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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배급제…'자력갱생적 시장경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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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배급제…'자력갱생적 시장경제'의 길

'2006년 북한은 어디로?' 경제편 〈3〉배급제의 오늘과 내일

북한당국은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 취임 직전까지 1995~98년의 극심한 경제난의 시기를 '고난의 행군'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보다 더 익숙한 표현이 있다. 이른바 '미공급기'이다. 말 그대로 식량이든 생필품이든 국가에 의한 공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는 말이다. 몇 십만 명인지 몇 백만 명인지 정확한 실태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대규모 아사가 발생했던 '역사의 비극'으로 기록될 시기였다.

배급제는 식량과 소비품에 대해 국가가 정해진 수량을 공급해 주는 제도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의 안정적인 확보라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구입 수량의 제한이라는 측면이 있다. 국가 입장에서는 노동력의 재생산 조건의 확보, 주민 소비의 조절 및 억제, 주민 이동에 대한 통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유지 등의 정치경제적 의의가 있다.

북한에서 배급제의 역사는 오래 됐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몇 년간 배급제를 유지했으나 1958년 식량을 제외한 모든 소비품에 대해서는 배급제를 폐지하고 국영상점을 통한 자유구매로 전환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말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이른바 '공급카드제'가 등장, 배급제가 사실상 부활됐다. 물론 모든 소비품에 대해서는 아니었지만, 웬만한 생필품에 대해서는 배급제로 전환됐다.

흔들리는 배급제
▲ 김일성 주석 사후의 북한은 수년간 계속된 자연재해 등으로 극심한 식량부족사태를 겪었다. 사진은 지난 1996년 평양 남부 주민들이 국제사회 구호품인 밀가루를 배급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그런데 배급제는 1980년대 말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식량의 경우, 보름에 한 번씩 공급하게 되어 있으나 배급이 하루 이틀 지연되기 시작했다. 생필품의 경우, 세대별 공급카드에는 국가가 이번 달에 공급한다고 쓰여 있으나 국영상점에 가면 '물건이 없어 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제품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정이 더욱 악화됐다. 식량의 경우, 이제는 지연이 아니라 감량이 시작되었다. 일년 열 두 달분이 아니라 예컨대 열 달분, 8개월분의 식량이 공급되었다. 물론 감량 배급은 1970, 80년대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1990년대의 감량 배급은 보다 심각했다. 특히 주민들 입장에서는 감량의 정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불안정성과, 얼마나 감량될지 사전에 알 수가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의 충격이 컸다. 그러던 것이 1995~98년의 고난의 행군기로 들어가면 배급은 아예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미공급기인 것이다.

1998년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 취임 이후 배급은 부분적으로 복원됐다. 고난의 행군 동안 사실상 붕괴된 계획경제를 다소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어느 정도 가동되고 있는 공장, 기업소에 대해서는 배급을 제대로 주려는 노력이 전개됐다. 하지만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고난의 행군기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배급은 명절날에 반짝하고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2002년에는 7· 1 조치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배급제가 폐지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식량과 생필품의 공급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을 뿐 배급제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명목상 유지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일반 주민들은 배급제 하면 공짜나 다름없는 저렴한 가격으로의 식량· 생필품 공급을 떠올렸으나 이제는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배급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2005년에는 새로운 시도가 등장했다. 북한당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식량 배급제 정상화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배급제의 부활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는 적절치 못하다. 배급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이 아니었다.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유명무실해졌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부터 주민들에게 정해진 양을 정해진 시기에 제대로 배급해 보자는 차원에서 정상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물론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힌트는 발견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지난 7개월 동안 북한의 <노동신문>이나 조총련의 <조선신보>에서 배급제에 대한 기사, 특히 배급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기사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서 조각난 그림 맞추기를 한번 해 보자. 평양은 대체로 안정적으로 배급을 받았으나 여타 지역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좋은벗들>이 발행하는 <오늘의 북한소식>에 따르면 함남 함흥에서는 10월과 11월, 쌀과 옥수수가 완전히 탈곡된 형태로 두 달 분량이 정상 공급되었으나 12월에는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함북 회령에서는 11월에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12월말에는 배급표를 식량공급소에 가져온 사람에 한해 10일 분량의 쌀이 공급됐다고 한다.

평양도 올 4월 열흘치 식량만 배급, 5월엔 '전면 중단' 소문도

올해 들어서 배급량은 꽤 줄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월 16일, 김정일 위원장의 탄생 64돌을 맞아 전국적으로 평균 2일분의 식량이 공급되었을 따름이었다. 3월 들어서는 식량 사정이 더 나빠지고 있다. 평양의 경우 1, 2월에는 정상 배급이 이루어졌으나, 3월에는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4월에는 10일분만 공급되었고 5월에는 일반 주민에 대한 식량 공급이 전면 중단된다고 하는 소식도 들려온다.

시장에서의 쌀 판매 단속도 들쭉날쭉이다. 북한 당국은 배급제 정상화를 시도하면서 동시에 시장에서의 쌀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런데 쌀 판매에 대한 단속은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시행되고 있다. 단속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역도 많고, 단속이 실시되는 동일한 지역 내에서도 개별 시장에 따라 사정은 상이하다. 또한 단속을 한다 해도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단속이 이루어지면 거래는 개인집으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하다.
▲ 주 : 상이한 사람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기초한 시계열 자료이기 때문에 추이를 파악함에 있어 한계가 있다. ⓒ 프레시안

이 문제를 다른 시각, 즉 시장에서의 쌀 가격 추이를 통해 고찰해 보자. 표에도 나타나 있듯이 함북 회령의 경우가 유일하게 1년 동안의 추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배급제가 실시된 직후 가격이 일시 상승했다가 몇 달 후에 종전의 가격대로 돌아왔다. 그 수준에서 올 1, 2, 3월은 비교적 안정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올 3월은 작년 3월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아도 유사한 추세를 읽을 수 있다. 배급제가 실시된 직후 10월과 11월에 일시적으로 가격이 상승했다가 종전의 가격 수준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배급제 정상화 시도는 시장에 일시적인 충격은 주었지만 큰 흐름으로 보아서는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달리 본다면 북한당국은 배급제 정상화를 통해 쌀값을 하락시키고자 했지만 이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 현재 북한의 여건에서 배급제 정상화 시도는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공급량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10%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90%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본질은 동일하다. 전량을 공급받지 않는 한, 즉 쌀을 100% 공급받지 않는 한, 그 나머지 부족분은 시장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시장에서 구입하는 양이 10%냐, 90%냐 하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당국이 100% 공급을 맞추어 주지 못한다면 암시장은 근절시킬 수 없다. 게다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다면 암시장에서 식량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투기적 자본의 행위까지 겹치면 암시장 가격은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 10, 11월의 쌀값 상승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의 쌀 가격 변동의 계절별, 월별 추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쌀값은 전통적으로 가을 수확기인 10, 11월에 다소 하락했다 12월에 소폭 오른 후 안정세를 유지하다 3, 4월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한 패턴을 보인다. 중국, 한국 등 외부에서의 쌀 유입량이 영향을 주기는 하나 이는 부차적이다. 기본적으로는 북한 내 생산 물량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그래서 북한 내 생산 쌀이 나오는 지난해 12월 혹은 올 1월부터 종전의 수준으로 회귀했다. 다만 문제는 이른바 춘궁기인 올 4월 이후이다. 국경지역에서는 이미 쌀값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현재 식량생산 능력으론 배급제 정상화 불가능

결국 배급제 정상화는 평양 이외의 지역은 지난해 12월, 올 1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평양 지역은 올 3월부터 휘청거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따진다면 배급제 정상화 시도 이전의 시기로 회귀한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북한 내부에서도 배급제 정상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지도원급이나 과장급 간부들조차 현재 북한에서 생산된 식량으로는 전국적인 배급제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배급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나지 않았느냐는 목소리조차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배급제 정상화 시도에서 드러나듯이 북한당국의 의지가 있다고 해서 시장화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북한에서의 시장경제는 방임적 시장경제, 자력갱생적 시장경제로 규정할 수 있다. 즉 국가가 시장경제활동에 대해 아무런 자원을 제공해 주지 않는 상태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시장경제이다.

그런 상태에서 북한당국이 과거의 계획경제로 회귀하고 싶어도 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계획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 자신이 공장 · 농장 등 생산주체에게 내리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수단, 즉 자원과 자본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이 배급제를 정상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정상화시킬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배급제를 유지할 수 있는 공급물량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배급제 정상화 시도를 보고 북한당국의 자신감을 지적하는데, 경제라는 것이 당국의 자신감만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님은 다름 아니라 북한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경제 전체로 보아서도 마찬가지다. 계획경제의 정상화는 현재의 조건 하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시장경제 활동이 합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느냐, 불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는 그 차이만 있을 뿐,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경제 활동은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

* '2006 북한은 어디로?' 시리즈는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의 공동기획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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