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 불신임 결의안 제출 의지를 밝힌 데 이어 부시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2년도 넘게 남긴 상황에서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더욱이 오는 3월 20일 이라크 침공 3주년 앞두고 세계 곳곳에서 부시 대통령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모아지고 있다.
***페인골드 "비밀 도청은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
부시 대통령이 당장 직면한 난관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이다. 미국 민주당의 러스 페인골드 상원의원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 대해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AP〉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불신임안의 이유는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국내 불법 도청을 인가해준 탓이다.
페인골드 의원은 5쪽짜리 이 결의안에서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국가안보국(NSA)에 비밀 도청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반드시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부시 대통령의 조치는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되는 '스트라이크 존'에 있다며 부시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집무실에서 쫓아내는 것이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페인골드 의원은 지난 2001년 애국법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상원의원이며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 시간표를 짜야 한다고 주장한 유일한 상원의원으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쓴소리 전문' 의원이다.
이같은 불신임 결의안 제출 움직임에 민주당 의원들도 동조하고 있다. 하원 법사위의 존 코니어즈 민주당 하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의 비밀 도청 인가가 탄핵 사유가 되는지를 의회가 심의ㆍ결정하도록 하기 위한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미국 역사상 딱 한 번뿐이다. 1834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그 불명예의 주인공이었다. 르윈스키 스캔들에 휘말렸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상원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제출됐으나 부결된 바 있다.
불신임(不信任, censure)은 대통령이 물러나야 하는 탄핵(彈劾, impeachment)과는 달리 당장 대통령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을 피력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원내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대통령 불신임에 대해 적극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불신임 결의안이 상원에서 통과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러나 불신임안이 의회에 제출된 것만으로도 부시 대통령은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타임〉 "두바이포트월드 항만인수 포기, 부시 레임덕 시작됐다"**
페인골드 의원의 불신임 결의안에 대해 공화당의 빌 프리스트 상원 원내 대표는 "정치적으로 미친 움직임"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공화당과 부시 대통령의 사이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아랍에미리트연방 국영기업인 두바이포트월드(DPW)의 항만운영권 인수 문제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이 적극 반발하면서 거래가 결국 무산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12일 내놓은 최신호를 통해 이 일이 부시 행정부 레임덕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바이포트월드는 뉴욕, 볼티모어 등 미국의 주요 항만 6곳의 항만운영권을 영국 P&O사로부터 인수하고자 했으나 공화당ㆍ민주당 할 것 없이 미국내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지난 9일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미국 의원들이 '국가안보'를 근거로 두바이포트월드의 항만운영권 거래를 막는 입법까지 추진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자 부시 대통령은 법안 통과시 거부권까지 행사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결국 두바이포트월드가 인수를 자진 포기함으로써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일단 마무리됐지만 이번 일은 대통령의 '친정'인 공화당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대통령의 의사에 반발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타임〉은 이번 일을 계기로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의원들의 대통령과의 거리두기가 본격화되면서 부시 의 국정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일은 부시 대통령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공화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부시 대통령이 입을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타임〉은 부시 대통령이 열성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공화당 안팎에서 백악관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3.20 이라크 침공 3주년 앞두고 전세계 반전 움직임**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라크 침공 3주년을 앞두고 안팎에서 이라크 전쟁 관련 비난이 다시 거세지고 있는 것도 부시 대통령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이라크전 발발 3주년을 맞는 3월 20일을 앞두고 전세계적인 반전 운동이 18일과 19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날 예정이다. 이라크를 포함해 각국의 수도를 중심으로 벌어질 예정인 국제공동반전행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라크 전쟁 반대' 목소리가 부시 대통령을 겨냥할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이처럼 이라크전을 두고 비난이 높아지는 가운데, 영국의 공수특전단(SAS)의 전 정예 요원이 이라크전에서의 미군의 '불법적' 작전활동에 대해 폭로하기도 했다. SAS 대테러팀 요원으로 이라크에서 복무했던 벤 그리핀은 이라크에 돌아가기를 거부하며 군생활을 포기한 후 영국 〈선데이 텔레그라프〉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12일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그리핀은 저항세력 색출을 위한 미군과의 합동작전 경험을 얘기하며 "미군은 전혀 위험하지 않은 노인이나 농부임이 명백한 사람들, 저항세력과 관계없는 민간인들을 마구잡이식으로 잡아들이고 있다"며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악명 높은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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