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술판’ 사건 이후 용도폐기된 줄 알았던 386에 관한 얘기가 요즘 들어 연일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정치권 386’이 논란의 중심이다. 여기에는 여권 내부의 ‘음모설’과 관련돼 그들의 권력지향성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가 대종이다.
집권여당의 이상수 사무총장조차 “나도 (정치권 386에게) 떼밀려가는 느낌”이라고 토로할 지경이니, 노무현 정권을 만들어 낸 일등공신이자 정권의 상하부 조직 요로에 포진된 그들의 영향력은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청와대에 파견 나가 있는 40대 중반의 전문관료는 "과거에 파견 나와 있을 때는 모르는 이를 복도에서 마주칠 때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면 인사를 하면 됐으나, 요즘은 386출신의 파워가 워낙 커 나이가 많고적고를 떠나 복도에서 만나면 누구에게든 무조건 인사를 한다"고 386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위압감을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386은 한국정치권에서 분명한 실체적 존재다. 다만 ‘386세대’라는 조어가 생성 당시에 그랬듯 지금의 386 논란 역시 노무현대통령 주변의 일부 젊은 참모들을 진앙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정치권과 무관한 대다수 386은 논란의 언저리에서 그동안 공유하고 있던 ‘시대의식’에 대한 귀속감마저 상처를 입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야 386 전성시대**
지금은 말 그대로 '386 전성시대'다. 여권뿐 아니라 야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음모론'이 제기되면서 386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한껏 고조됐다.
‘386음모론’의 사실 여부는 접어두자. 대형 게이트 파문이 확산되는 과정에 악의에 찬 왜곡이 개입됐을 수도 있고, 그들의 주장대로 음모론을 계기로 한 역음모론이 존재할 개연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치권 386이 구세대 정치인과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스스로 내세운 ‘개혁성’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개혁성과 관련, 이미 권력에 포진한 여권의 386은 적잖은 실수를 했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헬기를 타고 새만금 현장을 관광 시찰했다. 당연히 '권력 불감증'에 빠진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JP의 전례를 들며 집권당의 사무총장을 희망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권력 지향적'이라는 비난이 즉각 뒤따랐다.
이번에는 이같은 '여권의 386'을 '야당의 386'이 성토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의 386 세대인 조해진 부대변인은 28일 “다수의 대통령 참모들이 청와대를 총선 출마를 위한 경력관리용 정거장 정도로 생각하고 마음을 콩밭에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정난맥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도, 나라의 운명을 위탁받은 사람들로서 최소한의 역사의식이 결여된 모습이다”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말은 바른 말일지라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여권의 386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들의 행태 때문이다. 야당의 386들이 지난 대선 과정에 '당의 수구화'를 방관했다는 혐의는 새삼스런 비판이 못된다. 대선이 끝나고 ‘환골탈태’를 주장했던 그들은 최근 이회창 전 총재의 옥인동 자택을 앞다퉈 기웃거린다.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보장받기 위한 눈도장 찍기로 해석되고 있다.
이처럼 구세대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여야 386의 행태로 인해 그들이 최초 정치권 진입에 성공하게 된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도덕성과 참신성, 개혁성은 이제 유통기간이 한참 지난 식품이 돼버렸다.
***‘386 별종’들을 386세대에서 분리해야**
이렇게 보면 386 논란의 본질은 ‘정치권 386이 과연 동세대 의식의 평균치라도 대변하고 있느냐'에서 찾아야 할 듯 싶다. 누구도 위임해 준 적 없는 '동세대의 대표' 행세를 하고 있는 그들에 대한 다수 386의 불신이 그것이다.
근자에 만난 80년대 초반 학번의 한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참고로 그는 “지난 대선 때 권영길을 찍었음에도 노무현의 당선에 안도했다”는 직장인이다.
“가끔 나는 과거에 했던 운동의 기억을 파먹고 산다고 느낄 때가 있다. 과거 내가 거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내 소시민적인 삶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좋게 보자면 그것은 어쩌면 80년대의 내가 그만큼 치열했다는 자부심일 것이고, 나쁘게 보자면 내가 지금 너무도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괴리는 우리 세대 사람들이 생활에서 느끼는 가장 큰 괴로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386세대라는 편의적 분류에 끼고 싶지 않다. 엄밀히 따져보면 흔히 말하는 386은 정치하는 일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그들이 과거 민주화 투사였건 아니건, 80년대를 자신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개혁적이라고 하지만 그 실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나도 그들만큼 개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과거처럼 스스로를 조직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바뀌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누가 앞장서 하겠다면 물심으로 도와줄 용의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386에게선 평범한 우리 386이 느끼는 최소한의 죄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최근 정치권에 부는 ‘386론’은 세대 논쟁보다는 권력 암투의 성격이 크다는 점에서 과거보다도 못하다. 따라서 정치권 386이 이 시점에서 정치적 주도세력으로 등장하느냐, 패퇴하느냐보다 중요한 문제는 대다수 386의 진정성으로부터 ‘386 별종’들의 권력지향성을 분리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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