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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진실을 소중히 했던 탁월한 인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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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진실을 소중히 했던 탁월한 인문주의자"

<추모사> 정운영 선생을 그리워하며

뛰어난 사회과학자인 동시에, 그이만큼 인문학적 소양과 표현력을 풍부하게 지닌 지식인이 오늘의 당대에 과연 있었던가? 엄청난 다독(多讀)의 내공으로 동서고금을 종횡 무진하는 그의 사유(思惟)는, 중원에서 필적할 자가 없는 고수가 황홀한 검무(劍舞)를 추는 듯했다.

그의 칼은 예리했으나, 그에 베인다 해도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솜씨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 대해서 마음이 따뜻한 자만이 이룰 수 있는 경지였다.

그는 자신의 키가 큰 것이 아니라 "길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허 참 하고 빙긋이 웃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과연, 길다. 얼굴도 손가락도. 그리고 한번 보면 쉽사리 잊을 수 없도록 긴 여운을 남기는 그 소년 같은 밝고 투명한 미소마저도.

그런 그가 그만 타계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정운영",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어, 못내 그리운 이름이 되고 말았다. 가슴이 이토록 깊게 아리다.

정운영 선생과는 한살 터울로 형 아우하며 지내오던 조정래 선생은, 10년 전 돌아가신 박현채 선생이 생각난다고 하신다. 좀 더 오래 살아 여러 가지 일을 이루어야 할 이들이,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에 자꾸 이렇게 가고 마는 것이 견뎌내기 어려우시다는 것이다. 박현채 선생 떠나보낼 때처럼, 정운영 선생 떠나보내는 심정이 비통스럽단다. 그를 아는 누구인들 이와 다른 마음이 들겠는가?

도대체가 정운영, 그는 사물을 현재 놓여 있는 방식대로 보려들지 않는다. 하여 그는 '삐딱'했다. 그의 긴 키가 이를테면 지상을 걷는 '피사의 사탑(斜塔)'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마냥 기울어진 사탑이 아닌, 세상을 제대로 조망하는 '전망대'로 기능하기를 바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고 기존의 상식과는 다르게 기습적으로 접근해서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는 능력은 익살맞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는 역시 비범하게도 <광대의 경제학>이라는 말을 창안해냈으리라.

말하자면 그는 기존의 질서에 대하여, 중세로부터 이어져 내려 온 '광대의 면책권'을 최대한 활용해 진실을 드러내려 한 셈이었다. 자신이 혹여 세상으로부터 웃음거리가 된다 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속 표정은 언제나 근엄했다. 자신의 과제와 질문에 대해서 거의 '완벽주의적으로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진지함이 지나쳐 그에게 병을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타자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이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던가?

마르크스 경제학의 최고 수준으로 훈련된 광대 앞에서, 시대를 일거에 꿰뚫어 혁명을 하겠다는 일부 진보적 사회과학자 또는 운동가들의 바리새적 비장함과 유머를 잃은 엄숙주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민중의 가슴에 진실하게, 때로는 단숨에 명쾌한 어법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사회과학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에 더하여 끊임없이 유전(流轉)하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도그마의 논법으로는 결국 미래를 실패로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논설이 결코 가볍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고뇌가 마침내 도달한 지점으로까지 우리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시대를 바꾸어 보겠다고 깃발을 들고 나서는 이들에 대한 때로의 질타는 그 깃발 자체에 대한 비난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진보를 내세우면서 실력과 진실을 갖지 않은 채 오로지 권력의지로 뭉친 이들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지적 위선과 정치적 기만에 대해서는 결벽증일 정도로 정운영 선생은 혐오했다. 반면에 진정성을 가진 이라면, 그가 진보이든 보수이든 가리지 않고 진심과 경의를 가지고 대했다.

그의 왼편에 조정래, 신영복 선생 등이 있다면 그의 우편에 박태준 전 총리가 있다는 사실은 그의 인간적 교분관계가 가진 폭을 말해준다.

벌써 수년 전, 강연 차 잠시 미국에서 귀국했던 때 어찌 아시고 연락을 주시며, "김 선생, 나 당신 글 팬이야"하고는 이 후배를 졸지에 대단히 황송스럽게 만드시고는 이름은 알았지만 그때까지는 생면부지(生面不知)였던 사이를 일거에 좁혀 놓으시는 것이었다. 오랜 미국 생활에서 '오십세주'가 무엇인지 도통 몰랐는데, 그런 술 혹시 아느냐면서 백세주와 소주를 함께 손수 부어 만든 오십세주를 정겹게 건네시던 정운영 선생, 아니 정운영 형이 무척이나 그립다.

노예는 반란해야 하고, 식민지는 청산되어야 하며,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과 미국의 패권적 위기 속에서 남북간의 공동 전략에 대한 깊은 모색이 필요하다며 서로 의기투합했던 시간, 미국의 진보적 사회과학의 경향에 대해 이런 저런 견해를 나누던 일들, 그리고 결국 뭐니 뭐니 해도 인간적 진실이 가장 소중하다면서 그런 것이 없는 정치는 당연히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 박던 모습.

그는 단지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아니라, 진보의 가치를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는 넉넉한 품을 가진 탁월한 인문주의자였다. 하여 그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화법을 만들어 놓고 갔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이 시대의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해나갈 수 있는가를 말이다.

여전히 심히 아쉽다. 한 손을 턱에 괴고 상대를 깊이 응시하는 그 매력적인 '정운영'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이 시대가 쓸쓸하다.

부디 편히 가소서. 하늘이 허락하시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겠지요. 그때에는 제가 맛이 좋은 술 한 잔 다정하게 올리오리다. 아, 소리 없이 활짝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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