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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IMF극복의 역군이다"

[현장 르포] 뒤숭숭한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

오는 17일 4년이상 불법체류 노동자에 대한 일제단속을 앞두고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고용허가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다시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특히 4년차 이상의 한국 생활에 적응된 숙련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강제출국 대상이 되자 이들을 고용하고 있던 중소.영세 사업체의 기업주들도 당장의 ‘인력난’을 호소하며 강제추방을 반대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13일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안산지역을 찾았을 때, 이러한 현장의 불만들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었다.

<사진1>농성

***“우리도 IMF 극복의 역군입니다”**

안산 시화공단에 입주해 있는 D정밀은 나사와 볼트 등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이 업체엔 외국인 노동자 8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 중 바꾸(32)씨를 포함 3명은 4년차 이상으로 강제출국 대상자이다.

스리랑카에서 온 바꾸씨는 1997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6개월동안 지정된 업체에서 일하다 저임금에 못 견뎌 불법체류자가 된 경우로 한국에서 IMF를 겪었다. 인쇄소, 금형공장 등을 전전하다 98년부터 D정밀에서 일을 했다는 바꾸씨는 “IMF때 우리 회사가 너무 어려웠다. 사장님이 나를 자기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며 ‘월급은 못 줘도 조금만 참고 버티자’라고 말해 지금까지 왔다”라며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나를 내 쫓는 것은 잘 못됐다. 너무 불공평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4년차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에 자신들이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지탱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바꾸씨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뻤다. 한국이란 나라의 힘을 느꼈다”라며 “그 때부터 한국을 사랑하게 됐는데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라고 덧붙였다.

바꾸씨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고향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에 병원비를 벌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불법체류자였는데, 앞으로도 계속 불법체류한다고 해서 무서울게 없다. 여기 친구들 다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사진2>공장의 외국인 노동자

***“일 잘하는 외국인들 다 내 쫓으면 누구데리고 일을 한단 말인가?”**

D정밀 안모(54)사장은 바꾸보다 정부에 불만이 더욱 많았다. 안 사장은 “바꾸 같이 한국말에 능통하고 기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다 내쫓으면 누굴 데리고 일을 하라는 것이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안 사장에 따르면 바꾸같이 한국에 오래 머문 외국인 노동자는 일단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한국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한편, 어느 정도 기술 수준도 높기 때문에 새로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왔을 때도 중간역할을 훌륭히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안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주된 이유에 대해서 ‘저임금’도 있지만 잘 가르쳐 놓으면 그들이 누구보다도 ‘성실하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사장에게는 새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꾸 같은 존재가 절실하다.

안 사장은 또 “옛날에는 서로 어색하고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달라 외국인노동자 문제가 많았지만 이제 이런 중간급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 외국인 노동 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는데, 갓 한국에 온 외국인들만 남게 되면 과거와 같은 문제들이 재발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안 사장에게 이럴 바에야 임금수준이 낮은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 사장은 "그런 얘기는 대기업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라며 "30명 데리고 돌아가는 공장에서 쉰이 넘은 나이에 생판 모르는 이국타향에서 어떻게 공장을 하겠느냐. 내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쌓아온 자산을 다 버리라는 말이냐"라고 일축했다.

<사진3>임금체불 노동자

***‘국경없는 마을’ 안산 원곡동**

외국인 노동자의 대거 강제추방을 앞둔 외국인 노동자 밀집촌인 경기도 안산 원곡동. 주민등록상 인구가 1만9천명인데, 외국인노동자는 2만2천여명이 살고 있는 말 그대로 ‘국경없는 마을’이다.

이 곳에 위치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는 요즘 강제출국과 합법화신청을 문의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전화와 방문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그 중에서도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강제출국’을 악용한 사업주들로 인해 체불 임금과 퇴직금, 보증금 등을 받지 못해 하소연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불법체류를 각오하고 한국에 남기로 한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그 마저도 무서울게 없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하비브(39)씨도 한국에 온지 4년 4개월로 강제출국대상자이니지만 “아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국에서 3년은 더 일해야 한다”며 “절대 한국을 떠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날씨가 좋고 김치 내게 잘 맞는다”**

하비브씨에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자 하비브씨는 “한국의 춥고 더운 날씨가 좋고 김치가 몸에 맞는다.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 아픈 곳이 많았는데 한국에 와서 병도 고치고 몸이 많이 좋아졌다”라고 자랑하며 여권에 붙어 있는 자신의 옛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보니 실제로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특히 하비브씨의 말 중에서 인상이 깊었던 것은 ‘춥고 더운’ 날씨다. 하비브씨는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기후 민족의 ‘성실함’을 이미 몸으로 체화한 상태였다.

<사진4> 방글라데시 노동자

***노동의 세계화, “돈 벌어서 이태리로 간다”**

하비브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한국에서만 법을 개정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비브는 한국에 오기 전 말레이시아에서 6년 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오는데 1천3백만원을 들였다고 한다.

하비브는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친구들은 또 싱가폴이나 이태리로 간다”며 “말레이시아는 6백만원 정도 들지만 이태리는 1천4백만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기 때문에 국제적 노동력 시장에서 송출비용이 높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대상 ‘귀환 프로그램’ 실시해야”**

이러한 문제에 대해 '미스타 한'으로 불리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한동희 사무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귀환 프로그램’을 실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한 국장에 의하면 한국에서 돈을 벌어 귀국한 노동자들이 아무 경험없이 가게를 차렸다가 망하거나, 흥청망청 소비를 해 빈털터리가 돼 다시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한 국장은 중국인들의 경우 본국에서 부동산투기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외국에서 '고임금' 노동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한 달 일해봐야 한국에서 하루 일한 만큼 밖에 안돼는 본국에서의 임금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귀국할 때 본국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을 시켜 귀국을 시켜야 그들이 본국에서 잘 적응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5>주한외국대사들

***“필요인력 50만, 정부는 현실여건 더 고려했어야”**

한 국장은 4년차 이상 외국인노동자 강제추방 방침에 대해서도 “3D업종에 필요한 외국인노동자 인력 수요가 50만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현재 외국인 노동자가 38만명 수준인 것을 감안했을 때 4년차 이상 외국인 노동자를 추방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4년차 이상 외국인 노동자가 15만명에 달하고 이들이 대부분 한국어에 능통하고 적응이 된 기술인력을 감안했을 때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나마 이 15만명 중에 귀국할 노동자가 5만명도 안 될 것이라는 관측이 아이러니한 희망으로 남아있는 형편이다.

한 국장과의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센터로 인간 중소기업체 사장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정부에 항의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이 지역의 중소기업 사장들은 ‘강제추방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 호소문을 띄우기도 했다.

<사진6>합법화 노동자 <사진7> 출국노동자 (가로로 붙여주세요)

***뒤숭숭한 ‘국경없는 마을’**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에 요즘 ‘반짝 경기’를 누리고 있는 업종들이 있다. 바로 출국을 앞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행용 트렁크나 선물용 ‘가짜’ 가죽지갑, 핸드백 등을 파는 노점들이다. 트럭 한 가득 여행용 트렁크를 싣고 원곡동에 왔다는 노점상은 “생각보다 꽤 많이 팔았다”며 3/4정도 빈 트럭을 보여줬다.

오는 17일부터는 법무부, 노동부, 경찰이 4년이상 체류 강제출국 대상자에 대해 일제 단속을 시작한다. 현재 15만여명의 강제출국 대상자 중 5만여명이 출국하고 10만여명이 그대로 불법체류자로 남을 전망이다. 외국인노동자센터 한동희 국장은 "저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먼 곳을 바라봤다. 한 국장에 의하면 이미 많은 외국인이 숨을 곳을 정해 '잠적'했다고 한다.

이미 한국 경제의 한 부분이 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법의 테두리로 포섭하고, 송출비리를 근절하는 한편, 끊이지 않았던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실시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안산지역 '현장'에서는 "현장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정책에 분통이 터진다"는 목소리가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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