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이전협상 논란과 관련, 지난달 25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개악’ 논란에 불을지핀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협상팀은 최선을 다했다”는 외교통상부 김수권 북미3과장의 반론에 대해 11일 재반론을 보내왔다.
최 의원은 글에서 ▲용산기지이전 협상과 GPR(미군재배치전략)의 연계성 ▲합의서 내용상의 문제 ▲합의의 위헌성 ▲법리상의 문제 등을 들어 김 과장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비장한 각오가 협상의 전략전술이 될 수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다음은 최 의원의 재반론 전문이다. 편집자
***‘비장한 각오’가 협상에서 전략과 전술이 될 수 있는지요**
저는 북미3과장 ‘개인 명의’를 빌은 외교통상부의 반론문을 읽으면서 두 가지 느낌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국회의원의 지적에 대해 관련 부처 실무자가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한 사실 자체가 우리 참여정부의 한층 높아진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 사항의 비밀체계를 이용하여 직무상의 잘못을 얼버무리려는 시도가 아직 남아 있다는 서글픔이었습니다.
외교통상부의 반론에 따르면 ‘어느 나라도 안보ㆍ군사와 관련된 협상과정을 낱낱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협상팀은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작년 내내 협상 내용이 개선되었다고 언론보도와 브리핑을 통해 수차례 설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물론, 아주 중요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불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의혹조차 해소하지 못 했다는 데 있습니다. 더구나 그 의혹들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협상팀은 타결 직전에 있던 협상을 연장하면서까지 내용을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문장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하였던 게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협상팀은 미국측이 회의 때마다 입장을 번복하고 새로운 요구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협상이 깨졌다고 말해왔습니다.
저간의 과정이 이러했는데도 지금에서 ‘(당시의) 비장했던 각오를 믿어주세요’라고 말하면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협상의 원칙, 전략과 전술의 올바른 적용에 대한 저의 물음에 ‘비장한 각오’를 말씀하시는 것은 동떨어진 답변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물어보고 싶은 겁니다. 외교통상부의 협상팀은 이번 협상결과가 90년의 양해각서와 합의각서보다 개선되었다고 진실로 여기시는지요? 또한 그 과정과 결과를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설명하였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지면 관계상 저는 이 글에서 반론문에 언급된 지엽적인 사안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지는 않으렵니다. 오늘 있을 대정부 질문과 국회 비준 동의안 심의를 통해 조목조목 밝히는 게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헌법적 권한과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일이며 ‘외교ㆍ안보상의 기밀’과 국익에 보탬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외교통상부의 반론 중에서 주요 쟁점 부분을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용산기지이전이 부시 행정부가 전세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주둔 미군의 재조정과 관련된 사안인지의 여부입니다. 즉 GPR(Global Posture Review)과의 연계성에 관한 것이지요. 외교통상부는 주한미군재조정이 북한의 무력도발 억지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기존의 기능을 보다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그 배치와 구성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측은 본격적으로 협상이 시작되었던 작년 초부터 GPR을 용산기지이전과 당연히 연계시켰습니다. 다만 미국측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따른 ‘임무와 기능’의 이전에 대한 비용을 한국측이 부담하는 게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 예상되는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다가 금년 초 FOTA 7차 협상을 계기로 미국측은 용산기지이전이 GPR과 연계된 사안임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이 한미동맹 강화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공표하기를 원했던 미국측의 입장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협상팀은 아직도 GPR과의 연계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국익을 대변하려는 미국측의 협상전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부적으로는 미국측과 충분히 양해했으면서도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 하고 애매모호한 외교적 수사로 문제의 핵심을 가리려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측과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한 각오’를 내세우며 우리 국민들과 협상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한미군재조정 문제는 중장기적인 큰 틀에서 ‘신속기동군’으로의 변환에 따른 미국측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명백한 만큼 협상과정에서 이를 레버리지(leverage)로 십분 활용해야했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주한미군재편이 완성될 때까지는 대북한 억지력으로서의 정치적․상징적 의미가 있다하더라도 말입니다. 그게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협상팀은 미국측의 이러한 의도가 명백한 데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대한민국의 방위에 있다는 데 한미 간 이견이 없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측의 입장을 대부분 수용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런 게 참여정부의 외교 원칙인 PUBLIC DIPLOMACY란 것인지요?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합의서의 내용입니다.
외교통상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도 1쪽 남짓한 분량으로 되어 있으므로 용산기지이전협정도 10쪽 정도(국회비준동의를 받는 포괄협정은 5~6쪽 정도)면 충분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용산기지이전 협정의 기본 성격에 대해 외교통상부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용산기지이전 협정은 한미동맹 관계의 새로운 위상을 규정한다는 의미 외에도 비용부담의 주체와 부담의 정도까지 규정하는 ‘처분적 성격의 조약’입니다. 따라서 문안 하나까지 따지고 법률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신중하게 작성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구체적 내용을 가능한 한 협정의 불가분의 일부를 구성하는 부속서 형식으로라도 첨부하는 것이 합리적인 관행입니다.
그런데, 우리측의 부담 내용과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목적으로 일부에서 정당하게 제기하는 주장에 대해 외교통상부의 반론은 억지스럽습니다. 헌법이나 법률을 제정할 때처럼 모든 세부적인 이행절차를 모두 포함시키라는 말이냐는 반론은 합의서에 이전 원칙만을 최소한으로 간략하게 정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과 결과를 보면 우리 협상팀은 처음부터 합의서에 구체적 내용을 명시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우리측이 먼저 이전을 요청한만큼 시설과 부지의 제공은 물론, 기지이전 비용을 전담하여야 한다는 대원칙에 먼저 합의하지 않았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교통상부의 협상전문가들이 협상의 관행도 모른 채 협상에 임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기지이전 비용의 전담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미국측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새로운 요구사항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우리측 부담이 90년 합의각서 때보다 더욱 가중되었다는 점입니다. ‘엄청난’ 또는 ‘천문학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근거하여 비용부담의 한계가 개략적으로라도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측이 우리의 통제범위를 넘어서서 부담이 고무출처럼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입니다.(2004년 7월 GAO 보고서 참조)
세 번째는 위헌성의 문제입니다.
SOFA 합동위가 국회의 권능을 사실상 대체할 수 있도록 기지이전협상이 구성되어 있는 것은 90년 각서와 마찬가지로 위헌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비용부담을 전제로 하는 처분적조약의 성격상 최대한 상세히 부담 내용과 범위를 규정하지도 않은 채 구체적 절차, 용어 및 조건 등의 의미를 하부기관인 SOFA 합동위에 위임하는 것에 대해 위헌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용산기지협정을 구성하는 포괄협정(UA)과 이행합의서(IA)는 SOFA의 합동위원회에서 작성하는 합의권고문(AGREED RECOMMENDATION) 형식으로서 미국측에서는 의회에 등록, 보고만 해도 되는 즉, 상원의 비준을 필요로 하는 조약(TREATY)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측과는 달리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정부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의 주체인 만큼 국회의 비준 동의를 당연히 필요로 하고 그 협정의 내용이 개정되었을 때 국회의 새로운 비준 동의를 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용산기지협정에 우리측 비용전담이라는 대원칙을 전제로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나열해 놓고 우리에게 실질적인 부담이 되는 핵심 내용을 SOFA 합동위원회에 위임해 버리면 국회의 통제범위를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당연히 외부에서는 그 내용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교통상부는 우리의 법체계에 따라 정식 조약으로 체결된 용산기지이전 협정이 SOFA의 합의권고문 형식으로 수정, 변칙 처리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일방적으로 미국측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SOFA를 국제조약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법체계를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다만,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법체계를 중시하는 만큼 헌법에 규정된 우리의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네 번째는 법리상의 문제입니다.
90년 합의서를 양측 대표가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하였고 그 즉시 용산기지이전에 관한 권리의무가 창설되었다는 외교통상부의 주장은 법리상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미국측은 91년의 SOFA 합동위 결정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으며 발효시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SOFA 합의권고문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환경권을 신설하였다고 외교통상부가 주장하는 근거 역시 SOFA 문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SOFA 문서는 우리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정부차원의 법적기속력이 없는 상태이므로 국가 차원의 권리, 의무 관계를 창설할 수 없습니다. 외교통상부는 마치 이번 협정이 타결되면 연도별로 국회의 예산 승인 배정을 받아 예산의 가용범위 내에서 지출 가능한 것처럼 설명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협정이 타결되면 그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생하게 되어 그 조약을 근거로 우리는 한계도 설정되지 않는 무한대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결국 비용부담을 요청하는 미국측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측은 우리의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비용을 청구하겠지만 법리적으로는 백지수표를 위임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90년 합의각서는 근본적으로 대체시설(Replacement Facilities)의 제공을 전제로 하였으나 새로 합의된 협정 문안은 ‘임무와 기능’에 따른 시설 제공의 확대 가능성 때문에 우리측의 추가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한 가지 들겠습니다.
병원 시설의 경우, 외교통상부의 주장 대로 평택에 기존 시설이 있으므로 새로운 시설을 지어 주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한미군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새로운 첨단시설을 갖춘 병원 시설 건설의 요청이 있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뚜렷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저 미국측의 선의와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제가 법리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이처럼 향후 한미 간에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도 좋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일본의 경우야말로 조약 형태가 아닌 매 회계연도마다 SACO에 근거한 사업계획승인서를 제출하고 건별로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외교통상부의 반론에서 마지막으로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논의와 토론에 있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에 관한 것입니다.
협상과 마찬가지로 토론도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상대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합목적적인 논거를 내걸지 않으면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북미3과장 ‘개인 명의’를 빌은 외교통상부의 반론문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저는 참으로 당혹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저는 몇 번을 되풀이 읽었습니다만, 제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은 저에게 “당신은 친미주의자입니까, 아니면 반미주의자입니까?”라고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껏 토론한 핵심 쟁점과는 상관없이, 앞뒤 가림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이념적 성향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올바른 토론 자세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라도‘친미주의자라면 협상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며 반미주의자라면 아예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단정하고 나서 던진 질문은 아니시겠지요? 국가의 외교 정책을 실현하는 정부 부처 실무책임자의 판단기준이 친미냐 반미냐를 경계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협상에 임한 외교통상부의 ‘비장한 각오’는 존중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권리와 의무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제기한 문제는 그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협상의 내용과 절차였습니다. 또한 국회의 비준과 동의를 얻어야 하는 협상 내용을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헌법적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이게 어떻게 ‘한미동맹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까?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질문은 저를 선출해준 국민들께서 저에게 물어야 할 내용이지 정부부처의 실무책임자가 국회의원을 상대로 물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씀 더 드려야겠습니다. 우정이란, 서로를 배려하고 눈물젖은 빵을 나눌 때 싹트고 굳건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구애나 강요로 유지되는 우정도 있을까요? 한쪽의 이익을 위해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우정을 빙자한 지배에 다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런 식으로 우정을 폄훼하거나 훼손한 적이 없었습니다. 북미3과장님의 우정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토론과 마찬가지로 협상도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도와 속내를 간파하지 못한 협상은 일방적인 ‘덤터기 쓰기’에 불과합니다. 외람합니다만 프랑수아 드 칼리에르의 저작인 ‘어느 원로대신의 협상에 관한 충고’라는 책을 일독하시길 권하면서 제법 긴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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