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덴마크 일간지의 만평이 불러온 갈등이 어디까지 확산될까?
마호메트를 그린 만화 한 컷이 이슬람권의 격렬한 반발을 부르면서 인명피해까지 속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국가들은 언론매체에 만화가 게재된 국가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경제제재까지 시도하고 있으며, 파문은 덴마크의 한 일간지와 이슬람교도들 사이의 감정대립을 넘어 서방 기독교문화권과 이슬람권 사이의 문화충돌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한편에서는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교도들의 분노를 방조·이용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적 차원의 대응에 홀로코스트 만평 게재 시도까지**
"'위대한 마호메트'를 어떻게 만화로 그릴 수 있는가?"
이슬람교도들의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서방 언론들에 대한 분노가 대사관 방화 등 격렬한 시위로 표출되면서 인명피해까지 속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라그만 주 경찰에 따르면 5일 메흐탈람에서 벌어진 시위 도중 총격사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 대사관에 대한 방화 등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도 시위 과정에서 1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부상했다. 레바논에서 벌어진 과격시위 이후 하산 사베흐 레바논 내무장관이 사표를 제출했고, 가지 아리디 정보장관은 이날 있었던 과격 시위에 대해 덴마크 정부에 공식적으로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만화 한 컷이 이슬람의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사람이 다치고 죽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지만, 거센 항의의 물결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의 항의시위뿐 아니라 이슬람권 국가들의 공식적인 항의와 경제제재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어 파문은 서방국가들과 이슬람권 국가들 사이에 정부 차원의 대립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란, 이라크 등은 경제적 차원의 대응도 모색하고 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만평이 언론에 게재된 서방국과의 거래를 끊도록 지시함에 따라 5일 이란 상무부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라크 교통부도 덴마크 기업들과의 계약을 취소하고 덴마크의 이라크 재건자금도 거부한다고 5일 밝혔다. 이라크의 한 고위관리는 일부 신문에 만평이 게재된 노르웨이의 기업들과 계약을 종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의 소환도 줄을 잇고 있다.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에 이어 이란도 5일 "예언자에 대한 모욕은 가증스럽고 수용할 수 없는 야만행위"라는 대변인 논평과 함께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한다고 밝혔다.
만평으로 대응하겠다는 움직임도 나왔다. 이란 테헤란 시의 기관지인 〈함샤흐리〉는 5일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관한 만평을 전세계에서 공모해 게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서구 신문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이슬람을 모독하는 만평을 실은 데 대응해 홀로코스트가 날조됐거나 과장됐다는 만평을 게재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진 '유대인 600만 학살설'에 대해 이슬람권은 정확한 근거자료가 없는 과장된 수치라는 시각을 보여 왔다.
***"폭력은 안 된다" 각국 지도자들, 자제 호소**
이슬람권의 분노가 정부 차원의 대응과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으로 표출되면서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6일 성명을 통해 "마호메트 풍자 묘사가 공격행위를 촉발시켰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그 무엇도 유럽 대사관들과 덴마크를 겨냥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미국도 폭력행위에 대해 비난하고 나섰다. 백악관의 스콧 매클렐런 대변인은 "이번 만평 파문과 관련해 장소 여하를 불문하고 폭력행위를 비난한다"고 6일 밝혔다.
러시아 두마(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콘스탄틴 코사체프 위원장은 6일 유럽 언론들의 만평 게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이슬람 시위대의 자제를 호소했다. 코사체프 위원장은 "국제사회는 사과를 한 뒤 폭력의 즉각 중지를 요구하는 등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면서 "만평 게재에 대한 대응은 정치적인 것일 수는 있어도 절대로 무력이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슬람 분노의 원인은?**
만화 한 컷에 대해 이슬람권은 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마호메트는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이슬람 교도들은 1400여 년 동안 하루에 5차례 기도를 올리는 등 마호메트의 말을 삶 속에서 실천한다. 마호메트를 모욕하는 것은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사형'에 당할 수 있는 중죄에 해당한다. 이같은 이슬람의 정서를 유럽 언론들이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가볍게 생각한 것이 1차적 원인이다.
더욱이 이 만평을 처음으로 게재한 덴마크에 대해 이슬람교도들이 정부 차원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덴마크 정부는 한 언론사가 일으킨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거부했다. 이슬람의 불편한 심기를 초기에 달래지 못한 미숙함이 사태를 키운 한 원인이 된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슬람교도 전체가 테러범으로 취급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로 인한 이슬람의 반발도 이번 사태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더욱이 문제의 만평이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처럼 인식되도록 그려놓은 것이 이같은 반발심에 불을 지른 격이 됐다.
사사건건 서방권과 대립해 온 중동 국가들도 악화일로로 치닫는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을 방조·이용한 것이 문제를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이라크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가뜩이나 감정이 좋지 않은 양 측이 이번 사태로 본격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핵 문제 등으로 서방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이란 정부가 반발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 마호메트 만평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첫 번째 국가인 이집트는 덴마크가 자국의 반정부 인사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
서방 언론들의 이중잣대도 이슬람교도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슬람권에서 유대인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서방 언론이나 정부가 이번 사태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이슬람교도들의 민감한 반응을 이해 못 하겠다고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 풀릴까?…"이해와 대화가 문제해결책"**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확대될까? 이슬람권에서는 사태 해결의 전제조건으로 덴마크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하고 있는 데에다가 아랍지역 언론들 역시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5일 덴마크 외무부에서 이슬람회의기구(OIC)가 이 문제를 놓고 스티크 묄러 덴마크 외무장관과 만나기로 합의했다고 밝힘에 따라 외교적 해결의 실마리가 열릴지 기대되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로마 교황청도 양측에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고, 공식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덴마크 정부에 대해서도 전향적 대응을 주문하는 서방권 지도자들의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슬람권 내부에서도 폭력시위가 오히려 이슬람의 이미지를 해치는 것이라며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어 사태 해결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풀기 위해서는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