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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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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8> Ⅱ. 보데의 법칙? ④

***II. 보데의 법칙? :무기-석유 연합의 "차등적" 이윤율과 중동의 분쟁**

***④ 분쟁 발생의 '보데의 법칙'**

베트남 전쟁을 야기시킨 소위 '통킹만 사건'은 사건 당시에 이미 북베트남의 도발이 아닌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실제 그것이 밝혀진 것은 수십년 후 정부 문서의 보안이 해제된 후에나 가능했다고 한다. 군수 – 석유 자본 동맹과 중동의 분쟁 사이에 인과 관계라는 것이 정말 있다면 이는 통킹만 사건 정도보다 훨씬 더 밑바닥에 숨어있는 종류의 일일 것이다. 따라서 증빙없는 '음모 이론'을 넘어 이를 '논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닛잔/비클러는 기업 행동의 자본 축적이라는 일반적 원칙에 근거하여 그 두 가지 사이의 인과 관계에 대한 추론을 행하는데, 이는 곧 보겠지만 실로 천문학의 보데의 법칙에 맞먹는 규칙성을 보여주고 있다.

***1. 보데의 법칙**

1772년 베를린 천문대의 천문학자 보데(J.E.Bode)는 태양계의 여러 행성들과 태양의 거리에 일정한 수적 규칙성이 존재함을 발표하였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1(1천문단위=1 AU)로 잡았을 때, 수성에서 토성에 이르는 행성들의 거리 d는 d=0.4 +(0.3×2n) 라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행성인 수성에는 n에 -∞, 금성에는 n에 0, 지구에는 n에 1을 집어넣고…하면 다음과 같은 수열을 얻는데, 이를 각 행성의 태양으로부터의 실제 거리와 비교하기 바란다.

<표>

위의 등식으로 도출된 수열과 각 행성의 실제 거리가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것이 그 발표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놀랄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781년 천문학자 허셜은 이 보데의 법칙에 근거하여 태양으로부터 19.6의 거리에 또 하나의 행성이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하에 열심히 그 근처를 뒤진 결과,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 근방에서 천왕성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지구와 화성 사이의 빈틈도 천문학자들이 그냥 두었을리 없다. 그 근처에서도 또 아니나다를까 1801년 피아찌가 가장 큰 소행성인 세레스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흩어져있는 무수한 소행성들이 옛날에는 그 자리에 하나의 온전한 행성으로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일치가 나타나는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 보데의 법칙을 보고 나면 "우주는 기본적인 수리적 질서로 구성되어있다"는 피타고라스의 주장을 다시 한번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피타고라스적인" 질서는 그야말로 저 천상의 물리적 세계에나 발견되는 것이지, 이 인간 중생들과 사바 세계를 다루는 사회 과학에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온갖 수식과 측량 기법으로 날을 지새우는 근대 경제학도 또 수학자 물리학자들을 총동원하는 현대 주식시장 분석 기법도 보데의 법칙은 커녕 형편없이 빗나가기 일쑤이다. 주가 동향 패턴의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은 이들이 운영하던 펀드가 처절하게 파산하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그런데 닛잔/비클러 이론은 석유 자본의 이윤율 추이와 중동에서의 군사 분쟁 발 생 사이에 이 보데의 법칙에 버금가는 규칙성을 찾아내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기에 도저히 입증할 방법이 없을 것 같이 보이는 그러한 관계의 규명에 접근했을까? 이들의 가설과 그 전제가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2. 군수-석유 자본 연합과 '차등화 축적'**

1) 전제 1: 중동 분쟁의 발발은 주로 석유 자본 쪽의 이윤율 동향이 결정한다

앞 장에서 본 갈등 발생 – 유가 인상 – 산유국과 석유 자본 이익 증대 – 산유국 무기 수입 증가 – 갈등 발생이라는 악순환(이익 당자자들에게는 호순환)의 고리가 군수-석유 자본 연합에 의해 정말로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이려면, 그 각각의 분쟁이 발생하는 특수한 시점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어째서 지난 기간 발생한 각각의 분쟁들이 '하필이면 그 때 터졌는가'에 대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군수-석유 자본 입장에서 보면 아예 중동 지역이 항시적인 전쟁 상태에 휘말려 위의 악(호)순환의 고리가 일상적인 상태로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이 이 지역에서의 분쟁을 만들어 낼 결정적 영향력을 쥐고 있다면, 오히려 그런 '일상적 전쟁 상태'가 벌어지는 쪽이 더 설득력을 높일 것이다.

그런데 70년대 이래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악(호)순환의 고리가 나선형으로 계속 팽창해올 정도의 항시적 전쟁 상태에까지 시달린 것도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위태로운 평화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되다가 무슨 일이 터지면 순식간에 분쟁이 확산되는 간헐적인 패턴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군수-석유 자본이 그렇게 '칼자루'를 쥐고 있다면 어째서 그러한 평화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도록 '허락'하는 것일까. 또 그러다가 갑자기 '분쟁'이 터져나오는 시점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여기서 닛잔/비클러는 다음과 같은 점에 착목한다. 계속 무기를 수출해야 할 군수 자본 입장에서는 그러한 항시적 전쟁 상태를 선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석유 자본 입장에서는 그다지 간단하지가 않다. 첫째, 석유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상태가 만성적으로 계속될 경우 세계 곳곳에서 대체 에너지 산업이 활발하게 일어날 확률이 높고, 또 '하류(downstream)'에서 이 산업에 진입하려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둘째, 이 70년대 이후의 OPEC 석유 레짐이라는 것은 세계 경제 대부분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산유국들과 군수-석유 자본 연합이라는 몇몇 과점체들의 합의와 공동 이해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반이 제도적으로 대단히 취약하다. 만약 중동의 분쟁과 갈등이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되면 – 클라우제비쯔가 말하는 전쟁 상태에서의 '폭력의 가속도(escalation)'의 법칙을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 그러한 전체 석유 레짐 전체가 무너질 수가 있다.

결국 군수 자본 쪽과는 달리 이 석유 자본 핵심 쪽에서 보면, 갈등과 분쟁으로 석유 가격이 가끔 뛰어주어야 하지만 파괴적으로 치닫는 항시적 전쟁 상태는 곤란할 것이다. 따라서 '너무 뜨거우면 밥이 타고 너무 미지근하면 죽이 된다(not too hot, not too cold)'는 원칙으로 이 지역의 갈등 정도를 조정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에서 닛잔/비클러는 이 석유 자본 핵심 쪽의 동향과 의사가 이 지역의 갈등이 터지는 시점을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가정을 제시한다. 즉 항상 갈등 분쟁에 이익을 갖는 군수 자본 쪽에 이들 석유 자본 쪽이 호응하여 합의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그 군수-석유 자본 연합이 움직이게 되고 중동 사태가 터지게 된다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석유 자본 핵심 기업들이 그러한 갈등 발생을 원하게 되는 시점을 결정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분명히 그 기업들의 이윤 확대를 통한 자본 축적의 논리일 것이다. 이제 닛잔/비클러의 두 번째 전제가 나올 차례이다.

2) 전제 2 : 기업의 행동 원리는 '차등화 축적'이다

현대 기업의 행동은 어떤 원리에 의해 좌우되는가. 1백년이 넘도록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이윤 극대화'라는 답을 주고 있다. 즉 기업들은 "한계 수입과 한계 비용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생산량을 결정하고 수요곡선과의 만남에서 가격을 결정"함으로서, 주어진 상황에서 달성 가능한 최대의 이윤을 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이 이론이 "가을날 동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35원 27전의 한계 비용과 36원 11전의 한계 수입"같은 계산을 통해서 가격을 산정하고 거기에서 주어지는 이윤을 얻는 그런 기업은 현실에 없다는 비판이 이미 1930년대 부터 나온 바 있다. 게다가 이론적 허구에 불과한 완전 경쟁 시장이나 단일 독점이 아닌, 현실 세계에 더 보편적인 '과점 상황'에서는 제약 조건마저 사라져 이론적으로조차 그 '극대 이윤'을 계산할 방법이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기업 행동을 훨씬 더 잘 설명하는 것으로 "목표 수익률(target rate of return)"의 개념이 제시되었다. 현실 세계의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먼저 '목표 수익률(target rate of return)'을 설정해놓고 시장 현황에 따라 생산량을 결정한뒤 거기에 맞춰 단가를 설정하는 "원가 산정 가격 설정(mark-up pricing)"이 훨씬 더 보편적인 관행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남는다. 그 기업들의 '목표 수익률'을 결정하는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닛잔과 비클러는 여기에 "차등화 축적 이론(theory of differential accumulation)"을 대답으로 제시한다. 스미스, 리카도 이래 신고전파와 마르크스 경제학에 공유되고 있는 "평균 이윤율"의 신화에서 벗어난다면, 크고 작은 자본 사이에는 뚜렷한 위계가 있으며, 그 각각의 층위에서 규범적(normal)이라고 생각되는 수익률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며 책정하는 목표 수익률과 옆집 아저씨가 비디오가게를 열면서 책정하는 목표 수익률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학급에서 15등 주변을 맴도는 학생은 전교 1, 2등하는 아이들에게 경쟁의식 느끼지 않는다. 좀 닿기 힘든 하늘 같은 존재이니, 괜히 그런 아이들과 같이 도시락 먹어보고 참고서 따라 구입해봐야 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 대신 학급 10등권 진입을 목표로 애쓰고 있는 자기 주변의 아이들과의 경쟁에 더 신경을 쏟는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쉬는 시간마다 은근히 다가와서 "너 몇 개 틀렸냐"고 물어보는 대상은 1, 2등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 야코만 죽는다 – 그 자기 또래의 친구들이며, 거기에서 자신이 한 두개 더 맞고 틀렸음을 확인하고 홀로 돌아서서 울고 웃는다.

마찬가지로 개별 기업은 이 위계에서 스스로가 경쟁 상대로 삼는 기업군을 설정하고, 그 기업군 전체의 평균적인 수익률을 벤치마크로 삼아서, 그것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벤치마크로 삼는 집단의 '평균을 능가(beating the average)'하여 자신을 그 집단에서 '차등화' 시키는 것이 실제 기업들의 행동 원칙이 된다는 것이다.

닛잔/비클러는 이 '차등화 축적 이론'이 특히 커다란 독점력을 행사하는 대자본들 즉 '지배적 자본(dominant capital)'의 행동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앞장에서 군수 자본 핵심이나 석유 자본 핵심의 성장을 포춘 (Fortune)지가 선정하는 미국 500대 기업의 평균 수익률과 견주어 설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즉, 이러한 '지배적 자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벤치마크로 설정할만한 대상인 미국 500대 기업의 평균 수익률을 항상 능가하는 것이 축적에 있어서 핵심적인 관건이기 때문이다. 전교 1, 2등 하는 아이들도 이 벤치마크의 방법을 쓰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번 중간고사 영어 시험이 끔찍하게 어려워, 평소에 100점 맞던 전교 1등 아이조차 3개나 틀렸으며 자신의 실적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아이는 각 반을 돌면서 평소 그래도 자신에게 도전해 오던 7반 반장 3반 반장 등에게 슬쩍 물어보아 이들이 5개 7개 씩 틀렸음을 확인한 뒤에야 안심한다. 한마디로 1개 학급을 초월하는 '초국적' 벤치마크를 나름대로 쓰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험이 전무한 필자로서는 다 들은 이야기지만.

이 '차등화 축적 이론'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귀결은, 지배적 자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수익률 자체보다, 이 포춘 500대 기업의 평균 수익률과의 상대적 비교라는 것이다. 즉 경제가 불황이 된다든가 하여 수익률 자체는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포춘 500대 기업의 수익률이 더 큰 속도로 떨어질 경우엔 성공적인 '차등화 축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또 수익률 자체는 올라갈지라도 포춘 500대 기업의 평균 수익률의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 '차등화 축적'에 실패하고 있는 셈이므로 빨간불이 들어오고 비상 수단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수능 시험도 모의고사도 그 난이도는 항상 들쭉날쭉하니까 성적의 숫자 자체로 크게 울고 웃지 않는다. 항상 "내가 저 녀석들 보다는 그래도 한 수 위다"고 만만히 여겼던 집단의 성적과 맞먹거나 오히려 쳐지게 되었을 때, 그때가 눈에 쌍심지 빨간 불이 켜지는 순간인 것이다.

(물론 닛잔/비클러의 차등화 축적 이론은 지금 이렇게 간단히 설명한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다. 관심이 있는 분은 닛잔과 비클러, 홍기빈 역, [자본 축적과 지구 정치 경제의 변형(가제)](삼인 출판사, 근간)을 참조하기 바란다)

***3.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중동 분쟁의 발생 시점**

이제 위의 두 가지 전제를 종합하여 실증적 연구로 검증할 가설을 구성해본다.

"석유 자본의 '차등화 축적'이 위기에 처할 때 즉 포춘 500 대 기업의 평균적 수익률보다 뒤떨어지는 시점에는 반드시 중동 지역에 군사 분쟁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먼저 포춘 500대 기업과 석유 자본 핵심의 수익률(return on equity) 비교를 보도록 하자.

[그림 1]

실선으로 그려진 석유 자본 핵심의 수익률이 점선으로 그려진 포춘 500 평균 수익률보다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곧 석유 자본 핵심의 차등화 축적이 위기에 처하는 빨간불이 들어오는 상황인지라, '위험 지대'로 까맣게 칠해져 있다. 닛잔/비클러의 가설이 옳다면, 이 '위험 지대'의 끝 부분 쯤에는 반드시 무언가 군사 분쟁이 중동에 터져야 할 것이다. 드디어 그 점을 확인할 때가 되었다.

[그림 2]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비교가 쉽도록 '위험 지대'가 가로축 아래로 뻗은 까만 막대 그래프로 그려져 있다. 시간적으로나 정도에 있어서나 중요하지 않은 96년의 예외를 제외하면, 석유 자본 핵심의 차등화 축적이 '위험 지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중동의 분쟁이 발생하고, 이들의 수익률은 그 즉시 높은 차이로 포춘 500의 수익률을 따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 그래프의 규칙성에 대해 괄목할만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이는 그냥 단순한 수익률의 증감에서 알아 볼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석유 자본 핵심이 수익률 떨어지니 무언가 일을 벌인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단순한 수익률은 갈등 발생 시점과 별 관련이 없다. 67년과 90년의 갈등은 이들의 이윤률이 상승하기 시작한 이후에 벌어졌고, 이들의 이윤률이 떨어졌던 직후인 69-70년, 76년, 88년에는 아무런 분쟁도 벌어지지 않았다. 맨눈으로 직접 관찰되지 않는 포춘 500대 기업과의 '차등적' 수익률이 떨어질 때에만 갈등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실로 보데의 법칙에 필적하는 규칙성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도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수학이나 통계학에 능하신 분들은 한 번 계산해 보셔도 좋을 것 같다. 저 11개의 사건을 그래프위에 무작위로 배치하였을 때 바로 저렇게 '위험 지대'의 끝 무렵에만 모여설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즉 저 그래프가 아무런 내적 규칙성도 작동하지 않는, 그야말로 순진한 '오비이락'에 불과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4. '위험 지대' 그래프의 음미: 한 유학생의 경우**

한국에서 온 어느 유학생이 처음으로 이 닛잔/비클러의 연구에 접한 것은 1999년이었다. 그는 이 그래프를 보고 난 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또 거꾸로 솟는 피를 가누지 못하고 한참 씩씩 거리다가 심장에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다. 급하게 된 그 유학생은 객지의 비명횡사라는 불효를 면하고자, "너무 그럴듯해서 믿을 수 없다. 현대 세계 경제가 무슨 칼부림 투전판도 아니고. 그냥 우연이거나 닛잔/비클러라는 통계 기술자들의 현란한 눈속임일 것이다"고 마음을 달래어 겨우 냉정을 되찾았었다. 과연 그랬다. 그가 읽은 닛잔/비클러의 95년 논문에 실린 이 '위험 지대' 그래프는 92년까지의 상황만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석유 자본 핵심의 차등적 수익률이 91년 이래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음에도, 냉전 이후 지구화의 평화를 누리던 90년대 내내 이렇다 할 중동의 분쟁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99년의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그 유학생은 "그것봐. 이거 다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그냥 사후적으로 그럴 듯하게 꾸며 맞춘 이야기야. 당장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되잖아"라고 생각하며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보데의 법칙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에도 이런 식으로 무시해버리는 사람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천왕성, 소행성이 그 법칙이 예언한 위치에서 그대로 발견이 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게 되고, 심장마비의 위협도 다시 떠오른다. 조나단 닛잔 교수는 99년 당시 위와 같은 그 한국 유학생의 항변에 대해 몇 가지 사실만을 지적할 뿐 별로 강한 주장은 않았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무언가 터질 때가 임박했다는 점, 또 석유 자본 핵심의 차등화 축적 위기가 10년씩 계속되도록 탈냉전 세계가 구조적 변화를 겪은 이상 그 당면한 군사 분쟁과 그로 인한 석유 자본의 차등화 축적도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규모가 될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고 한다.

여기에 실린 [그림 2] 는 최근 까지의 추이를 업데이트하여 사흘전 조나단 닛잔 교수가 그 유학생에게 보내준 그래프이다. 2000년 이후를 보면, 정말로 "천왕성과 소행성이 예언한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아가 닛잔 교수가 암시한 대로, 이 기간에 벌어진 갈등의 성격과 규모는 그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 지역 세력들간의 군사 분쟁 수준이었던 그 이전에 비해 9.11 이후 현재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직접 뛰어들어 "민주주의 도미노"운운하며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려들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 결과 나타나게 되는 석유 자본 핵심 차등화 축적의 폭에 또한 주목하라. 70년대 두 차례의 큰 석유 위기 때의 그것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다. 이들의 수익률은 최근 2년간 포춘 500대 기업의 평균 수익률을 거의 2배 가깝게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도망갈 구멍을 잃어 버린 불행한 그 유학생은 다시 멍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전 처럼 무작정 씩씩거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2002년 후반 이후 군수-석유 자본과 긴밀히 결합된 백악관의 보수강경파들이 한반도에 대한 긴장 고조를 시작하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아직도 위정자 이하 많은 이들이 "절대적 한미 공조만이 북한의 전쟁 책동을 막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활로"임을 의심치 않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연히 심장 움켜쥐고 씩씩거리는 대신, 한국에 좀더 신중하고 현실적인 토론이 벌어지도록 부족한 능력이나마 털어놓아 이 '위험지대' 그래프와 같은 실상을 좀 더 널리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필자도 잘되기를 빈다.

***5. 초국적인 '지배적 자본'을 정면으로 직시하자 **

그렇다면 정말 그 소름끼치는 가능성, "미국의 군수-석유 자본 연합이 70년대 이래 미국의 외교 정책을 지렛대로 사용하여 중동의 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는 실로 원단 '음모이론'과 같은 이 주장이 사실이란 말인가? 필자도 모른다. 필자가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바는, '석유 자본 핵심의 수익률이 포춘 500 평균에 떨어질 때마다 거의 항상 무언가 터진다'는 이 '위험 지대' 그래프에 나타난 사실(fact)이다. 이 사실에 어떤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물론 임의에 따라 다양할 수가 있다. 누가 아는가? 석유 자본 핵심의 차등화 축적이 저조하게 되면 태양의 흑점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중동 사람들의 심리에 작용하여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니면 차등화 축적이 저조하면 여자들의 치마 길이가 길어질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더욱 억압된 리비도가 전쟁으로 분출한다…등등등.

하지만 옥캄의 면도날(Okham's razor)의 지혜에 근거해보자. "불필요한 존재를 설정하여 설명하지 마라" 혹은 "여러 가지 설명 중에서는 가장 단순한 것이 진리에 가까운 경향이 있다". 태양의 흑점이나 치마 길이 또 그 밖의 어떤 것을 굳이 상정할 필요가 있는 지 모르겠다. 닛잔/비클러가 제시하는 가설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현실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또 아주 정확한 예측까지 이루고 있다. 이것을 믿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러한 의혹을 깨끗이 정정당당하게 해소하는 길이 없을까? 있다. 필자는 현대 기업들 특히 아주 규모가 큰 초국적 기업들은 그 장부와 의사 결정 과정 전체를 민주주의적 감시 아래에 들어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블렌의 표현대로,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낡은 "생각의 버릇" 하나는 기업은 순수히 경제적 조직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정치가들과 로비나 스캔달 등으로 엮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지난 번 엔론 사태 때에 엔론이라는 기업이 몇 년 전부터 어떻게 이윤을 늘려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굵직한 정치적 사회적 책략을 부려왔는지가 드러난 바 있다. 몇 달전 이라크 전쟁이 터지기 전 기자회견 장에서 캐나다 국방성 장관이 "이 이라크 전쟁은 석유 기업의 이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답변하자 기자회견장에 있던 전원이 폭소를 터뜨리던 장면이 기억에 새롭다.

현대의 초국적 대자본들은 이미 함께 빵을 벌어 들이는 집단이라는 의미의 회사(company)가 아니다. 큰 규모의 사회 변동을 수반하는 대사업을 밀어붙인다는 의미의 '한건 조직(enterprise: 이는 어원상 undertaker의 뜻이다)'이며, 주식회사라는 것은 옛날 동인도 회사에서 볼 수 있듯 그러한 한건 조직에 가장 적합한 조직 형태로 출현한 것이다. 따라서 초국적 대자본 정도 규모의 기업들이 생명 공학, 미사일 방위 체제, 위성 방송 등등 뭔가 '한 건' 하겠다는 큰 프로젝트를 들고 나올 때 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자유, 행복, 안전이 영향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통제할 유일한 고삐인 법적 규제라는 틀은 극히 기본적인 것 밖에는 요구할 수가 없으며, 초일류 법률 회사등으로 무장한 대자본에게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기 일쑤인데다가, 그나마 최근에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원칙에 의하여 아예 철폐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찌보면 국가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이 거대 조직들에 민주주의의 기본인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원칙이 거의 무의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주장은 '산업 기밀의 보호'라는 명분하에 뭉개어지고, 지금도 초국적 대자본의 사업 계획에 어떤 것이 오가고 있는지, 또 어떤 이들이 연결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크레믈린으로 남아 있다.

정말로 알고 싶고 알아야 하겠다. 초국적 무기 회사들의 장부와 모든 기록들을 통해서 정말로 모든 무기 거래는 공명정대하고 어쩔 수 없는 각국의 정당한 '안보'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인지. 이번 이라크 전쟁이 기획되고 추진되는 과정에 석유 대자본은 정말 순진무구하게 평화를 비는 마음만으로 집에서 테레비만 보고 있었는지. 이러한 감시 작업을 수행할 만한 국제 기구나 NGO같은 것들이 있어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정말로 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꿈이 실현되지 않고 여전히 세계 자본주의의 대자본들의 전략과 행동이 오리무중으로 가리워져있는 형편이라면, 우리도 막연한 '선의'를 믿으면서 그냥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가능한 지식과 정보와 논리를 동원하여 이 '지배적 자본'에 해당하는 이들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지구정치경제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앞길을 주체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닛잔/비클러의 '위험지대' 그래프는 그러한 민중들의 노력에 있어서 빛나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기**

이 연재에서 훌륭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죠나단 닛잔(Jonathan Nitzan) 교수와 심숀 비클러(Shimshon Bichler)의 연구 성과로 돌려야 한다. 필자는 단지 그들의 연구를 소개하는 역할만 하고 있으며, 본문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와 분석은 모두 그 두 사람의 성과물이다. 물론 소개하는 과정에서의 실수와 착오는 모두 필자의 몫이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다음의 아카이브에서 원문으로 구해볼 수 있다.

http://www.bnarchives.net

참고할만한 닛잔, 비클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Bringing capital accumulation back in: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military contractors, oil companies and Middle East 'energy conflicts'",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2(3), 1995.

Ch. 5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 in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Israel, (London: Pluto,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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