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4일 타계한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오랜 동료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쓴 추도사가 진보적 인터넷 신문 '참세상'에 실렸다.
김 교수는 지난 1982년 정운영 위원과 함께 한신대 경상학부 교수로 부임했다가 1986년 학내 민주화투쟁에 연루돼 동시에 해임됐었다. 그 뒤 김 교수는 서울대에 자리를 잡았고 정 위원은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김 교수는 추도사에서 한신대에 함께 재직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한 동료로서 정 위원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당신은 중앙일보로 간 뒤부터 점점 한국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오. 나는 당신이 중앙일보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멀어졌으며, 나도 놀랐지만 금년도 나의 연락망에서 당신의 전화번호는 사라져 버렸다"고 생전의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어 "당신은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며 "좀더 살았더라면 당신의 현실적 경험을 중심으로 큰 토론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인데, 이렇게 일찍 가버리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교수의 추도사 전문이다. <편집자>
***"이 못난 사람아! 왜 먼저 죽어!"**
당신은 너무나 깨끗하고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병이었습니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대강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살아보지 왜 그렇게 칼날을 세웠습니까. 당신은 위암에도 걸렸는데 언제 또 신장병을 '지병'으로 가졌습니까.
내가 1977년 가족을 모두 데리고 루벵의 당신 집을 방문했지요. 나도 당신도 모두 박사논문 쓰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당신 집의 책꽂이를 보고는 놀랐소이다. 나는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에 관해 논문을 쓰고 있었고 당신은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이 최근 100년의 미국 역사에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실증분석하고 있었소.
마르크스 공황이론의 핵심이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이기 때문에 당신과 나는 사실상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요. 그날 나는 당신이 모아놓은 책이며 논문들을 보면서 정말 탄복했소. 당신은 지나치게 완벽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에게 분노를 느끼고 남들로부터 욕도 먹은 것이요.
우리가 박영호 박사와 함께 유럽에서도 만나고 한신대학에 와서 한신경제과학연구소를 만들어 마르크스 경제학을 보급하는 데 얼마나 노력하였소. 당신이 소장이 되어 한 달에 한번씩 우리가 마르크스 경제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각 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우리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고 한국 경제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지 않았소.
이것이 해방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의 부활이었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소. 그러나 그 바람에 당신과 나는 한신대학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그리고 쫓겨난 덕택에 당신과 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오.
당신은 경제학자보다는 신문기자에 더욱 적성과 소질이 맞다는 생각을 나는 계속하고 있었소. 실제로 당신은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한 뒤에 박사학위를 받았던 것이오. 당신은 문학청년의 소질을 매우 많이 가지고 있어 쓰는 글마다 독자들을 감동시켰소.
감성이 풍부해 소련혁명사를 인간의 해방이란 관점에서 줄줄 외우고 있었죠. 그렇기에 스탈린을 그렇게 싫어했고 고르바초프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당신이 한겨레신문이나 중앙일보에 쓰는 글마다 대학생들이 얼마나 즐겨했던가를 기억해 보세요. 모두가 당신의 문학적 상상력 덕택이었습니다.
당신은 중앙일보로 간 뒤부터 점점 한국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오. 나는 당신이 중앙일보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멀어졌으며, 나도 놀랐지만 금년도 나의 연락망에서 당신의 전화번호는 사라져 버린 것이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중국을 다니고 세계를 누비더라도 우리의 민중을 잊어버리면 마르크스주의자로서는 자격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요. 당신은 이런 것을 개의하지 않고 "나는 옳다"고 외치지만 민중은 당신이 삼성재벌에 포섭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키만큼이나 높은 인격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꼼꼼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정성을 높이 삽니다. 당신은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좀더 살았더라면 당신의 현실적 경험을 중심으로 큰 토론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인데, 이렇게 일찍 가버리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당신은 하늘에 있으면서도 우리를 향해 소리칠 것입니다. "바보들! 그것도 제대로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이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던 '새로운 세상', '참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당신에게 외치네. 이 못난 사람아! 왜 먼저 죽고 야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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