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의 개각과 DJP 단독 회동으로 민주-자민련-민국당 신3당합당을 통한 신당 창당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왜소화되고 있는 동교동계가 합당 추진의 주체라는 점에서 합당의 성사 여부와 그 정치적 효과는 지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민주당내 격렬한 내부갈등이 예상되고, 자민련 및 민국당의 내부 분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가에서는 이번 합당 추진이 순조롭게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합당론’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결국은 지방선거를 위한 연합공천 정도에 머무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한 합당 및 신당창당이 무리하게 강행될 경우 민주당 및 자민련과 민국당 일부가 이탈하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큰 상황, 즉 ‘제 무덤 파기’가 될 우려가 크다는 예측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으로서는 개각 이후 정계개편 추진 여부를 예의 주시하면서도, 다른 한편 합당 추진이 여권 분열과 이탈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란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개각과 DJP 회동으로 합당론 급가속**
합당 및 신당 창당론의 출발점은 자민련과 민국당이다.
자민련과 민국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계개편 만이 살 길’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김종필 총재는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각제 신당 창당을 이미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김윤환 민국당 대표가 지난해 내내 영남권 후보론을 중심으로 각종 정계개편설의 진원지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이들을 배척하고 독자노선을 고수하는 한 개편의 파트너는 민주당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3일 민주당 동교동계 핵심인 중도개혁포럼이 내각제 공론화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합당 추진이 급가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29일의 개각과 DJP 단독 회동으로 “동교동계가 조직적으로 합당 추진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9일 개각의 핵심은 박지원 특보의 컴백이다. 그리고 박지원 특보가 김윤환 민국당 대표와 파트너가 되어 지난 한해 동안 여러 방식의 정계개편을 모색해 왔다는 것은 정가의 상식에 속한다.
또한 DJP 공조 파기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DJP 단독 회동 역시 합당 추진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청와대 측은 “정치와 무관하게 정치.사회 등 각계 지도자들을 상대로 국정운영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의 일환일 뿐”이라고 거듭 해명하고, 한나라당의 동의도 없는 상태에서 “내주 중에는 이회창 총재도 만날 것”이라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회동 후 양측은 "JP가 내각제 소신을 피력했고, DJ는 경청했다"는 대화록을 공개했다. 정치 얘기가 있긴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개각과 박지원 특보의 컴백, 그리고 DJP 회동을 계기로 “DJ가 다시 정치 일선에 복귀, 합당 추진을 진두지휘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합당-신당창당 밑그림 매우 구체적**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합당과 신당 창당을 위한 밑그림도 이미 상당 부분 그려져 있는 상태다. 정균환 의원이 앞장서 자민련 및 민국당 고위 인사들과 접촉해 왔고, 대선 승리후 1년 이내 개헌 추진, 집단지도체제 등의 조건에도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윤원중 민국당 사무총장은 “정균환 의원과 김윤환 대표가 접촉해 이런 원칙에 합의했으며, 자민련과도 정 의원이 조율을 끝냈다. 민주당의 내부 의견정리를 기다리는 상태”라고 확인했다.
중도개혁포럼이 향후 민주당내 의견수렴을 더 거친 뒤 당무회를 통해 합당 원칙을 의결하고, 수임기구를 구성해 자민련.민국당과의 지분협상에 나설 계획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합당으로 탄생할 신당 임시대표를 한광옥 민주당 대표가 맡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신당의 명예대표를 맡는다는 안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다소 성급한 관측이지만 2월중 합당을 마무리 하고 3월초 제주를 시작으로 4월 20일 전당대회를 여는 기존 일정을 계속 추진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자민련과 민국당의 대선후보 출마 희망자는 기존 민주당의 선출 일정에 따라 경선에 합류시킨다는 시나리오다.
***동교동계 주도 정계개편 성사 가능성 낮아**
그러나 이러한 합당 추진 움직임이 전적으로 동교동계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된다. ‘내각제 공론화’를 치고 나온 중도개혁포럼과 정균환 대표는 동교동계의 핵심이다.
29일 개각으로 컴백한 박지원 특보 역시 지난해 당 쇄신파동에서 동교동계 전횡의 장본인으로 지목받았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설득작업은 역시 동교동계라 할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대선주자 7명 가운데 현재까지 합당 추진에 명시적인 찬성의사를 밝힌 사람은 역시 동교동계인 한화갑 상임고문 한 사람뿐이다. 특히 한 고문이 일찍부터 내각제 찬성론을 펴고, 권노갑 전 고문과의 회동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이처럼 지금까지 정계개편 혹은 합당 추진과 관련 적극적 태도를 보인 사람들은 정균환, 박지원, 김한길, 한화갑 등 모두 다 동교동계뿐이다.
정권 초기 같으면 이들이 함께 움직일 경우 이루지 못할 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 말기이며, 특히 각종 비리 게이트 연루설 등으로 동교동계 전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이다.
또한 지난해 당쇄신파동과 DJ 총재직 사퇴 등을 거치면서 당의 권력중심이 이미 상당부분 차기 주자군 쪽으로 옮겨졌다.
게다가 민주-자민련-민국당 합당과 내각제 개헌 등은 ‘지역주의에 기초한 구시대 정치인 야합’이란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동교동계가 주도하는 합당 및 신당 창당이 과연 민주당내 동의를 얻어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합당은 DJ의 뜻’임이 확인되고, 박지원 특보를 통한 DJ의 배후조정이 있다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이러한 전망은 민주당 뿐아니라 한나라당 쪽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9일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합당 추진에 대해 “대선주자 아닌 사람들, 즉 마이너들의 구상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면서 “대선주자, 즉 메이저들과의 거래도 쉽지 않을 것이고, 신선도.폭발성.미래지향성 등 모든 면에서 답이 안 나오는 구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 역시 “지분을 나누는 합당이란 과정이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다. 따라서 일단 지방선거 연합공천 정도를 이루어 내고 나중 문제는 그후 생각하자는 정도로 봉합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 봤다.
***합당 성사되어도 득표력 제고는 미지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DJ와 동교동계가 합당 및 신당 추진을 강행한다면 ‘제 무덤 파기’가 될 것이란 분석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합당 추진이 노리는 바는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반(反)이회창연합을 구축 득표력을 높여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득표력이 올라갈 것인지는 미지수다.
지난 연초 각 언론사마다 대선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중 한 조사에서는 3김이 연합해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를 밀고 이회창 후보와 양자 대결할 경우에 대한 항목이 포함됐다. 그러나 조사 결과 두 사람간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3김연합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수도권 이인제 지지층의 이탈 때문이었다.
민주-자민련-민국당의 합당이 반드시 3김연합인 것은 아니지만 그 성격상 3김연합과 유사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현재 합당 추진파가 노리는 득표력 상승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계산이다.
“충청지역에서는 다소 플러스가 되겠지만 수도권에선 마이너스가 되어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일 것”이라고 앞서의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전문가는 잘라 말했다.
***합당 과정 이탈 생기면 ‘제 무덤 파기’ 될 수도**
더 큰 문제는 합당 과정에서 이탈세력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우선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현재까지 한화갑 고문을 제외하고 대부분 합당에 반대하고 있다. 경선 선두주자인 이인제 고문은 줄곳 중임 대통령제 소신을 밝혀 왔고, 합당 추진에도 반대론을 폈다.
노무현 캠프의 김만수 특보는 29일 “신3당합당에 대해서는 반대”라고 잘라 말했다. 한때 합당 추진에 찬성 입장으로 알려졌던 정동영 고문 역시 29일 MBC TV토론에서 합당 반대론을 분명히 했다.
김근태, 김중권, 유종근 등 나머지 주자들도 한결같이 합당과 내각제에 반대 입장이다.
이들의 입장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현재 가장 강력한 후보인 이인제 고문의 경우 그간 지속적으로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해 왔다는 점에서 ‘자민련과 민국당의 이인제 지지’를 확인한다면 오히려 합당에 적극적으로 임할 개연성도 크다.
실제로 29일 이인제 고문의 측근인 원유철 의원은 "4월 20일 전당대회 일정이 그대로 지켜질 경우 3당합당에 반대하지 않겠다"며 '조건부 찬성론'으로의 선회 가능성을 전했다. 이 고문 경선대책위원장인 김기재 고문이 중도개혁포럼 정균환 단장과 만나 신당 창당 문제를 논의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인제 고문은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전 고문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따라서 동교동계가 '이인제 대선카드'를 보장하면서 합당을 추진할 경우, 또한 한화갑 고문 역시 합당 이후의 당권을 약속받으며 합류할 경우 '대연합'이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등 이른바 개혁성향 주자들의 반발이 극심할 것이고, 집단적 이탈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자민련과 민국당 소속 의원들도 반드시 3당합당에 따라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정권교체기를 앞두고 신당에 합류하느니 오히려 무소속으로 남아 있거나 한나라당으로 가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릴 의원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합당 추진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며 “제2의 강창희가 없으란 법 있느냐. 우리가 빼 가면 ‘빼가기’라고 비난받겠지만 합당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오면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며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최소 3-4명만 이탈해서 한나라당으로 와도 한나라당은 확고한 원내 과반수를 장악하게 되고, 민주당은 더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 전체 새로운 시험대 올라**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1.29 개각과 DJP 회동으로 급진전되는 듯 보이는 신3당합당, 신당 추진 등 정계개편 움직임은 그 성사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 오히려 여권 내부 분란과 이탈이 벌어져 한나라당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공산도 크다.
다만 한 가지 동교동계와 자민련-민국당의 정계개편 추진이 한나라당의 내부 이탈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경우엔 예외다.
민주당이 내부 이탈을 단속하고, 자민련-민국당과의 합당 논의를 벌이는 한편, 한나라당내 반(反)이회창세력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지극히 적지만 그렇다고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신3당합당을 통한 신당 창당 추진이 본격화된다면 정치권 전체가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셈이다.
우선 갑자기 적극 추진 쪽으로 전열을 가다듬는 듯 보이는 동교동계의 정치력, 그리고 이에 대한 민주당내 대선주자들의 반응이 일차적 시험대에 올랐다. 동시에 자민련과 민국당 내부의 이해득실 계산도 본격 시작될 것이다. 아울러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정치력 역시 함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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