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예견된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일제히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나라당은 대전과 제주가 '경합' 지역으로 분류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가운데 선거 압승에 대해선 표정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이다.
정동영 "민심 무겁게 받아들여"…김근태 "오늘처럼 부끄러운 날 없다"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 마련된 열린우리당 개표상황실에는 적막이 이어졌다. 지도부와 당직자들은 예정된 참패 앞에 탄식조차 내뱉지 못했고, TV방송 볼륨까지 죽여 침울한 분위기가 더했다.
정동영 의장은 약 30분 가량 침통한 표정 속에 개표방송을 지켜본 뒤 자리를 뜨며 "표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선거를 지휘한 당 의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크고 작은 모든 책임을 질 생각"이라고 말해 의장직 사퇴 가능성도 내비쳤다. 정 의장은 "이와 관련한 자세한 얘기는 당 공식기구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당 후보들이 너무 아까운 인물들이다. 그분들이 최선을 다했는데 당 의장으로서 너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김근태 최고위원도 코멘트를 거부하다 마지못해 "참담하다. 역사 앞에 중죄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처럼 두렵고 부끄러운 날이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또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서도 "잘못을 공감한다"고 했고, 의장직 승계 의향에 대한 질문에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국민들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고, 조배숙 최고위원도 "민심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자리에 연연하는 지도부는 없을 것이다. (사퇴 여부는) 지도부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출구조사대로 결과가 나오면 한나라당 일당독재가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가 자리를 뜨면서 개표상황실은 사실상 파장 분위기로 바뀌었다.
한나라 "정확한 결과 기다리자" 표정관리
한나라당은 오래 전부터 승세를 지켜 온 11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방송사 예측조사 결과에 대해 담담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경합지역으로 분류된 대전, 제주 지역의 개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엇다.
당직자들과 함께 당사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을 지켜본 이재오 원내대표는 방송 내내 짐짓 무표정을 유지한 채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자"는 말만 거듭했다. 이 대표는 영남 외에도 강원, 충청 등지에서 70% 넘나드는 압도적인 지지율이 예상된 데 대해서는 "기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일을 잘하라는 국민들의 부탁으로 받아 들이겠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당직자들도 '표정관리'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허태열 사무총장은 기자들에게 "우리가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며 호들갑을 떠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웃어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구에 단 한 번 엷은 미소를 띠었을 뿐 이 대표와 함께 굳게 입을 다물었다.
다만, 대전, 제주가 경합지역으로 분류되자 실무 당직자들 입에선 가벼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앞설 것으로 예상했던 대전이 오차 범위 내 우세로 나타나자 "아, 2%"라며 아쉬워하기도 했고, 제주 선거에서 0.2% 우세가 예측되자 "어제 유세에 1만5000명이 왔다고 해서 너끈히 이길 줄 알았는데…"라며 무릎을 치기도 했다.
민노, 전반적 침울…"정당지지율 15% 넘을까?"
개표방송을 보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 모여든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당직자 얼굴에는 비장감이 감돌았다. 정당득표율 15% 획득, 광역·기초 의원 300명 당선을 호언했던 민주노동당의 자신감을 이날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당사 내 기자회견장에 설치된 개표실황 방송장에서는 16개 광역단체장(시·도지사)에 단 한 명의 후보도 당선가능성이 없다는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당초 민노당이 기대를 걸었던 '진보정치 1번지'인 울산 시장 선거에서도 노옥희 민노당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박맹우 한나라당 후보에 40%포인트 차이로 뒤졌고, '서민행복 특별시'를 만들겠다던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도 2.5%의 지지만 예측될 뿐이었다.
당직자들은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 기자들에게 예상 득표율을 물어보는 것으로 초조함을 달랬다. 예상외로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예상 정당득표율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오후 3시 비행기로 김해에서 서울로 올라온 문성현 대표는 당직자들에게 반가움을 표하고 기자들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 문 대표는 "후보자 당선도 중요하지만, 당 득표율이 중요하다"며 정당지지율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당지지율 역시 출구조사 결과 1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자체 여론조사에서 10~13%의 정당지지율이 나온 점을 감안하면 예상외로 낮은 지지율이어서 당직자들은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박용진 민노당 대변인은 "자정 쯤 정당지지율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그 시간까지 개표실황 방송장을 지켜줄 것"을 당직자들에게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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