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자이신가요?"
지난달 22일 노무현 대통령 러시아 방문 수행 기자단들이 머물던 모스크바 한 호텔 2층 프레스 센터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던 기자를 세 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붙잡았다. 이들은 자신들을 모스크바대 박사과정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꼭 할 얘기가 있다"며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형 성매매 업소, 모스크바에만 9개 이상"**
"지난 97년 처음 한인들을 대상으로한 유흥주점(가라오케)이 모스크바에 생기기 시작한 이래로 한국 기업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경쟁적으로 생겨 현재 9개 이상의 성매매 업소가 성업 중이다. 그 중에는 아예 대기업 이사가 비밀리에 하는 업소도 있다고 한다. 러시아 마피아에게 명의를 빌려, 실제로는 한국인이 영업하는 이런 업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 여행사, 식당 등과 결탁, 대규모 성매매를 알선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우리들이 폭로하기 전까지는 업소 안에 쪽방, 안가, 사우나를 설치해 즉석에서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외국인(한국인)이 현지인의 명의를 빌려 자국인을 상대로 퇴폐 업소를 운영하는 나라는 러시아에서 한국 밖에 없다."
이들은 러시아 내 불법 한인 성매매 업소 추방 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임인 '러시아.여성.인권'(러여인, http://cafe.daum.net/rushuman) 회원들이었다. 이날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이 있던 모스크바대 본관 앞에서 한인 성매매 업소 실태를 알리는 전단지를 배포하다 러시아 경찰들에게 쫓겨나,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기자들이 머물고 있다는 호텔로 찾아왔다고 했다.
자신들을 몰아내려는 경찰들에게 "교민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 뿐"이라고 사정을 얘기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들은 또 현장에 나와 있던 주러 한국대사관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한 러시아 경찰은 "너희 대사관 직원들이 우리에게 너희들을 쫓아내라고 시켰다"고 자초지정을 밝혔으며, 대사관 직원들이 "대통령께서 이런 것을 보면 안된다"며 배포된 전단지를 모두 회수해갔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기자는 이들을 지난달 22일 1차로 인터뷰하고 이메일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추가로 한인 성매매 업소 실태를 취재했다.
한국형 성매매 업소는 모스크바, 뻬쩨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톡, 사할린 등 러시아 전역 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즈기스탄 등 인근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등 한국인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있다고 한다.
이들 업소는 아파트 지하, 호텔 내부 등을 개조해 간판도 없이 은밀하게 영업을 하고 있으며, 주 고객은 현지 지상사 직원, 공관 직원, 한국 관광객 등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아예 섹스 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다.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인들 중 일부는 한국에서부터 윤락업소를 운영하다가 러시아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의 전반적인 경제 침체로 해외에서 사업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로 오는 이들 중에 노골적으로 성매매 사업을 문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욱 한국에서 '성매매 특별법' 시행으로 성 산업이 다소 위기를 맞은 가운데 주변 해외 국가로 업주들이 몰려 올 수 있다."
러여인 회원 A씨(모스크바대 정치학 박사과정)는 러시아에서 한인 업소가 증가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우즈베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서 여성 데려와 성매매 강요"**
한국의 '룸살롱'과 유사한 이들 업소에서는 보통 술과 안주, 여성들의 접대 비용을 포함해 1인당 약 2백불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이중 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25불. 업소 밖으로 '2차'를 나갈 경우 2시간에 1백불, 아침까지는 1백50불을 받는다. 이 돈은 업주와 여성들이 반반씩 나눠갖는다. 여성들은 기본 월급 없이 자신들이 일한 만큼 수당을 받는다.
한국과의 차이점은 2차를 나가는 것이 한국에서는 여성들의 선택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손님이 원하는데 거부할 경우 1백불의 벌금이 부과된다. (러시아 여성들의 평균 임금은 월 1백50불 수준이다.) 이들 업소를 찾는 거의 대부분이 남성들이 2차를 원하므로, 여성들에겐 강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쪽방, 성매매를 위해 침대까지 설치된 사우나 등을 통한 퇴폐적인 성매매 행위로 러시아 여성들이 한인 업소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하자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여성들을 들여오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브로커 등을 통해 여성들을 모집, 데려오는 과정 자체가 불법 이주로 국제적 범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 업소당 40-50명의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중 러시아 국적을 가진 경우는 10%도 안된다고 한다.
외국인의 절대 다수가 우즈베키스탄 여성(90% 가량)인데, 러시아보다 훨씬 전에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가라오케가 생겨 잘 알려진 탓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매매춘을 엄격하게 금해, 손님 옆에서 술시중을 드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처음에 여성들에게 이런 일을 하게 된다고 속이고 러시아로 데려온다는 것이다. 러시아로 들어오면서 비행기 값, 초청비, 숙식비, 소개비 등 8백불 이상의 빚을 지게 한 뒤 여성들이 성매매를 거부할 경우 이 돈을 빠른 시일 내에 갚으라고 종용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선택한 여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 중에는 미성년자들도 있고, 마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업소를 찾은 한국 남성들은 한국에서 하듯 온갖 '추태'를 부리며 여성 종업원들을 학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특히나 한국에 비해 가격이 싼 데다, 한국 남성들이 갖고 있는 백인 여성들에 대한 '성적 환타지'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는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이다.
***대사관 "외교마찰 생길 수 있다"며 '냉담'**
"내 자신이 한국에서 오는 교수 등과 몇 차례 가봤다. 한국에서 의도적으로 피해왔던 곳을 부득이하게 가게 됐는데, 그곳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젊고 러시아어가 가능한 나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얘기하면서 한국인 남성들에 대한 극단적인 적개심을 표시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미 굳어질대로 굳어진 한국 남성 사회의 성문화에 대해 어느정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조차 온갖 추태를 부리는 한국인의 모습은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지난 5월 러여인 발족을 주도한 A씨의 말이다. 러여인은 현재 15명 정도가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수는 90여명이 이른다.
러여인은 지난 6월 한민족 대회, 7월 모스크바 아까제미체스까야 지하철역 근처에 위치한 장로교회 앞에서 전단지와 뱃지를 배포하는 등 현지 교민들을 상대로 한인 업소 실태를 알리는 일을 해왔다. 기자를 만난 9월 22일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이 있던 모스크바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또 외교통상부와 청와대 등에 민원을 제출해 성매매 업소 근절 대책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불법 성매매 업소를 상대로한 이들의 싸움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러시아 마피아를 등에 업은 업주들은 "다리를 잘라버리겠다"는 등 노골적인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A씨 뿐만 아니라 기자가 만난 B씨(모스크바대 문학 박사과정),C씨(모스크바 대 사회학 박사과정) 등도 업주들에게 협박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발 벗고 나서줄 것으로 기대했던 주러 대사관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러여인 측은 주장했다.
주러 한국대사관 영사과는 지난 6월 청와대 민원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와 "한인 유흥업소가 성매매를 알선하고 여종업원의 인권을 경시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대사관 직원들에게는 유흥업소 출입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대사관 측은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권고 조치를 취해, 업소 내 쪽방 등이 제거되는 등 접대부에 대한 인권 유린 행위가 상당 부분 개선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여인 측은 "쪽방 이외에 한인 호텔에 방을 임대하거나 침대가 설치된 사우나 등에서 불법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았다"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은 발을 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러여인 측은 주장했다.
지난 7월 23일 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사관 측은 "한국인들이 운영하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하더라도 형식상 러시아인(마피아)의 명의로 되어있어 잘못했다가는 러시아측과 외교 마찰이 생길 수 있다"며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게다가 대사관 관계자는 러여인 회원들에게 이들의 활동이 "러시아 정부에 의해 정치 활동으로 규정돼 추방 혹은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할 수 있다"며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경우 대사관은 보호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모스크바 한인회 회장은 러여인과의 면담에서 "기왕 없어지지 않을 성매매라면 안전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것을 목적으로 오는 관광객, 출장객, 그리고 성매매 업소를 찾는 교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성매매 업소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고 B씨가 전했다. 한인회 회장은 또 "성매매를 하기 위해 드는 그 많은 외화를 왜 러시아 인들에게 주느냐"며 "그 돈을 차라리 한국사람들이 벌어 들이는게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 인권단체에서도 관심**
러여인은 한반도 주변 4강국 중 하나인 러시아에서 고려인이 그간 쌓아놓은 한국에 대한 성실한 이미지가 이런 일로 실추되는 것을 걱정한다.
지난 6월에는 러시아 공영방송(채널 러시아)에서 이같은 한인 성매매 업소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최근에는 러시아 최대 인권 단체인 메모리알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명해 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들은 프랑스를 예로 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의사, 법조인, 관광 전문가, 민간 단체 관계자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은 지난 9월 해외에서 자국인의 섹스 관광과 어린이 '성 착취'가 성행하고 있다며 국가간 협정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브라질, 캄보디아 등 프랑스인들의 섹스 관광이 잦은 국가들과 쌍무협정을 맺어 미성년자를 포함한 섹스 범죄를 퇴치하기 위한 형사.사법 공조의 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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