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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역사가 중국 황허 문명에서 비롯됐다?"

교학사, 전근대사 기술도 '엉터리'…"심각한 사실 오류"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에 거주하던 여러 집단이 공동체로 조직화되고 황허 문명권의 확장에 따른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원전 1천 년 동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민족의 원형이 성립되기 시작하였다."(<한국사>, 교학사, 15쪽)

한반도와 주변 지역 거주 민족의 역사가 중국 황허 문명에서 비롯됐다는 황당한 학설이 제기됐다. 최근 근현대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이하 '역사4단체') 등에 따르면,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서 최근 논란이 된 근현대사 부분 외 전근대사 부분에서도 심각한 오류가 발견된 것으로 밝혀졌다. 학계 정설을 무시한 새로운 학설을 내놓거나, 역사적 사실 오류를 범하는 등 집필 시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대표적인 예가 앞선 '황허 문명' 기원설이다. 역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을 중국 문명 확대의 파생물처럼 서술했다"며 "심각한 사실 오류이며 문장의 착란"이라고 꼬집었다.

서기 전 2세기경 북만주 지역에서 발생한 부여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부여는 만주의 쑹화강 유역에서 발전하였다. … 부여는 산과 언덕, 넓은 연못이 많아서 한반도 지역에서는 가장 넓고 평탄하였으며 …"(22쪽)

만주 영토가 주 무대였던 부여를 '한반도에서 가장 넓고 평탄했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지적이다. 역사4단체는 "<삼국지> '동이(東夷)전' 중 '동이 지역에서 가장 넓고 평탄하다'는 서술을 변형한 것"이라며 "집필자의 소양을 의심케 한다"고 밝혔다.

부여가 한반도 지역이었다는 기술이 그대로 교과서에 실릴 경우, 중국과의 고대사 논쟁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도 문제로 지적된다. '만주는 한민족의 고토(故土)'라는 한국 측 입장을 뒤집고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손을 들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 대한 설명도 오류 투성이다.

"향리 출신으로 중앙의 권력자들과 줄이 닿지 않았던 이규보는 …"(71쪽)
"의창은 흉년 등의 어려운 시기에 곡식을 대여해 주었다가 가을에 갚도록 한 사회 정책이었다."(74쪽)


이규보는 향리 출신이 아니며, 아버지가 이미 호부 낭중의 중앙관직에 진출해 있었다. 또한, 의창은 사회 '정책'이 아닌 사회 정책을 담당한 '기관'이었다는 것이 단체들의 설명이다.

기존 학설에서 허용하기 힘든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은 신라 시대에 대한 기술 중 일부이다.

"신라 하대에는 선종이 유행하고 유교가 정치 이념으로 대두하였으며, 이들 유교와 불교가 풍수지리 사상과 결합되는 사상계의 변화가 나타났다."(47쪽)

유교 정치 이념이 자리를 잡은 것은 7세기 신문왕 집권 무렵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현재 많은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이처럼 서술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역사4단체는 "만약 이 교과서로 배워 관련 시험을 치른다면 오답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교과서 왜곡 논란이 심화되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한 학생이 한국사 교과서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집필진의 이념 편향이 '대량 오류' 사태 불렀다"

"이번 교과서처럼 문제 있었던 적이 있었나."
"없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일본에서 후소샤 교과서(일본의 왜곡 교과서. 편집자주) 나왔을 때다. 그것도 문제 되는 부분이 300건 정도였다"


10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검토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한 역사4단체 소속 연구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사4단체가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서 뽑아낸 지적사항은 총 298건, '후소샤 급'이다. 전근대사 부분을 다룬 1단원에서 4단원까지가 94건, 일제 강점기 부분을 다룬 5단원은 125건, 근현대사 부분인 6단원은 79건이다. 이들은 "총 500~600여 건 되는 걸 뺄 거는 빼자고 해서 남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회견에서 최근 언론이 지적하는 '뉴라이트식 세계관', '이념 편향'의 사례 발표 비중을 줄였다. 사실 오류만 지적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 한국역사연구회장으로 역사4단체 회장을 겸하고 있는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제가 지적한 것 중 북한 언급 하나도 없었다. 만약 여기서 얘기하면 '이석기' 얘기로 빠질 것"라며 "명백한 오류가 발견된 것만 추려온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가 오류 투성이라는 데는 기자들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사실관계가 잘못된 사례가 소개될 때마다 기자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교과서 254쪽을 보면, '카이로선언에서 발표된 사항들은 1945년 2월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 의해 발표된 포츠담선언을 통하여 재확인됐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1945년 2월은 얄타회담, 포츠담선언은 1945년 7월이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부위원장은 이를 지적하면서, "기자분들도 학교 다닐 때 '시대 순으로 나열하시오'하는 문제를 풀어봤을 거다. 수능에서 이 문제 나오면 (교학사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은 전부 다 틀리는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이러한 지적이 단순히 농담인 것만은 아니다. 이 부위원장은 "이런 교과서를 만약 일선 학교에서 채택하게 된다면 학생들의 역사의식이나 민족의식이 우려되는 차원을 뛰어넘어, 학생들이 과연 수능시험을 제대로 볼지, 대학에 제대로 갈지 판단이 안 설 정도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 교수는 교과서 집필자의 사실 오류가 중대한 문제임을 강조하며 "이번 교과서 논쟁을 두고 진보와 보수, 좌우 대결이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며 "역사 정의와 가치관의 차이이자,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다만 '오류 릴레이' 사태에 집필진의 '이념 편향' 성향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기존의 교과서들은 수십 년간 써오던 역사가 있고, 이를 토대로 최근 역사 교과서를 참조한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은) 그걸 좌파 교과서라서 그냥 무시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도 "교과서는 원래 보수적이다. 정치적인 의미가 아니라 보수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쓰여 있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집필진의 불필요한 반감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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