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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감청 종료'가 왜 하필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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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감청 종료'가 왜 하필 '2002년 3월'?

국정원 발표에 의혹…'盧대통령에 면죄부' 지적도

국가정보원의 불법감청 중간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분분하다. 큰 줄기는 현정부에서는 정말 도청이 근절된 것인지, 국정원 발표에 모종의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닌지로 나뉜다다. 양갈래 모두 불법도청 종료 시점이 왜 하필 2002년 3월이냐는 데에서 출발한다.

***김기삼 "도감청 중단한 것은 2002년 3월 아닌 10월"**

국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이 강화되고 CDMA 기술이 발전되면서 휴대전화 감청기술이 따라가지 못해 2002년 3월 휴대전화 등의 불법감청을 완전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불법 도감청을 중단시킨 당사자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확히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고 여하튼 내 (임기) 기간 중에 (불법 도청이) 중단됐다"고 국정원이 발표한 중단 시기를 정확히 확인해주지 않았다.

신 전원장은 또 "밑에서 이런 것을 어떻게 하는지는 알 길이 없고 보고를 받지도 않았다"며 "(김 전대통령의 별도의 지시에 따른 게 아니라) 내 입장에서는 도청을 중단하라고 특별지시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관행적 지시'였다는 뉘앙스가 다분하다.

수 차례에 걸친 김 전대통령의 '도청 근절' 강조에도 아랑곳 없이 불법 도청을 행해 온 국정원이 원장의 관행적 지시에 의해 모든 도청장비를 폐기하는 등 대대적 정화를 했을 리가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2002년 3월은 여야의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가 한창인 시점이어서 고급 정보에 대한 수요가 어느 때 보다 컸던 때였다.

안기부의 불법도청 사실을 처음 폭로한 김기삼씨도 국정원 발표 후 일부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신건 당시 국정원장이 도청전담 부서인 과학보안국을 해체한 것은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이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발표보다 7개월이 늦은 시점이다.

그는 "2002년 9월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 테이프를 폭로하니까 대통령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해체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는 대선 직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국정원의 도청 자료라며 일부 내용을 폭로한 파문을 두고 한 말이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던 2002년 9월 정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 정권 실세가 개입됐다"며 국정원이 정·관·재계 인사들을 상대로 한 무차별 도청을 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한 한나라당이 2개월 뒤인 11월 공개한 '국정원 도청 자료'에는 '2002년 3월' 한 달 동안 국정원이 여야 의원과 언론사 간부 등 39명의 통화내용을 도청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정원 내부 직원이 정 의원에게 유출한 자료로 알려진 이 문건은 국정원 불법 도청과 관련해 논란이 일었던 가장 최근이자 마지막 사례였다.

국정원이 '2002년 3월'을 도청 종료시점으로 발표한 것은 이를 고려한 것으로 유추할만한 정황적 근거가 된다.

***"노 대통령에게 면죄부 주려는 의도"**

이번 중간발표에 이르기까지 국정원이 정치적으로 '좌고우면'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은 또 있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7월 말 국정원장으로부터 불법도청 문건 공개의 파장에 대해 염려하는 보고를 받았으며, 이를 다시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문 수석은 또 "노 대통령은 파장이 염려되기는 하지만 모든 진실이 공개돼야 한다고 했다"며 "오히려 차제에 도청에 대해선 더 이상 의혹이 남지 않게끔 밝히자고 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확인된다. 국정원이 'DJ 시절 불법도청' 공개에 따른 파장을 우려했다는 것과 노무현 대통령이 전면 공개를 주문했다는 점이다. 그 후 국정원은 8월1일 국회 정보위에선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별다른 진척사항을 내놓지 않았고 5일 중간발표 형식을 빌어 내용을 공개했다.

그 사이의 나흘 동안 국정원이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공개 주문을 수용하되, 현 정부로의 불똥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는 점을 놓고 고심한 끝에 절충선으로 '2002년 3월'을 불법도청의 종료시점으로 선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적으로 되짚어 보면 2002년 3월은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돼 소위 '노풍'이 점화되면서 노무현 후보가 유력한 여당 대선후보로 떠오르던 시점이다. 따라서 3월 이후의 시점까지 국정원의 불법 도청이 있었다면, 도청 자료가 대선 과정에서 야당에 대한 정치공작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될만 하다. 의혹만으로도 "깨끗한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는 노 대통령과 여권의 주장에 큰 누가 되는 일이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이 여권 대선후보로 본격 나서기 시작한 3월부터는 불법도청이 없었다는 국정원 발표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억지 짜맞추기"라며 "이는 노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DJ 정부 시절의 불법도청을 공개토록 한 배경에는 호남권의 일정한 반발을 감수하더라도 '정치개혁'이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어 정국 반전의 호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정치공학적 분석도 나온다.

***야3당, 불법도청 종결 시점에 의구심**

한나라당은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등 이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을 태세다.

권영세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불법 감청 의혹을 제기한 것은 9월부터 12월까지였는데 국정원이 이 때문에 불법감청을 중단했다면 그 시기는 3월이 아니라 9월 이후였어야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의원도 "2002년 3월까지만 도청 사실이 있고 그 뒤에는 근절됐다는 국정원의 발표는 의심을 갖고 접근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도 "현정부에서 불법 도청이 근절된 것인지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현재 불법도청 문제의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느낌을 준다"며 국정원의 발표 배경에 깔려 있을지 모를 모종의 '정치적 의도'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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