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국전력이 주민들의 반대로 8개월간 중단됐던 밀양 765킬로볼트(kv)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을 때다. 부북면 평밭 마을 입구에 차려진 움막을 종일 지키고 있던 70대 주민에게 저렇게 물었다. 그는, 초고압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국제암연구소가 발표했는데 불안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근 10년 동안 매일 같이 송전탑 반대를 외쳐온 마을 주민들이, 평생 송전탑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은 기자보다야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터다. 그런데도 마치 5살 어린이에게 말하듯이 '몸에 나쁜 게'라니. '더럽다'는 말도 이해 못 할 새라 '그거 지지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시골에 사는 노인이 '전자파'란 단어를 알아들을 리 없다는 전제가 깔린 화법이었다. 딴에는 친절한 화법이랍시고 구사했지만 친절과 경시(輕視)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 2일 오전, 단장면 고례리의 89번 공사현장에서 한 주민이 쇠사슬을 목에 묶은 채 농성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경남지방경찰청이 발표했듯이 송전탑 경과지 지역 반대 주민의 상당수가 70~80대 고령이다. 또 대부분 농민이다. 그래서일까. 밀양 송전탑 사태와 관련해 유난히 외부 세력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높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3호기가 생산하는 전력을 수송하기 위해 계획됐다. 전기를 많이 쓰는 도시로 송전하기 위한 국책 사업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책 사업이 추진될 때, 때때로 개인의 생존권은 장애물로 치부된다. 너만 참으면 모두 편해진다는 말만큼 위압적인 언사가 없다. 생존권을 수호하려는 노력이 이기심과 동의어가 될 때 개인은 그야말로 일개 개인으로 전락한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2등 국민이라는 무력감은 엄청나다. 이때 터져 나오는 분노를 외부 세력이 조종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만약 그러한 조종이 가능하다면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밀양 주민들은 평생 일군 재산을 다 뺏기고 달랑 (최대) 400만 원의 보상금을 손에 쥐고도 그저 흡족한 사람들이다. 왜? 시골의 나이 많은 농부이기 때문에. 그토록 무소유의 정신을 발휘하는 밀양 주민들을 외부 세력이 분노하라고 부추겨 밀양의 작은 마을들이 아비규환이 됐다. 세뇌의 결과 밀양 주민들은 10년의 세월을 산길에서 구르며 맨 주먹으로 경찰과 한전 직원에게 저항했다. 그러다가 갑상샘 수술을 받은 환자가 죽겠다며 약도 거부한 채 단식하는 최근의 사태에 이르렀다.
밀양 주민을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지 않은 인간 개체로 볼 때만 가능한 추론이다. 4일 <동아일보>의 기사에서 이러한 시각이 잘 드러난다. 신문은 "'원정 시위대' 속속 집결… 밀양, 제2의 강정마을 되나"라는 기사를 통해 밀양에 정치인, 종교 단체, 시민 단체, 환경 운동가 등이 다녀갔다고 공격했다.
기자도 지난 1~2일 양일간 밀양에 다녀왔다. 신문이 지적한 문제의 단장면 미촌리 건설 4공구 현장 앞 움막도 들렀다. 기사대로, 정의당 김제남·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다녀갔다. 어쩌란 말인가? 국책 사업으로 국민이 목을 매 죽겠다고 하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 한 명이 없다면 그것이 더 문제다. 심지어 고 이치우 씨의 분신자살로, 밀양은 언제나 또 다른 자살 사태를 우려해야 하는 현장이 되지 않았나. 종교인들도 왔다. 2일 당시 수녀님 대여섯 분이 움막 앞에서 주민들에게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시민 단체와 환경 운동가들도 있었다. 기자들에게, 전력제어계측 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으로 가동이 연기된 신고리 3호기가 부품성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2017년에야 가동할 수 있다고 했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토록 공사를 서둘러 강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지방에 원전과 송전탑을 지어 도시로 송전하는 시스템을 바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양 주민들의 주장과 같다. 밀양 주민과 시민단체·환경 운동가의 주장이 같으면, 이는 밀양 주민이 세뇌된 결과인가?
밀양 주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부의 보상안에 반대하고 송전탑 공사 자체를 거부하는 주민이 전체 3476명 중 63%(2207명·'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조사)이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이 많은 사람을 무지한 사람으로 폄하하는지 의문이다.
기계 상 오류로 버스에서 교통카드가 두 번 찍혀도 성을 내는 게 사람이다. 고작 1000원 돈이 더 나갔다고 기사에게 툴툴댄다. 고 이치우 씨 삼형제가 평생을 바쳐 일군 땅의 시가는 약 6억9000만 원이었다. 송전탑 건설이 계획된 이후 한전은 보상금으로 8700만 원을 제시했다. 그래서 분노했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다 밀양 송전탑 건설 계획의 허점을 알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수차례 밀양과 서울을 오가며 공청회와 토론회에 참석했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밀양 시내에 산다는 50대 택시 운전기사는 기자에게 "밀양 사람들이 다 농민이라 똑똑하지 못한데 저렇게 반대하는 걸로 봐선, 외부 세력한테 조종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 한전 그리고 정부의 생각도 꼭 저런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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