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때 아닌 ‘내각제 개헌론’이 등장하더니, 곧바로 합당론 혹은 신당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내 최대 의원모임이자 동교동계를 상징하는 중도개혁포럼은 23일 내각제 공론화를 제기한 뒤 계속해서 내각제 개헌론의 확산에 나서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민주당의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 한화갑 상임고문은 25일 내각제 선호입장을 분명히 하고 ‘자민련과의 합당을 위한 당내 추진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개헌론을 합당론으로 끌어 올렸다.
이를 두고 동교동계가 조직적인 정계개편 추진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해서 자민련뿐 아니라 민국당과 이수성 전 총리 등 각계의 저명인사들을 두루 포괄하는 신당 창당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민련은 즉각 ‘내각제 개헌론’을 환영했고, JP는 ‘내각제 신당’에 대해 “지켜보자”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민국당 역시 24일 ‘내각제도 논의해 볼 만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공식의사를 밝혔다.
***충청권 한나라당 약진이 내각제 합당론 만들어**
이러한 내각제 합당론은 충청권에서의 한나라당 약진에 따른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충청권에서는 김용환 의원과 강창희 의원이 지난 10.25 재보선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해 한나라당의 압승에 기여한 이래 많은 자민련 관계자들이 잇따라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러한 현상은 ‘이회창 대세론’에 따라 더욱 확산되어 현재 충청권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이 3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점차 한나라당의 지지가 높아지고 자민련의 지지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민련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민주당 역시 충청권에서 한나라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정이 정계개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맞물려 내각제 합당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돌발적으로 터져 나온 개헌론, 합당론**
그러나 이러한 내각제를 매개로 한 자민련과 민주당의 합당이 현 시점에서 실제로 추진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정가에서는 이번 ‘내각제 개헌론’에 대해 대부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동안 자민련의 행보로 보아 어느 정도 예견된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선후보 경선이라는 현 시점으로 보아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국민경선제라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도입하여 실험하는 상황이고 이 제도의 성공적 도입을 통해 민주당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 내에서 내각제 개헌론이라는 이슈를 조직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서는 이번 ‘내각제 개헌론’을 ‘돌발적 상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즉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에 맞서기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물밑 작업 중의 하나가 우연히 터져 나왔고, 이 돌발적 발언에 대한 여러 진영의 동조와 반응이 어우러져 큰 파장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중도개혁포럼 관계자는 “당장 하자는 것은 아니고 검토의견이지만 정치권에서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정계개편과 관련된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와 관련, 자민련 정우택 정책위의장은 “민주당 경선이 끝난 4월 20일 이후 정계개편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상당히 앞당겨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광옥 대표도 25일 “당에서 공식적으로 (합당론을)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인위적 정계개편에 반대한다”며 조속한 합당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한 대표가 속한 민주당 당권파는 자신들과 연대한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정해진 뒤에 합당을 논의하는 절차를 원한다고 한다.
내각제보다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선호하는 이인제 상임고문측도 합당은 환영하지만 내각제를 고리로 하는 합당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선 이후로 합당추진 시기를 다소 늦춘다면 지방선거에 쫓기는 자민련 측과 다소 유리한 입장에서 합당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자민련, 합당 못하면 분열될 상황**
자민련 내에서도 합당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민주당과 합당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자민련 지도부가 아닌 지방선거에 출마할 당직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어차피 참패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합당하여 공천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이들은 민주당의 경선이 끝나 지도부를 구성하기 이전에 합당하여 자신들의 지분을 챙길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민련 지도부들은 다소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민주당과의 합당에서 자민련의 지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흡수통합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선거 당시 DJP 공조와 같은 정도의 모양새를 원하지만, 당시와 비교해 자민련의 힘이 크게 취약해져 있다. 게다가 지금 합당을 추진하지 않으면 자민련 자체가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 다시 말해 떠밀려 합당에 임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
또한 자민련 내에서는 민주당이 아닌 한나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어 이들이 언제든지 한나라당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들은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이탈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자민련 정진석 대변인은 24일 “내각제 논의 진전은 환영하지만 곧바로 합당논의로 등식화되는 데에는 불쾌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자민련으로서는 민주당 뿐아니라 한나라당의 내각제 선호집단과 민국당 등 여러 집단이 합치는 형태의 신당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내의 복잡한 계파적 이해관계와 자민련 내의 상황은 내각제 합당론이 실제 추진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과 민주당의 대부분 관계자들은 의외의 시점에서 터져 나오긴 했지만 자민련과 민주당의 합당문제는 지방선거 이전에 반드시 결말을 내야할 문제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중도포럼의 내각제 공론화를 시작으로 자민련과의 합당, 민국당과 당외 세력까지를 포괄하는 신당 창당 등 대선구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계개편 전략이 본격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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