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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가 "최대 사기극"? 문제는 '기업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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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가 "최대 사기극"? 문제는 '기업 국가'다

[이정전 칼럼] <85> 기업 국가와 지구온난화

옛날에는 종교인들이나 지구 종말론 혹은 인류 종말론을 떠들었지만, 범지구적 환경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날에는 과학자들로부터도 종말론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이들로부터 가장 빈번히 듣게 되는 환경 재앙은 대기 온도가 계속 높아지면서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올해처럼 이 말이 절실히 느껴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벌써 한 달째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부 지방에서도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연일 계속되었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바닷물까지 뜨뜻해져서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였다.

2007년 노벨평화상은 이런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적극 공조할 것을 호소한 앨 고어(Al Gore) 전 미국 부통령과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이하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라는 과학자 등이 모인 국제 기구에 돌아갔다. IPCC가 2007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될 경우 지구 표면 온도는 2100년에는 1990년에 비해서 최대 섭씨 4도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4도 상승이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 정부 의뢰로 런던정경대학의 니콜라스 스턴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일명 스턴 보고서)에 의하면, 그렇게 될 경우 최대 3억 명이 해일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되고, 아프리카와 지중해에서 이용 가능한 물의 양이 30~50퍼센트가량 감소하며, 툰드라의 절반이 소멸되는 등 갖가지 끔찍한 환경 재앙이 발생한다. 지구 표면 온도가 5도 상승할 경우에는 히말라야의 거대한 빙하가 없어짐으로써 중국과 인도에서 수억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게 되며, 해수면 상승으로 뉴욕, 런던, 도쿄 등 바다에 가까운 거대 도시들이 물에 잠길 위협에 처하게 되고, 대서양 연안 국가들은 혹한에 시달리게 되는 등 가공할 환경 재앙이 예상된다. 5도 이상 높아질 경우엔 전대미문의 인류 대이동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뿐, 그 이상의 환경 재앙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스턴 보고서도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인간 활동에 따라 인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에 과학계는 압도적으로 합의를 본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지구온난화를 멈추기 위한 전 세계적 차원의 대책 마련은 큰 힘을 받지 못한 채 답답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한국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지구온난화 문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강력한 대책을 약속한 대선 주자는 없었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비난을 많이 받고 있는 나라다. 애당초 미국은 유럽연합과 함께 지구온난화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약속하는 교토의정서를 추진하였으면서도 공화당의 부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교토의정서 자체를 전면 부정하고 아예 탈퇴해버렸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석유 재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구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미국이 이와 같이 미온적 태도를 취하는 한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미온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후 변화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사정과 태도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 북극의 녹아버린 빙하와 북극곰. ⓒAP=뉴시스

지구온난화가 "최대의 사기극"? 업계 반발 제어해야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지구온난화에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대응할까?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논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짐작대로 이 질문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그 이유로 내놓는다. 즉, 경제를 볼모로 한 업계의 정치적 압력이 효과적인 기후 변화 대책의 수립과 그 실천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비단 기후 변화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경제 현안에 관해서도 업계는 아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시장 붕괴가 금융업계의 부조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속속들이 밝혀졌음에도, 금융업계의 집요한 반발은 금융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내내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를 그토록 강력하게 외쳤고 그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당선된 후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경제 민주화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업계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첫 단계는 여론 관리다. 업계는 다양한 홍보 조직을 갖추고 있다.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홍보 조직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보통 업계는 별도의 홍보 회사를 활용한다. 업계는 이런 홍보 조직을 이용해서 기후 변화에 관한 기존의 과학적 근거를 반박하는 자료와 정보를 퍼뜨린다. 이런 여론 관리를 위한 업계의 자금 지원 경로를 소상히 밝혀낸 연구에 의하면, 진상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이 업계의 이런 조직적 홍보 활동에 특히 취약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일반 대중의 절반 정도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기후 변화뿐만 아니라 업계는 다른 환경 파괴의 악영향을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자료를 유포하고,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환경 관련 규제나 입법을 방해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석유 재벌이 그 선봉에 포진하고 있으며 보수적 언론 매체가 이에 가세하고 있다. 이들의 전략적 목적은 이미 확립된 과학적 근거들이 사실은 의심스러우며 따라서 더 많은 과학적 토론이 필요한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시간을 질질 끌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업계는 단순히 홍보 활동만을 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로비 활동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에서 업계는 막대한 선거 자금과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로비 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기후 변화 및 환경 관련 규제와 정책 입법을 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제임스 인호페(J. Inhofe) 의원은 지구온난화야말로 "미국 국민을 상대로 저질러진 최대의 사기극(the greatest hoax)"이라고 일갈하였는데, 문제는 과학을 잘 모르는 이 상원의원의 발언이 미국 의회의 지배적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거 자금과 로비 활동을 통한 업계의 정치적 영향력이 의외로 위력적임을 밝혀낸 미국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Larry Bartels)의 연구에 의하면, 기후 변화와 같이 업계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이슈에 관한 한 미국 국회의원들은 고소득 계층 견해에 압도적으로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지만, 저소득 계층 유권자의 견해를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선거 자금을 제공하는 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으로 반응하는 정치가들의 행태는 이른바 대표성 편향(representation bias)을 낳고 이것이 결국 부자 감세, 사회 복지 지출 삭감, 무모한 전쟁, 환경 파괴,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소극적 정책 등으로 반영되었다.

래리 바텔스의 연구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동안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무척 심하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도 매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의 70.5퍼센트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였으며, 우리 국민의 거의 80퍼센트가 정치인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욕만 채우는 사람이거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분쟁만 일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런 부정적 인식은 정치권이 국민의 여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업계와 특수 이익 집단에 휘둘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치권이 업계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현실을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는 자신의 저서 <문명의 대가(The Price of Civilization)>에서 '기업 국가(corporatocracy)'로 표현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니 아무리 학계가 효과적인 기후 변화 대책을 강구해내고 그 실시를 촉구하더라도 이것이 정치권을 통해서 정책으로 이어지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에는 기후 변화를 포함한 범지구적 추세를 깊이 있게 다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기관이 많이 있고 이들이 기후 변화에 대하여 많은 우려를 쏟아내고 있지만, 업계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효과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기후 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업계 반발 및 그 정치적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무마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학계와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과업은 기후 변화에 관한 자료와 지식을 계속 발굴하고 정리하고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기후 변화 문제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기후 변화에 관한 업계의 주장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그 진위를 대중에게 알리는 일도 긴요하다.

업계는 기후 변화 및 환경 오염에 관하여 방대한 양의 홍보 자료들을 유포하고 있다. 미국에는 이런 것들을 모아서 분석해 본 연구도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기초적 사실조차 잘못 사용하고 있어서 악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비과학적이고 유치한 홍보 자료가 많았다고 한다. 한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 학계와 시민사회가 할 일도 많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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