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근태 고문의 하루를 밀착 취재하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은 TV토론이었다.
각 방송국의 후보토론회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서 별도의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는 선거캠프의 의견 때문이었다. 결국 TV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24일 김 고문이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날 하루 종일 밀착 취재하기로 합의가 됐다.
23일 오후 늦게 김 고문 캠프 측에서 24일의 공식 일정표를 보내왔다. 그 일정표는 다음과 같았다.
08:00 국립 4.19 묘지 참배
10:00 대선후보 출마선언 기자회견(중앙당 기자실)
10:35 중앙당사 사무처 순회
11:20 국립현충원 참배
12:00 기자단 및 참석자 오찬
오후에는 큰 행사나 일정이 없지만 오전에는 상당히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전 8시**
정치가 김근태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아침이 밝았다.
김 고문은 4.19 묘역에 참배하는 것으로 이날 일정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자신의 지역구에 있고 자택과도 가까운 4.19묘지에 자주 들르는지 궁금했지만 직접 질문을 하지는 못했다.
***오전 10시**
출마선언 장소인 여의도 민주당 2층 기자실에는 김 고문의 ‘대권경선 공식출마선언’때문인지 각 언론사 기자들로 가득 했고 TV카메라도 여러 대가 대기중이었다.
'후보 24시'를 취재하는 덕에 함께 기자실로 걸어가며 김 고문의 표정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별다른 흥분이나 긴장감은 찾을 수 없었다. 왜 호텔 등의 큰 홀이 아닌 기자실에서 출마선언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경제도 어려운데 조촐하게 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출마선언 시간인 오전 10시가 민주당 당무회의 시간과 겹쳐 김 고문이 출마선언을 할 때 주위의 내빈석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하지만 ‘부패를 척결하고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요지의 출마연설을 하는 도중 김 고문을 지지하는 의원들과 당에 있던 의원들이 속속 참석했다.
출마선언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후보들이 각자 노력해야 할 단계지만 국민의 기대와 열망이 있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겠다’는 말로 후보간 연대 의사를 밝힌 대목, 그리고 ‘충성을 다 한다던 사람들이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임하자마자 차별화를 들고 나온다면 잘못된 태도’라고 말하며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는 여타 주자들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김 고문은 출마선언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23일 중도포럼이 제기한 내각제는 반대하며 자신의 소신은 중임제에 정·부통령제라고 밝히고, 자민련과의 합당보다는 공조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자신이 8.30 전당대회 때 쓴 ‘끔찍한 액수의 정치자금’은 일반서민이 일상에서 접하기에 큰 액수이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사진기자들의 부탁으로 만세삼창을 하는 모습을 찍을 때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해 사진기자들과 동료의원들의 코치를 받으며 3번이나 다시 포즈를 취해야 했다.
출마를 축하하러 왔던 중도포럼의 김민석 의원은 내각제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말하기 직전에 갑자기 바쁘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김 고문은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느라 꽤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김 고문 곁으로 기자들이 사진을 찍거나 질문을 하기 위해 몰려 있어서 당무회의 결과를 발표하러 온 대변인의 발표를 듣는 기자가 한명도 없는 기이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전 10시42분**
출마선언 후 김 고문은 당사 6층 정책위 의장실부터 시작해서 1층까지 부부동반으로 출마인사를 하며 사무처를 순례했다. 당직자들 뿐 아니라 안면이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들이나 경비원, 당사 1층의 전.의경들에게도 일일이 악수를 하며 출마 인사를 했다.
***오전11시32분**
국립현충원 참배는 11시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사에서 인사가 길어지면서 30분정도 행사가 지연됐다. 참배하러 올라가는 길에 곁에서 보니 김 고문의 넥타이가 경선출마를 선언할 때 매고 있던 빨간색에서 검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국립묘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선거가 있을 때나 연초에는 특히 참배객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김 고문은 자신이 30분 늦게 오는 바람에 국립묘지 의장대가 추운 날씨에 대기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의장대 위병들에게 일일이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며 내려왔다.
캠프 측 관계자는 “김 고문은 정이 많은 성격에다 군대 간 아들 생각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4.19묘역만 가면 괜한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서 두 곳을 다 참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후 12시 5분**
중소기업회관 지하에 있는 식당 경희궁에서 가진 출마기념 오찬에는 금강산관광지원과 사이버선거운동이 화제가 됐다.
김 고문은 “북한은 믿어서 교류한다는 생각보다는 교류로 믿음을 쌓아간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금강산 관광지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또한 23일 저녁 모 인터넷업체가 주최한 사이버 대선후보 간담회가 선관위 제지로 인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에 유감을 표명하고 인터넷 뱅킹을 하는 인구가 1천만 명인 상황에서 앞으로는 법률정비 등을 통해 인터넷으로 당원 가입을 하거나 선거홍보를 하는 일이 좀 더 자유롭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 지지 의원도 모으셨으니 보스가 되시는 겁니까?”라는 기자들의 농담에는 “아이, 내가 무슨 보스야 그냥 함께하는 거지”라고 응수 했다.
이날 오찬 모임에는 허인회 동대문을 지구당 위원장 등 김 고문의 재야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민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 다수 참석해서 80년대 김 고문의 활약을 이야기하며 승리를 기원했다.
김 고문은 “언제쯤 지지도가 ‘폭발’할 것으로 보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어색한 표정으로 갈비탕 그릇에 시선을 집중하고 가끔 빙긋 웃기만 했다.
***오후 1시 5분**
김 고문은 식사를 마치고 민주당사 부근 미주빌딩에 있는 자신의 선거캠프로 이동, 1시5분부터 방송되는 KBS 제1라디오 프로그램 ‘박찬숙 입니다’의 전화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의 주된 내용은 모 일간지에 김 고문이 2000년 8월30일 전당대회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듯한 뉘앙스를 주는 기사가 실린 것에 대해 사실이 아님을 해명하고, 대선에 도전하는 소감과 자신의 정치적인 비전에 관한 것으로 내용은 오전의 출마선언 연설과 흡사했다.
***오후 1시 20분**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모 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이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단순한 인사 차원은 아닌 듯 1시간 가까이 김 고문 개인집무실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캠프측은 “그냥 원외 지구당위원장 방문 정도로 써 달라”고 주문했다. 캠프 측에 따르면 이들은 김 고문에게 매우 우호적인 특정 지역의 지구당위원장들이라는 것이다.
***오후 2시 17분**
지구당 위원장들의 방문이 끝나고 잠시 여유가 생기자 김 고문은 각종 서류를 점검하고 저녁에 연설할 연설문 초안을 작성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경을 낀 김 고문 모습이 ‘재야투사’라는 이미지와 다른 온화한 모습이라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돋보기 낀 모습이라 ...”라며 수줍어 하고 극구 사양해서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오후 3시 12분**
SBS에서 기자와 촬영 팀이 직접 캠프로 와서 금연을 단행한 명사들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의 첫 인물로 김 고문을 인터뷰하러 왔다.
부인 인재근씨와 함께 10분간 하기로 한 인터뷰는 결국 4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부인 인재근씨는 김 고문이 금연을 한 후 집에서 슬픈 표정으로“아! 라이터만 남았구나”라며 탄식을 한다고 밝혀 촬영팀을 웃겼다.
김 고문은 인터뷰를 마치며 “어휴, 오늘 텔레비전 인터뷰만 3건입니다”라며 아직 인터뷰가 두건이나 더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문득 23일 저녁에 받은 빡빡하지 않은 일정표가 생각났다. 그 일정표는 대선출마선언과 관련 된 일정만 들어있던 것이었다.
***오후3시 58분**
김 고문은 내일 있을 YTN 인터뷰를 대비해서 보좌관들과 회의를 하는 중에 21일 MBC토론에서 “개인재산이 2억원 증가한 내역을 공개하라”는 패널 질문에 “2억원은 개인 재산이 아니라 후원금”이라고 해명했지만 후원금이 아니라는 반박을 받고 그 자리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머뭇거린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다는 의견이 나왔다.
캠프는 같은 날 9시 저녁뉴스에도 이 부분이 방영돼 김 고문에게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하고 MBC 측에 질문 자체가 후원금을 개인재산으로 잘못 파악한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정정 보도를 요구하기로 했다.
***오후 4시 20분**
이때가 이날 하루 중 김 고문에게 가장 평화롭게 정책연구나 연설문 초안 작성을 하는 시간으로 보였다. 상당한 집중력을 가지고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2시간 가까이 앉아 있었다.
꽤 긴 시간동안 대기상태가 계속되어 기자는 마침 캠프 사무실에 머물고 있던 부인 인재근씨에게 ‘대통령후보 김근태’가 아닌 ‘자연인 김근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인재근씨에 의해 그간 김 고문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경력 하나가 드러났다. 대학 졸업후 2년 가량 모 철강회사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회사인지 궁금했지만 인재근씨조차 "어떤 회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김 고문이 말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후 확인해 본 결과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되고, 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되는 사이인 73년경 '일신산업' 수출부에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또한 생각보다 보수적인 일면도 밝혀졌다. 평소 김 고문이 '경주 김씨 몇 대 손'임을 자주 들먹이고, 딸 이름을 지을 때도 반드시 항렬자인 '병'자를 써야 한다며 '병민'이라 지어 딸이 지금도 이름에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예쁜 여자이름을 지어 온 친척이 있었지만 그걸 마다하고 굳이 '병'자를 넣어야 한다고 고집했다는데, "아들이든 딸이든 똑같이 항렬자를 넣는 것이 남녀평등"이라는 기묘한 평등론을 주장한다고 인재근씨가 꼬집었다.
***오후 6시 31분**
집무실에서 JTV(전주방송)의 대선주자 인터뷰 촬영이 진행됐다. 지역 방송답게 지방자치와 지역문제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 “TV 촬영팀이 오면 늘 인터뷰 전에 흰 종이를 카메라로 미리 찍어보던데 왜 그러는 것이냐?”고 묻고 ‘화이트밸런스’라고 카메라의 색감을 맞추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촬영 팀으로부터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에게도 “혹시 건물 지을 때 건물 위에 설치하는 대형크레인이 어떻게 올라가고 어떻게 철거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묻고 ‘잘 모르지만 부품을 가지고 올라가서 연결하는 것으로 안다’고 대답하자 김 고문은 “언젠가 건축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걸 어떻게 올리고 내리는지 꼭 물어보자”고 말했다.
김 고문은 이 외에도 사소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있을 때면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매우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오후 7시19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 9회 후광문학상’시상식에 참석, 축사를 했다. 축사 말미에 신세대 인기가수인 G.O.D의 ‘길’ 노랫말 가사 중 한 구절을 예로 들며 끝을 맺어 눈길을 끌었다.
평소 신세대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듣는지, 아니면 축사를 위해 별도로 준비된 원고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오후 7시 54분**
강남에 있는 리베라 호텔에 도착, 김 고문이 고문으로 있는 스포츠단체인 서울스쿼시연맹의 체육단체가입을 축하하는 자축모임에 참석해서 감사패를 받고 식사를 했다.
여의도로 돌아오는 차내에서 오늘 저녁 두 행사에 어떤 인연으로 참석했는지 묻자 김 고문은 “문학상은 형님(김국태, 추계예술대학 교수)이 소설가인 인연으로 축사를 했고, 스포츠단체는 후배(우윤근 변호사)가 회장인 관계로 고문을 맡고 있다”고 답했다.
***오후 9시 10분**
마지막 일정인 KBS 11시뉴스 인터뷰를 위해 캠프로 돌아온 김 고문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좀 준비할 것이 있다고 했다.
21일 MBC 토론회 때도 촬영장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30분 가까이 혼자 토론회 준비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보좌관들에게 물어보니 김 고문은 혼자 차안에서 자료를 보거나 연설을 준비할 때가 많다고 한다. 혼자만의 장소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워 '차내 학습'을 애용하게 된 듯 했다.
***오후 10시 5분**
차안에서 혼자 인터뷰를 준비하던 김 고문은 캠프 사무실로 올라와 방송 인터뷰 내용을 최종점검하고 귀가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오후 10시 35분**
김 고문 차가 KBS에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담당기자가 올 때 까지 정문 부근에서 차에 앉은 채 3~4분간 기다려야 했다.
기자의 안내를 받아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는데 경비를 선 경찰과 경비원들이 무전기로 “VIP! VIP!"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 10시 49분**
김 고문은 보도국 전체를 돌아다니며 오전에 당사 기자실에서 했던 것처럼 기자 전원과 악수를 나누고 분장실로 들어갔다.
분장을 마치고 나와서 문화부의 당직 기자들에게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문득 저녁 때 김 고문이 물어보던 ‘대형크레인’이 떠올랐다.
***11시 12분**
11시 뉴스 인터뷰를 하는 김 고문을 보며 KBS 기자들은 “앞으로 인터뷰나 토론에서는 몸을 좀 더 카메라 쪽으로 틀어야 겠다”거나 “‘네, 그렇습니다’는 말로 대답을 시작하는 것은 질문자의 질문을 부드럽게 무시하고 자기가 할 말을 답할 때 쓰는 표현인데 김 고문이 그런 기술을 벌써 터득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11시 30분**
귀가길에 오른 김 고문은 유인물이나 서적을 보지 않고 창밖을 응시했다. 오늘 하루중 차 안에서 뭔가 읽지 않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틈을 타서 대통령선거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자연인으로서 어떤 결심인지 물어 보았다. 김 고문은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 ‘주목 받고 싶어서 출마를 한다’고 농담한 것이 그대로 실려 고생했다”고 웃으며 “어렵게 일을 준비하고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했다”고 답했다.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는 김 고문 차에서 내렸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맞은 편 가로수에 ‘김근태 고문 대통령 경선 출마’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김 고문이 오늘 치른 공식 행사만 11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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