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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찰괘검’의 신의를 지킨 쿠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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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찰괘검’의 신의를 지킨 쿠만 감독

[프레시안 스포츠] 기회주의에 빠진 세태에 경종

'신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네덜란드 프로축구 아약스 클럽의 로날트 쿠만 감독이 남긴 교훈이다. 최근 스페인의 명문클럽 바르셀로나의 사장 후보에게 감독제의를 받아왔던 쿠만 감독은 19일(현지시간) 카탈루냐신문 엘 페리오디코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약스와 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팀과 계약이 종료되는 2004년까지 아약스에 남겠다”라고 밝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볍게 행동을 하는 세계 축구계에 경종을 울렸다.

***쿠만감독과 계찰괘검**

계찰(季札)이 중국 오(吳)나라 사신으로 상국(上國)을 가던 중 서국(徐國)에 잠시 들렀다. 서국의 왕은 계찰이 차고 있던 검을 보고 매우 부러워했다. 이를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계찰은 상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국에 들러 서국의 왕에게 검을 주려고 했지만 이미 왕은 죽고 없었다. 계찰은 자신의 검을 왕의 집 나무에 걸어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흔히 신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의 고사성어 ‘계찰괘검(季札掛劍)’은 이렇게 탄생했다.

계찰괘검의 결단을 내린 쿠만 감독은 선수시절 ‘강한 프리킥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PSV 아인트호벤에서 뛰었던 허정무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로날트 쿠만의 킥력은 대포알 같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네덜란드가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을 때 팀의 주장을 맡고 있던 쿠만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불굴의 정신력으로 ‘오렌지 돌풍’의 버팀목이었다. 지난 해 번역출판된 <축구전쟁의 역사>의 저자 사이몬 쿠퍼는 “쿠만을 ‘축구전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네덜란드 축구 스타”로 소개했다.

오는 6월로 예정된 바르셀로나의 사장 선거의 당선을 위해 한 후보가 쿠만 감독을 애타게 찾았던 이유는 아약스에서 인정받은 그의 지도력도 있겠지만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전설로 남아있는 쿠만의 강한 이미지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와 첨예한 라이벌 대결을 펼치면서도 항상 바르셀로나 팬들의 가슴에 응어리 진 것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리그의 단골손님인데 비해 바르셀로나는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쿠만은 카탈루냐인들의 한(恨)을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로켓포 같은 통렬한 프리킥으로 바르셀로나에게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안겨줬다. 이때부터 로날트 쿠만은 카탈루냐인들의 ‘영원한 영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쿠만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가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하는 순간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쿠만 감독은 아약스와의 계약이 끝난 뒤 언젠가 바르셀로나로 옮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19일 내린 쿠만 감독의 결정이 2002년 대선에서 '철새 정치인’과 같이 이익을 위해서 기회주의적으로 움직이는 세태에 약속과 신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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