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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정욱식의 '오, 평화'] '전략적 인내'에 '전략'은 없다

북한이 영변에 있는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민간 연구소들이 8월 31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해보니 원자로 부근 시설에서 흰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원자로가 재가동에 돌입했거나 시험가동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북한이 이 시설을 재가동하면 2015년 정도부터 매년 1개 분량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6킬로그램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참고로 북한은 2007년 6자회담의 2.13 합의와 10.3 합의에 따라 5메가와트 원자로를 불능화했다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반발하면서 올해 4월 재가동 방침을 선언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30메가와트 실험용 경수로도 완공 단계에 접어들고 있고, 우라늄 농축 시설도 두 배로 확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 북한 영변 핵실험 장소의 위성사진. ⓒAP=연합뉴스

"핵 억제력" 강화와 원전 사고 위험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 증대이다. 현재 5~1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총가동할 경우 2017년경에는 50개 안팎으로 늘릴 수 있을 전망이다. 또 하나는 원전 사고의 가능성이다. 195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80년대 초부터 가동에 들어간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는 이미 노후화된 상황이어서 원전 사고의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또한 북한이 경수로 운영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30메가와트 경수로 가동 시 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핵무기 보유량 증대가 확실한 위협이라면 원전 사고 가능성은 불확실하지만 마땅히 주목해야 할 위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6자회담이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고사하고 영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미국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2009년부터 6자회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두 나라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먼저 보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은 2008년 12월 결렬 이후 5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다.

6자회담에 대한 한미 양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최근에도 거듭 확인된다. 중국은 9.19 공동성명 8주년을 맞이해 6개국 수석대표와 학자들이 참석하는 반관관민 회의를 열자고 제안한 상황이다. 그런데 한미 양국은 수석대표 파견은 고사하고 민간 학자들만 보내기로 했다. 한미 양국의 북한과의 대화기피증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정녕 북핵 해결을 원하는가?

이러한 상황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미국은 정녕 북핵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는 걸까?'라는 강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예전부터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의문의 크기는 더욱 커져만 간다. 북한이 비핵화 문제를 포함해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며 대화를 제의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중국도 외교부와 국방부는 물론이고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나서 이젠 6자회담을 하자고 한다. 공식적인 6자회담이 시기상조라면 반민반관 회의라도 하자고 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북한이 대화를 원하거든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하라"는 녹음기만 반복해서 틀고 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는 비외교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6자회담과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대화 기피로 돌아선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발→대화→보상→도발'로 이어진다는 '북한식 패턴'은 오바마 행정부가 줄곧 내세운 이유이다. 북한이 올봄에 "워싱턴 불바다"를 운운하면서 전쟁 위기를 높이자 혐오감도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에 북한위협론을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음모론처럼 들릴 수 있지만, 최근 수년간 미국의 행태는 이러한 해석이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9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는데 "좋은 기회"로 간주한 것이나, 3자간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해 일본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한국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요구해온 것이나, 국방비를 삭감할 처지에 몰리자 북한 위협을 이유로 아시아에서는 군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워싱턴에서 득세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더욱 근본적으로 미국은 아직 한반도 평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한반도 문제의 속성상 북핵 문제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북·미 관계 정상화 등 한반도의 탈냉전 프로세스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 정전체제와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유지·강화해왔던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거꾸로 가고 있다.

남북관계 역류 현상도 우려

이러한 와중에 우려되는 것은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다. 최근 남북관계는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 합의, 평양 역도대회에 남한 선수 참가 및 태극기 게양과 애국과 연주 등을 통해 모처럼 해빙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5메가와트 원자로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 내의 강경파들이 이를 빌미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조만간 남북관계 최대 현안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될 터인데, 박근혜 정부 내 강경파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로 현금이 북한에 들어가면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여기에 제동을 걸려고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만약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산가족 상봉도 단발성 행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금강산 관광 재개로 가는 '관문'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남측은 북한의 비인도적 처사를, 북측은 남측의 화해협력 의지의 부족을 비난하면서 남북관계가 또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범위 안'에서 안주하거나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큰 판을 읽어야 할 지혜를 발휘해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대화 통해 분명한 메시지 보내야

그럼 북핵 능력의 강화, 북한판 '후쿠시마 참사' 위험, 남북관계 악화 우려 등 파국적인 상황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북미대화든, 6자회담이든, 남-북-미-중 4자 대화든 북한과 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 정부는 대화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시간을 벌어주고 제재와 압박을 피하려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너희들이 원하는 대북 제재 해제나 평화협정 협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서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늘여놓는다면 중국을 대북 압박에 동참시키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 한미 양국이 하기에 따라 대화가 북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더없이 강력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가 이뤄지면 적어도 북핵 동결은 지금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5메가와트 재가동을 중단시키고 추가적인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그리고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을 유예하며 영변 핵시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의 복귀 정도는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북 제재의 일부를 해제하면서 중단된 중유 제공을 재개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평화 협상을 개시하는 정도의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정부가 6자회담 재개에 소극적일수록 어렵게 복원하기 시작한 한중관계가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 거꾸로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 추진 시 "한국의 입장을 가장 중시하겠다"고 줄곧 말해온 만큼, 한국이 중국과 공조를 통해 6자회담 재개의 문을 열려고 하면,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은 거의 미치지 않으면서도 한중관계를 강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말에 북핵이 50개 안팎으로 늘어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가 선택해야 할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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