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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만 강조하면 이산가족 상봉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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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만 강조하면 이산가족 상봉 못한다

[황재옥의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北이 상봉에 응하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이산가족들의 그리움과 갈증은 언제쯤 해갈될 수 있을까? 목메어 기다리던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21일, 북한은 일방적으로 상봉을 '연기'했다. 북한의 속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 중,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 문제가 여의치 않자 결국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한 것이 아니냐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해 남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했던 북한이 실망한 모양이다. 어쨌건 일이 이렇게 되면서 만남을 고대하다 좌절된 남북 196명 가족들의 슬픔과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생의 조짐을 보이던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인 홍신자(83) 씨가 22일 자택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워도 못 보는 이산가족의 고통, 인도주의를 넘어 인권 문제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때, 이산가족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생겨났다. 여기에 6.25 이후 북한 당국의 비인도적 행위로 인한 납북 어부를 포함한 납북자도 생겼다. 이산가족 문제는 민족비극의 핵심 사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북한의 비인도적 행위로 인해 납북되어 북한에 억류된 채 반생을 살아온 이들도 있지만, 전쟁 중에 자의로 월남하고 자의로 월북한 분들이 우리가 말하는 이산가족의 대종을 이룬다.

그 중 자의로 월남했지만 가족의 일부를 북에 두고 온 분들 중, 북에 있는 이산가족을 찾아 달라고 우리 대한적십자사에 신청한 신청자는 총 12만 8842명이었다. 이산가족 찾기 신청 사업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작됐는데, 신청자 중 5만 5960명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미 사망했고 7만 2882명은 아직도 북한에 살아 있을지 모르는 형제·자매·자녀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산가족 1세대가 겪었던 그 절박한 고통과 한을 공감할 수 있는 후세대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안타깝다. 당사자인 1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남북 이산가족 간의 상봉과 교류도 점차 절박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5년 9월, 최초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9.20∼9.23)이 서울과 평양에서 성사됐다. 당시 남북한 각각 50명의 방문자 가운데 남측 가족 35명이 북측 가족 41명과 상봉했고, 북측 가족 30명은 남측 가족 51명과 상봉함으로써 상호 방문자 65명만이 총 92명의 가족과 상봉했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당국 간 차원의 상봉과 교류는 이전에 비해 증대되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총 16차례 대면 상봉과 7차례 화상 상봉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대면 상봉 3378가족(16,212명), 화상 상봉 557가족(3748명) 등 총 3935가족(19960명)이 상봉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 10월 이후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이 오랜만에 다시 이루어진다는 기대와 설렘도 잠시, 이산가족 상봉은 기약 없이 다시 연기됐다.

한편 5개월 만에 개성공단이 재가동되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제 날짜에 이루어졌다면, '인도적 문제와 경제 협력을 우선하고 정치적인 논의는 시간을 두고 진행'하려 했던 현 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첫발은 순조롭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일방적 연기 통보로, 인도주의 문제와 남북경협 문제가 정치적 상황 때문에 또다시 영향을 받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남북한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치, 경제, 군사 등 굵직굵직한 사안이 많다. 1985년부터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이산가족 당사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 해결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인도주의적 사안이다. 1992년 2월 19일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제18조는,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은 남북의 정치적 상황, 국제정세에 따라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남북한 사회문화통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통일의 선결 과제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 사업은 통일의 그 날까지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인권문제다. 남북 분단이라는 한민족의 불행한 역사는 '이산'이라는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개인마다 각기 다른 사유로 자녀·형제와 헤어지기도 하고 북한의 반인륜적·범죄행위로 납북되어 억류되기도 했지만, 이중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북한에 강제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의 상봉 문제는 기본적 인권침해 문제다. 특히, 국군포로와 전시(戰時) 전후(戰後) 납북자들은 출신이 남한이라는 이유로, 신분조사와 사상검토 작업을 통해 차별을 받고 있다. 바꿔 말해서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 인도주의 차원에서 우선 풀어야...

시간이 지나고 고령인 이산가족 1세대들이 사라지고 나면 후세대들이 과연 이산의 고통과 안타까움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분단과 전쟁이 낳은 우리 모두의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남북 이산가족 문제의 본질과 중요성은 결과적으로 희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과 교류는 인류 보편적인 인권 및 인도주의 구현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사자인 1세대가 사라진다고 해서 이산가족 상봉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직전에 좌절된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문제가 순수한 인도주의 사안으로 다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안으로 대응해 왔고, 사안의 의의 및 중요성을 훼손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2001년 4차 상봉 때, 상봉행사 나흘 전 남한의 '비상경계조치'를 문제 삼아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유보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었다. 그리고 제12차·13차 상봉 때는 '납북' 등의 표현을 문제 삼아 남한 기자들의 정상적 취재활동을 제한하기도 했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어떤 전제나 단서가 붙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상황과 자주 연결시키면서 대남 레버리지로 써왔다. 25일 예정되어 있던 이산가족 상봉 연기도 예전의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산가족 문제가 정치적 상황에 의해 제약받아서는 안 되는 인도주의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이념 및 군사적인 이유로 자주 부침을 겪어 왔었다.

그런 점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솔직히 말해 북한보다는 우리 남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북한의 협조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인도주의 문제이고 인권문제라는 점을 백날 강조해봤자 북한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문제 해결을 지연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어려움과 필요를 헤아려주는 것도 인도주의다

그러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이산가족 문제가 인권 및 인도주의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것만으로, 또는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면, 남북관계도 이렇게 부침을 거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통일도 벌써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북한을 문제 해결의 협조자로 만들 수 있는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북한을 협조자로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의 말 못할 속사정을 헤아려 주는 것이다. 우리가 절실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풀고 싶으면 그들이 절실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풀어주면 될 것이다.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총 16회에 걸쳐 1만 6000명 이상이 대면 상봉을 하고 5600명 가까운 이산가족들이 화상 상봉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쌀과 비료 지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북한도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협조해 나왔던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속담도 있다. 단, 이제는 1회용 전시를 위한 폭풍지원이 아닌, '상시상봉체체'로 나아가기 위한 정례화와 인도적 지원을 연계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이 인도주의 사업이니까 성실하게 협조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맨입으로 북한에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북한더러 세계평화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한 얘기다. 북한이 이번에 갑자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기'한다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댔다. 그 중, 북한의 본심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연계시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정부가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 사업의 규모를 확대하고 정례화함으로써 통일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싶다면 선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전 정부들의 대북정책을 비교 참고함으로써 현재 남북한 간에 필요한 '신뢰'를 다시 형성해 나가는 일이다. 인도주의라는 명분만을 강조하면서 '원칙'타령만 한다면, 이 또한 북한에는 공허하게 들릴 것이고 결국 박근혜정부 임기 내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반드시 그들이 절실히 바라는 대가를 약속받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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