍아웃' 하듯이 충격과 논란이 오가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웃음) 술자리에서 이야기 했는데 다들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예술계에는 오히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기질이 있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나를 현실적인 인물로 보는 시각이 많이 있다.

그리고 요즘 분위기가 바뀐 것이 사람들이 TV토론으로 권 후보를 직접 봤고 SOFA가 이슈가 되니까 갑자기 이쪽으로 오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회창이 반미시위에 나서겠다고 했다가 취소하고……. 웃기는 상황 아닌가? 주위에서 대부분 '광화문 촛불시위에 가서도 계란 안 맞을 사람은 권 후보 뿐'이라고들 한다. 엊그제 최민식(배우)이 같이 술 마시다가 선거 후의 '탄압'을 걱정하긴 하더라.

프레시안 : 가수 신해철씨가 '노무현이 지면 그들이 돌아온다'고 노 후보에 대한 선택적 지지를 주장했는데?
박찬욱 : 우리가 사실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DJ 뽑을 때는 그런 말 안했나? DJ에게 속았는데 또 같은 일을 반복하라는 것인가? 자, 그럼 노무현 후보가 됐다고 치자. 얼마나 달라질까? 보수적인 양당 체제에서 말이다. 우선 그를 둘러싼 인물들과 정몽준 의원과의 연대를 보라. 그리고 노 후보는 DJ만큼의 리더십도 없다. 엉망진창이나 실패일 가능성이 크다.

권영길과 노무현의 차이는 '진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의 차이다. 점진과 급진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권 후보와 민주노동당이 더 점진적이다. 노 후보가 혼자서 확 바꿀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인 이상이고 환상이다. 개혁은 한 개인의 신념으로 될 일이 아니다. 조금씩 힘을 합쳐서 원내로 지방정부로 들어가고 하나씩 바꾸는 것이 더 점진적이고 온건한 것이다. 서서히 힘을 넓혀서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이번에 민주노동당에 지지와 동의를 나타내는 국민들의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런 생각과 의식을 정치가들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 노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는 다르다'고 하는데 그럼 더 다른, 차원이 다른 민주노동당 후보를 다 같이 지지하고 뽑는 게 더 올바른 것 아닌가?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말이다. 그럼 10년을 5년으로 앞당길 수도 있다. 권 후보에게 주는 표는 사표가 아니라 씨표다. 권 후보가 늘 이야기한 대로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종자(種子)표다.

***"내가 정치를 하는 것은 부시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힘들다"**

프레시안 : 혹시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나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박찬욱 : 내가 정치를 하는 것은 부시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힘들다. 내가 보기에는 문성근씨나 명계남씨가 지금 정치활동 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다 보니 자꾸 끌려들어가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나는 그런 식의 끌려감도 없을 것이라는 거다.

프레시안 : 자신의 작품에 정치적 의견이나 의미를 계속 넣을 생각인지?
박찬욱 : 그게 가장 민감한 부분일 수 있다. '아니 민주노동당 당원이 저런 영화를'이라는 반응이나 '역시 민주노동당 당원이니 저렇지'하는 단순한 반응은 좀 피해 줬으면 한다. 좀 더 넓게 영화나 예술을 봤으면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만드는 작품 중에는 오락영화도 있을 것이고 민주노동당 당원의 의식이 있는 영화도 있을 수 있다.

지금 준비중인 '올드보이'는 오락영화이자 긴장감 있는 스릴러물이다. 앞에 내가 얘기한 분류법에 따르자면 '아니! 민주노동당 당원이?' 영화라고 할 수 있다.(웃음) 그리고 그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인혁당 사건을 소재로 한 기획도 있다. 그건 '역시 민주노동당 당원이야!'라고 해야 하나?

덧붙이자면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랑스 배우 '미쉘 삐골리'는 공산당원이지만 프랑스인들은 아무런 상관없이 그의 연기를 좋아한다. 반대로 이탈리아의 베르톨루치 감독은 작품 '1900년'이 너무 나이브하다고 (공산)당 차원의 비판도 받았지만 그건 너무 나간 것이었고…….

내 작품 중에는 '공동경비구역JSA'의 초코파이 장면이 좋은 예일 것 같다. 이야기 전개상의 장치로 웃음을 주면서도 자연스럽게 남과 북을 생각하게 하는 점이 좋았다는 관객들이 많았다.

프레시안 : 대선 후가 불안하지는 않은지?
박찬욱 :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내가 뭘 모르는 건가?(웃음) 노 후보가 당선이 되면 옹졸하게 불이익을 줄 거 같진 않고, 이 후보가 당선 돼도 내가 무엇을 하든지 안하든지 서로 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프레시안 : 개표방송을 보며 박 감독 자신이나 권 후보 지지자들이 후회할 일이 생기진 않을까?
박찬욱 :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도 수잔 서랜든(여배우)이나 팀 로빈슨(감독) 같은 진보적인 할리우드 인사들이 민주당 고어를 지지하지 않고 진보후보를 지지해서 부시가 대통령이 됐다고 숀 펜 같은 골수 민주당 지지자가 공개석상에서 욕도 하고 그랬다는데……. 혹시 권 후보를 지지하지만 망설이는 분들은 '말' 지에 실렸던 팀 로빈슨의 '내가 랄프 네이더(미국 소비자운동의 선구자로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을 찍은 이유'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 괜찮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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