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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방송'이길 포기한 종편, 또 기회 줘야 하나"

[종편 생존 전략 ⑥ ·끝] 종편 재승인 심사 전망은?

종합편성 채널(이하 종편)이 탄생한 지 어느덧 두 해가 지나가고 있다. 길지 않은 종편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영광스럽다기보단 그렇지 않은 장면이 더 많았다. 탄생 과정부터 불법 특혜 의혹으로 얼룩졌고, 개국 이후 한동안은 기술적 이유 등으로 '수준 미달 방송'이라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기술적 한계 등이 보완이 되고 나선 선정성 논란에 시달렸다.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자극적인 보도와 발언을 내보냈지만 애석하게도 괄목할만한 시청률은 나오지 않았다. 혹자는 이런 종편을 '귀태(鬼胎)', 즉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방송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종편은 이미 탄생했다. 시청률이 낮다고 하지만 고정 시청층이 생겼고, 설령 부정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이 나오고 있다. 이미 힘을 가진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태어나기 전으로 되돌릴 순 없지만, 생명 연장을 멈출 방법은 있다. 단 하나, 재승인 심사다. 바로 내년 3월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이미 재승인 심사 기준안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심사만 남겨놓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 주도의 위원회 시스템 하에서 재승인 심사 결과는 지난번 첫 심사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워낙 종편들이 심사 기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많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공재 포기… 모회사 따라 여론몰이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전체회의에서 '2014년도 종합편성·보도전문 방송 채널사용사업자 재승인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심사 항목은 다음과 같다. 방송평가위원회의 방송평가(350점),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230점),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160), 재정 및 기술적 능력(80점) 등이다. 총점은 1000점으로, 방통위는 지상파와 마찬가지로 650점 미만 사업자에 대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의결할 수 있다.

다만, 공정성과 콘텐츠 편성 항목 배점에서 50%에 미달하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받게 된다. 이 항목은 비계량 평가로 향후 심사위원회가 얼마나 공정하게 꾸려지는지 운영이 투명하게 이뤄지는지 여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또 최근 종편의 공정성 논란 및 획일적인 콘텐츠 편성의 문제점을 고려해 별도의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핵심항목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과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항목에서 배점의 50%에 미치지 못 하면 총점과 상관없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의결할 수 있게 했다.

▲ 종합편성채널 로고들

심사 항목이 많고, 채점 방식도 복잡하다. 그러나 결국 핵심은 종편이 방송으로서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방송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 운영되는 사업으로 공공재 성격이 짙다. 때문에 신문과 달리 공공성·공익성이 강하게 요구된다. 재승인 심사 기준안에서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 부문이 핵심항목으로 선정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부가 종편 출범의 취지로 앞세웠던 '여론의 다양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일단 종편이 사회 공공재 역할을 수행했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이희완 사무처장은 종편의 가장 큰 문제에 대해 공공재 성격을 포기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사무처장은 "지난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보도라든지,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와 관련한 보도, 최근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보도에서 보여준 행태를 봤을 때,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과 전혀 관련 없는 선정적 방송 행태를 보여서 결국 여론을 호도해 전면적으로 나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권에 유리한 이슈들을 계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사회를 보수화시키려고 하는 첨병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교수도 종편 출범 이후 큰 변화에 대해 "우리나라 50대 이상 보수층의 정치적 보수성이 더 두꺼워졌다"고 짚었다. 심 교수는 "종편의 뉴스나 토크쇼를 통해 보수적인 목소리들이 전달되면서 정치적 보수층은 자신들의 생각을 재확인하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데 탄력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던 세대 간, 이념 간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의 목소리는 방송매체를 통해 강화되는 데 반해, 진보의 목소리는 인터넷 방송 등 대안적 공간으로 이동한 것도 한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여론 다양성을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쏠림 현상을 조장해 공공성을 해친 배경에는, 종편 대부분의 최대 주주로 보수 신문사가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사무처장은 "최근 언론 단체가 함께 3차례에 걸쳐 내보낸 자료를 보면, 신문사와 방송사 간 긴밀한 유착관계가 유지되고 있고, 보수 신문을 이끌었던 이들이 결국 방송에서도 결정권을 갖고 있다"며 "애초에 종편 방송이 나올 수 있었던 건, 그 보수 신문사들이 언론 악법을 통과시켜주는 길을 터줬기 때문에 방송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공개한 종편4사 비밀TF 회의록에 따르면, 종편 4사는 각 사의 팀장급이 참석해 지난 5월 2차례 회의를 가졌다. 회의록에는 각 종편의 경영진이 종편4사 공조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있으며, "최종 의사결정은 발행편집인총괄 모임에서 결정"한다는 대목이 등장했다.

▲ 시민단체의 종편 심사 자료 분석이 3차에 이르면서 종편 심사 과정의 문제점들이 무더기로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5일 종편 승인심사 검증 태스크포스 2차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종합편성 채널' 이름 값 못한 부실 방송"

또 하나의 핵심 항목인 '콘텐츠 편성' 부문에서도, 종편이 말 그대로 '종합편성 채널'이었는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드는 보도,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편중하면서 프로그램 다양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민언련에서 종편 감시 역할을 맡은 유민지 활동가는 "TV조선과 채널A는 종합편성 채널이라고 볼 수 없는 형태의 구성으로 돼 있다. 예능과 보도, 드라마,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방통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종편사들은 방송 첫해 동안 방송시간의 절반 이상을 재방송으로 채웠고, 편성의 30~50%를 보도 프로그램으로 메운 것으로 밝혀졌다. 보도채널이었던 MBN은 방통위에 제출한 사업계획에선 보도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을 22.7%로 적어냈으나 실제로는 편성의 절반이 넘는 51.5%를 보도에 할애했다. TV조선과 채널A도 보도 프로그램 편성비율을 각각 24.8%, 23.6%로 적어냈지만 실제 35.9%, 34.1%를 보도로 채웠다. 방통위는 이에 따라 각 종편사들에 대해 '승인신청 당시의 사업계획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제작, 편성 부문에선 JTBC의 노력을 높게 샀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JTBC는 타 종편에 비해 오락 부문에 치중했었고, 편성 주 타겟을 나이 든 시청자 층으로 잡지 않았다. 오락 강화를 하면서도 젊은 층에 맞춰져 있었다"며 "그런데 콘텐츠에 투자하면서도 시청률은 나오지 않아 종편 4사 중에 손실액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JTBC는 최소한 편성 면에선 '종편'의 의미에 가까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다른 종편들도 JTBC처럼 편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편은 대자본을 투입한 콘텐츠를 내놨으나, 대부분의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JTBC의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 ⓒJTBC 제공

재정 능력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종편의 출범으로 '방송시장 규모는 1조6000억 원, 생산유발효과는 2조9000억 원, 취업유발효과는 2만1000명 늘어난다'던 정부 호언과는 달리, 대다수 종편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적자를 안고 있는 상태서 손해액이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 콘텐츠 투자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지난 7월 방통위가 공개한 종편 4사들의 재무 현황에 따르면. JTBC가 1326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채널A가 619억 원 손실, TV조선이 553억 원 손실, MBN이 256억 원 손실을 기록했다. 종편 4사의 손실 합계액은 2754억 원에 달한다. 종편에 대한 정부 투자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종편의 적자 경영은 미디어 환경 전체에도 큰 영향을 준다. 특히 광고 시장을 황폐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원칙대로라면 종편이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에 맞게 광고비도 적게 책정돼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종편 개국 당시 종편은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광고주들에게 지상파의 70% 수준의 광고단가를 요구했다. 채널에이는 아예 공개적으로 '보도프로그램 광고상품 패키지'라는 대기업 대상 광고 영업 프로그램을 홍보하기도 했다. "뉴스 등 보도상품을 묶은 패키지를 구매하면 30분짜리 광고주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작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종편은 출범 초반 KT 그룹으로부터 각각 20억씩을 받았고, JTBC와 채널A는 현대 그룹으로부터 현대상선 15억 원, 현대증권 11억2500만 원 등 어마어마한 금액을 얻어냈다.

종편들은 최근에도 부족한 자본금을 채우기 위해 모회사인 보수 신문사의 영향력을 앞세워 대기업을 압박하고, 대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광고를 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고가의 광고 단가를 요구하고, 대신 광고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최대한 대기업의 자본력을 흡수한다는 뒷말도 나온다.

이 사무처장은 종편의 재무 상황이 좀 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편들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건 지표상으로 나오고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어려움을 겪는지 정보가 거의 드러나고 있지 않다"며 "직접 영업을 하면서 얼마나 불법적인 일을 했는지 소문들만 있고 증거는 안 나오는 상황이다. 그만큼 광고주들이 괴로움이 많을 텐데 '조중동 방송'을 정권이 봐주는 상황이니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종편들이 그렇게 곤경에 처해있지 않을 수 있다. 저마다 '힘들다'고 하는 건 그만큼의 특혜를 달라는 요구, 즉 생존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상파 재허가 때와는 여론 달라… 심사 제대로 해야"

방통위가 제시한 안에만 비춰봐도 종편이 재승인을 받기에 부적격이란 의견이 많다. 한 언론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방송이기를 포기한 방송들이다. 이번 재승인에서 통과하면 그렇지 않아도 방종을 일삼던 그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문제들에도 내년 재승인 심사에서 실제로 탈락하는 곳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정부 기관인 방통위가 재승인을 탈락시키는 위험부담이 높은 선택을 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것. 방통위가 이번에 확정한 심사기준안이 연구반에서 기존에 제시했던 안보다 다소 후퇴한 것도 그 방증이라는 설명이다. 당초 연구반은 공정성과 편성 등 두 항목의 과락 기준을 60%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방통위 사무처가 이를 40%로 낮추자고 주장했고, 결국 50%로 절충한 안이 최종 확정됐다.

방통위 재허가 심사안 연구반에 참여한 한 교수는 "상당 부분이 결국 심사위원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달려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확정된 안 자체에는 '재승인 거부'도 포함돼있다. 심사위원들이 당시 판단할 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다면 재승인 거부까지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종편 재승인 심사 관련해선 심사위원 구성에 눈과 귀가 쏠릴 예정이다. 방통위는 내년 1월중 심사위원회를 심사위원장 1인과 방송, 법률, 경영·회계 등 전문 분야별 심사위원 14인으로 구성하고 2월 중 재승인 여부를 의결할 예정이다.

추 사무총장은 "지상파도 종편인데, 지상파 재허가 땐 이렇게까지 심사를 잘 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며, "재승인 심사에 대한 요구가 강한 건, 첫 심사 당시 제대로 된 방송 사업에 어울리는 자본, 방송 능력 등에 대한 검증이 없었고, 종편이 나왔을 때 전체 방송 환경이 괜찮는가 하는 사전적인 연구나 검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첫 심사 때의 공백을 제대로 살펴보라는 것이고, 현재 나온 재승인심사 기준안을 두고서도 말이 많지만 최소한 그 기준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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