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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자고? 불법파견·위장도급, 법이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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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자고? 불법파견·위장도급, 법이 키웠다

[반월·시화 공단서 본 파견 노동자 현실·③] 간접고용 법·제도 실태

외환위기 구제금융 사태로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가 본격화됐던 1998년 이후, 노동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유랑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동 유연화' 정책이 15년 이상 꾸준히 지속한 결과,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느 회사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며칠, 몇 달 만에 일터를 수시로 바꾼다. 노동법의 기본 정신인 '직접 고용'이라는 말은 멀겋게 희석된 지 오래며, '간접 고용'은 그 틈바구니에서 사회 구조를 좀먹고 있다.

"이익을 보는 자가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은 상식이다. 조금 과장하면 사장이 노동자 여럿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사장을 여럿 두는 간접 고용이 만연하면서 이 상식은 깨져가고 있다. 간접고용을 통해 쌓인 이익은 사용자가 누리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가 전담하는 구조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듣도 보도 못한 채용 형태들이 늘어가면서 '노동 제공-임금 지급' 체계 자체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정치,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건강해야 한다.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바로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고,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우리 사회의 다수이자 '골격'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죽은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데 그 '골격'이 삭고 있다. <프레시안>은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함께 안산·시흥 지역의 반월·시화 공단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노동을 좀먹는 '간접 고용'의 '샘플'을 채취해 그 적나라한 실태를 짚어본다. <편집자>


▲ 불법파견이 이뤄지고 있는 안산시 oo동의 한 골목. ⓒ프레시안(최하얀)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명령하겠다" 대통령이 약속했건만…

간접고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간접고용은 사용자가 노동자와 직접 근로 계약을 맺지 않고, 노동자가 소속된 제3자와 계약을 하는 경우로 도급, 파견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자는 명확한데 사용사업주와 공급사업주의 경계가 모호해 책임 소재가 흐릿해지는 구조다. 이 구조 속에서 결국 피해는 노동자에게로 돌아가기 쉽다. 사실 '간접고용'이란 법률에 명시된 정상적인 용어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직접고용'에 대비되는 임의적 개념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미 실상에서 간접고용 형태는 민간과 공공 부문을 가리지 않고 노동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문제는 간접고용의 상당수가 불법성을 띄고 있다는 점. 애초 파견, 도급 등은 직접 고용하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큰 고급기술자, 비용이 많이 드는 기계장비 등을 활용하기 위해 고안됐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단순 인건비 절감 목적의 고용이 대부분이다. 최근엔 노동조합과 교섭 의무가 없다는 점 역시 간접고용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프레시안>이 다녀온 반월·시화 공단을 비롯, 최근 논란이 된 삼성전자서비스, 엘지전자, 인천공항공사, 티브로드, 지엠대우 사례도 이에 포함된다. 이들 사업장에서는 파견 금지 업종에 파견이 이뤄지는 '불법파견', 혹은 외형상 도급이면서도 실제로 파견에 해당하는 '위장도급' 행위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불법 사례가 하나하나 알려지면서 간접고용은 노동계 이슈로 떠올랐다. 경제 민주화 논의가 활발했던 지난해 정치권에서도 간접고용은 주요 의제로 부각됐다. 지난해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간접고용 축소를 법안에 명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엔 "법원에서 불법 파견 판결을 받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동일한 불법파견 확인 시 원청업체가 직접고용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재계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정상적인 흐름"이라며 파견법을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법 파견에 대한 법적 판단마저 무시하고 있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차의 사내하청 파견 노동자에 대해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행정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명령을 어기고 헌법소원까지 낸 상황이다.

위장도급 등 불법 사례가 적발되어도, 대부분은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로 그친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지엠대우가 '도급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불법파견을 했다'며 파견법 위반으로 확정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데이비드 닉 라일리 전 지엠대우 사장에 대한 벌금은 700만 원, 협력업체 6곳 대표들에게는 각각 300~4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당시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 "파견법을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 벌금 700만 원이라니 분통이 터진다"며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한 바 있다.

반월·시화 공단서 본 파견 노동 현실
① 매일 아침 벌어지는 기괴한 '인간 경매', "이름도 몰라요"
② 사회 죽이는 '고용구조 붕괴'…'파견'마저 '파견'하는 현실
③ 노동시장 잠식하는 불법파견·위장도급… 법이 키웠다

"파견법 상 '일시·간헐적 사유'는 엿장수 마음대로…"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동계 안팎에서는 미비한 법·제도가 간접고용을 키운 것 아니냐는 물음이 잇따른다.

우선 파견법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있다. 1998년 7월 시행된 파견법은 "불법적 노동자 공급을 막고, 파견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파견법은 1993년부터 입법화가 추진됐지만 '간접노동을 법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노동계 반발에 부딪혀 잠시 표류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노동 유연성이 대두되면서 법제화됐다. 청소·경비 등 비숙련 노동에만 한정됐던 파견 가능 업종이 32종으로 확대된 것도 파견법 시행 이후였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선 파견법 자체를 무위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파견법 자체가 불법파견을 확산시킨 주범으로, 이 법이 존치하는 이상은 불법파견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현행 파견법은 중간 착취를 금지한 노동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며 "악용 사례가 너무 많아지고 있어 원칙적 폐지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시적으로 사람 필요할 경우에 대해선 기간을 정해서 직접 고용을 하는 기간제 근로제를 운용해 쓰면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특히 파견 허용 기준의 모호함을 이용한 악용 문제를 꼬집었다. 현행 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에서의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을 때에만 3개월 파견 사용(1회 연장 가능)을 허용하고 있는데, '일시·간헐적 사유'가 명확하지 않아 사용자 뜻대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실제 제조업 생산 라인에서는 파견 노동자 한 명을 최대 6개월간 쓴 후 새 사람으로 대체하거나, 잠깐 휴식기를 준 뒤 같은 사람을 재고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실제 근속기간은 2년이 넘어도, 계약서 상에서는 파견 근로자이기 때문에 정규직 처우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권 변호사는 "일시·간헐적이라고 하는 것은 결원이 발생하거나, 휴가를 갔거나, 그런 경우 특별한 경우에만 한하는 건데, 감독이 안 되는 경우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며 "파견법 폐지가 최선이지만, 적어도 해당 문구를 없애든지, 아니면 '결원이 발생했다든지, 휴가를 갔다든가' 등 특정사유를 제한하는 등 문구 수정이 필요하다"며 파견법의 손질을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파견법 폐지 주장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고용은 더욱 유연화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현실적인 대처방안도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파견법의 제대로 된 이행이 먼저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불법파견 적발 시 영업정지가 가능하다. 울산에만 그런 곳이 100여 군데가 넘는데 전부 불법으로 보고 영업정지 등 엄벌에 처할 수 있다. 제대로 법을 이행하기만 해도 현재와 같은 불법 고용 행태를 줄일 순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지금 경제부처에 눌려서 들러리 신세로 전락해 힘을 못 쓰는 중"이라고 비판했다.

▲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 공단대로. ⓒ연합뉴스

"최초 취업 단계서부터 상시적 업무에 대해선 직접고용해야"

파견과 도급에 대한 엄격한 구분 또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도급과 파견은 실질에 있어선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우선 법률 상의 명확한 구분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견법에서 사용자는 파견 노동자를 직접 지휘감독 하는 대신 업종 제한 등 비교적 강력한 규제를 받는다.

반면 도급은 민법으로 분류되므로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미약하다. 때문에 대기업들은 실제로는 파견을 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책임 수위가 낮은 도급의 형태를 취하는 불법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최근 논란이 된 삼성전자서비스, 엘지전자 등이 모두 이와 유사한 사례다. (☞관련 기사 보기 : "삼성에 청춘 바친 나, 알고 보니 불법 파견", "아빠는 최고 삼성 직원", 아들 말에 가슴이 찢어졌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사장 64%가 본사 출신" )

남 연구위원은 "2007년 4월 마련된 '근로자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이 있지만 말 그대로 지침에 불과할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파견법시행령이나 직업안정법시행령 등을 통한 규제가 실효성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파견과 도급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원청업체가 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의 파견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간접고용을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직접고용의 원칙 확립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소장은 "현행 기간제법은 '2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을 원칙으로 하지만 사용자가 선량하든지, 강력한 노조나 중앙정부가 있을 때라는 전제가 달린다"며 "'2년 고용 후 해고'가 되지 않기 위해선 최초 취업 단계서부터 상시 업무일 경우 직접고용 원칙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 변호사 또한 "상시적인 업무에 대해 간접고용을 금지해야 한다"며 "민변에서 '상시 업무에 대한 정규직화'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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