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친구다. 더 나아가 그는 현 정부 들어 매번 노 대통령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 왔다.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그가 15일 부산지역 기자들과 기자간담회를 가진 일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문재인, 노대통령이 어려울 때 '구원투수' 역할
사실 문 전 수석은 노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면 정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이다. 노 대통령과 오랜 친분으로 그는 노무현 정부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이 됐다.
청와대 내 '왕수석'으로 통하던 그는 2004년 2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표면적 이유는 '건강 악화'였지만 4.15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강한 출마 압력에 못 이겨 물러난 측면도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의 형 건평 씨 처남인 민경찬 씨의 거액 펀드 모금 의혹 사건 등 친.인척 관리에 대한 책임의 문제도 있었다.
문 전 수석은 첫 번째 사퇴 후 네팔로 여행을 떠났다. 총선이 끝날 때까지 국내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행을 하던 중 그 해 3월 12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긴급 귀국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 간사를 맡아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어 노 대통령이 2004년 5월 복귀하자 그는 신설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복귀했다. 이어 2005년 1월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파동 등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노 대통령은 그에게 다시 민정수석을 맡겼다.
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2번 역임한 기록을 세운 문 전 수석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3일 단행된 청와대 비서실 개편으로 다시 청와대를 떠났다. 이번에도 표면적 이유는 '건강 악화'였다.
'차기 법무장관'·'청와대 비서실장'·'부산지역 역할론' 등 무성
하지만 그의 이번 사퇴를 한시적인 의미로 보는 게 정설이다. 과거 정권의 '제2인자'와는 다르지만 문 전 수석은 노 대통령에겐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 이후 당으로 복귀할 천정배 법무장관의 후임으로 기용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노무현 정부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또 정계에선 문 전 수석이 부산 지역에서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부산의 구청장,시의원 후보들이 문 전 수석과 함께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부산시당에 쇄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역할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여권 일각에선 지방선거 이후 도래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문 전 수석이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경남지역의 중심축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참모'이자 '동지'지만 독자적 '정치인'은 아닌 그가 이런 일을 맡으려고 할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정국 주도권, 정당들이 가질 것"
이런 상황에서 문 전 수석이 15일 부산지역 기자들의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노 대통령의 정국 구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 전 수석은 이날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시민들이 왜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신항 및 북항 재개발, 인사 등 정부로서는 거의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는데 시민들의 귀속감이 전혀 없다"며 "엄청 짝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부산 정권'이라는 정체성에 충실하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대해 대통령은 반대"라며 현 정권이 당장의 지방선거, 더 나아가 차기 대선을 위해 호남을 끌어 안을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다.
문 전 수석은 또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대통령은 부산에서도 지역주의가 허물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며 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이번 선거가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선거결과가 좋으면 남은 기간에 참여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여당이 실패하면 더 겸손해지는 등 선거결과를 교훈삼아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방선거 이후 정치전망에 대해 그는 "개헌정국으로 갈 수 있겠고, 좀 더 지나면 대선정국으로 가겠지만 워낙 변화무쌍해 점치긴 힘들다"며 "정국 주도권은 정당들이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부산시장 선거에 역할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당 오거돈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지만 선거에 결합해 지원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대통령 이외에 다른 후보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고 선을 그었다.
문 전 수석은 또 "대통령 임기 중에는 인기가 오르내리겠지만 5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원칙을 지켜 온 것이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평가받을 것"이라며 "대선에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역사적 흐름에 맞느냐는 게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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