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1일 당의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후임 당의장 인선에 난항을 겪는 등 지방선거 참패의 첫번째 후폭풍이 닥치고 있다. 정 의장이 사퇴한 공백은 일단 당헌에 따라 김근태 최고위원이 승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도부 총사퇴론을 주장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이 문제를 둘러싼 격론이 불가피해 보인다. 각 계파도 속속 모임을 갖고 선거 책임론과 당의 향후 진로 등을 논의키로 하는 등 발걸음이 바빠졌다.
중진-친노계 "승계가 순리"
우선 중진들의 분위기는 김 최고위원의 의장직 승계론으로 기울었다. 문희상, 유인태 의원 등이 혼란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지도부의 추가 사퇴는 불가하다는 의견을 김근태 최고위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4선의 이용희 의원도 "어려울수록 원칙(당헌)대로 가야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정 의장이 어찌됐건 책임을 지고 물러났는데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 보다는 차순위자인 김근태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해서 당을 추스르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친노계 의원들도 의장직 승계를 수순으로 봤다. 참여정치실천연대 대표인 이광철 의원은 "단순히 지도부가 물러나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부차적"이라면서도 "무조건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두관 최고위원은 이날 지도부 회의에서 김 최고위원의 승계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정연 소속 회원들은 3일 회동을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다.
초선의 최재천 의원도 "김근태 최고위원의 승계가 순리라고 본다"면서 "비대위로 간다면 김한길 대표가 겸임하는 수밖에 없는데 사실 우리는 그동안 카드를 너무 많이 바꿨다"고 잦은 지도부 공백을 우려했다.
의장비서실 부실장인 우윤근 의원도 "일단 김근태 최고위원이 승계해서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재야파 "지도부의 한사람으로서 책임 져야"
그러나 김근태계인 우원식 의원은 "민심이 당과 정부에 대해 탄핵에 가까운 심판을 한 것이기 때문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재야파 의원들의 모임인 민평련 소속 의원 20여 명은 이날 오전 회동을 갖고 이 문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했다.
우 의원은 "이 자리에선 의원직 사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여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회동에서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재야파 내에서도 의장직 승계와 사퇴에 따른 손익계산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한 쪽에선 정 의장의 의장직을 사퇴함으로써 공을 김 최고위원에게 떠넘긴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섞여 있다. 무엇보다 의장직을 승계할 경우 7.27 재보선 등 위험부담이 큰 정치 일정이 닥쳐 있어 의장직 승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실익이 없다는 논리다.
반면 다른 한 쪽에선 "김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해 책임감 있게 혼란에 빠진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게 명분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김 최고위원의 정확한 의중은 전달되지 않고 있지만 "중진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밝히는 등 당 분위기에 거스르는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더욱이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를 통해 당내 다수의 의견확인 절차를 거쳐 이 문제를 결정키로 한 만큼 그 때까지 각 진영의 대응이 어떻게 모아지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다만 아직 상당수 의원들이 선거 참패에 따른 책임이 정 의장만의 사퇴로 면죄되겠느냐는 의견과 당의 급속한 구심력 상실을 우려하는 의견 사이에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가 이날 회의에서 쉽게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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